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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85] '짝사랑'
"적정 거리"와"일정한 거리"를 합해서 '매너 거리'
2020년 10월 26일 (월) 15:03:09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짝사랑
이철경

모든 사물에는
적정거리가 있다
가장 적합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그 사물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피사체가 앵글에 스며들 때
적당한 노출과
적절한 초점은
일정한 거리에 의해
더 아름답게
최적의 상태를 유지한다
너무 끌어당기거나
너무 멀리 잡으면
온전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

이 광활한 우주
그대와 나의 거리는
달과 지구 공간만큼
가깝다

   
▲ ⓒ부천타임즈


제목 "짝사랑"의 의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남녀 사이에서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짝사랑을 남녀 사이에서 나타나는 한쪽만의 사랑이라고 하겠으나 시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사물”에 대한 "거리”를 다루고 있으므로 "사물"에 대한 "짝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사람으로 확장해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사물에는" 그 사물에 맞는 "적정거리가 있"습니다. 사물의 특징과 크기에 따른 거리가 있구요. 그 사물이 빛을 받는 각도와 양에 따른 알맞은 거리도 있습니다. 주연을 담당하는 사물과 어울리면서 조연 같은 소품 역할을 할 때의 거리도 있습니다. 사물 뒤에 배경이 있을 때도 그 배경의 성격과 원근감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는 거리도 있습니다.

이때의 거리는 제각각 다 다르지만 그 각각의 다른 거리는 그 사물에게 "가장 적합한 거리"입니다. 사물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거리를 잡는다면 그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고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가장 적합한 거리를" 판단해서 "유지해야만" 그 눈과 그 마음에 사물 본연의 질감이나 색감이나 형태가 살아나 "아름답게 보이는" 대상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 ⓒ부천타임즈

물론 "거리"만 잘 잡는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물이라는 "피사체가 앵글에" 보일 때 "적당한 노출과/적절한 초점은" 반드시 필요한데요. 노출이 안 맞으면 사진이 너무 어둡게 나오거나 너무 밝게 나오게 됩니다. 초점이 안 맞으면 마치 난시 시력을 가진 사람의 눈처럼 선이나 윤곽이 흔들리게 되고 사물이 부옇게 또는 두세 개로 보이는 것처럼 어지럽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더 아름답게" 포착되고 표현되면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잘 보고 싶다는 생각에 "너무 끌어당기거나" 멀리서 보면 괜찮겠다는 생각에 "너무 멀리 잡으면" 생각과는 정 반대로 되고 말아서 그 사물이 지니고 있는 "온전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짝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사물과의 거리를 말하고 있는데도 자연스럽게 사람과의 거리가 떠오르네요. 어쩌면 그것이 이 시의 의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물과의 거리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라면 그것은 사진을 찍는 기술에 불과하며 사진 기술을 다루는 책자에 더 잘 나와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과의 거리를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 ⓒ부천타임즈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정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은 저마다 개인과 환경이 다르므로 사람과의 거리를 정확하게 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이 경험하면서 깨닫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알게 되는 적정 거리는 상대를 존중하는 거리이며 나 자신을 지키는 거리입니다.

그 "적정거리"를 느끼고 발견하게 되었다면 그 다음에는 그 "적정거리"를 "일정한 거리"가 되도록 유지해나가야 합니다. "적정거리"가 "일정한 거리"로 지켜지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정거리"를 한 번 정했다고 해서 "적정거리"가 저절로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상황으로 인해 "적정거리"가 흔들리고 깨지는 것이 인생인지라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 사람과의 거리에 대한 상식이자 인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적정거리"와 "일정한 거리"를 합해서 '매너 거리'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철경 시인은 거리를 사물에 비유해 풀어나가는 결말로 "이 광활한 우주"에서 "그대와 나의 거리"를 말하면서 "달과 지구 공간만큼/가깝다"고 하는데요. "달과 지구 공간만큼"이라고 할 때 사실은 이 거리는 굉장히 멉니다. 아니, 사실상 가깝게 갈 수 없는 거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달과 지구"의 거리를 "가깝다"고 표현하는 데 이 시의 묘미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거리에 접근해 있으면 그것은 이미 "적정거리"도 아니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달과 지구"의 거리를 멀게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예 거리에 해당된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도 "적정거리"와 "일정한 거리"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는 것이어서 불필요한 외로움이나 쓸쓸함에 시달릴지도 모릅니다.

   
▲ ⓒ부천타임즈

"달과 지구"의 거리는 "적정거리"입니다. 또한 "달과 지구"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물과의 거리를 먼저 생각한다면 "달과 지구" 같은 거리를 "적정거리"와 "일정한 거리"로 판단하면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사람과의 거리를 먼저 생각한다면 "적정거리"와 "일정한 거리"의 실체와 실상과 실현이 "달과 지구"의 거리라고 인정하면서 그런 자세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달과 지구" 거리라고 할 때 그 "달과 지구"만을 생각해서 '과연 그게 거리인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은 아직도 사람과의 거리에 대한 감각을 익히지 못한 것입니다. "달과 지구"의 거리는 '자기 표현'의 거리입니다. '상대 인정'과 '상대 존중'의 거리입니다. 내가 있어야 할 '나의 거리'이며 상대에 의해 내가 빛나는 '상대의 거리'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자리인 동시에 상대를 가장 잘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자리로써 그에 아주 잘 어울리는 위치의 거리입니다.

달을 바라보며 달을 짝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밤마다 바라보는 달로 인해 참사랑을 배웁니다. 참사랑이 가져야 할 거리에 대한 기준과 감각을 달을 바라보며 익힙니다. 사람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에 실패했을 때도 달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랩니다. 그 거리를 잘 유지해야겠다는 마음이 달빛의 위로를 듬뿍 받습니다.

   
▲ ⓒ부천타임즈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거리에서 "너무 끓어당기거나/너무 멀리 잡으면" 안된다는 거리감의 실제 교훈에 대해 깊이 깨닫습니다. 때로는 성취의 기쁨으로 때로는 실패의 아픔으로 나아가면서, 가족과의 관계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아름답게” 그리고 “최적의 상태”로 유지해 "온전한 아름다움을/표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밤마다 주경야독하는 나의 공부요, 밤의 교실에서 따뜻고 밝은 마음으로 가르쳐주시는 선생 달님의 교훈이니까요.

'달과 나의 거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다.' '가까운 사람과의 거리는 달과 나의 거리처럼 여기며 대해야 한다.' 오늘도 밤하늘 칠판에 별처럼 판서해준 내용을 보고 적은 가슴에 손을 얹고 잠이 듭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가슴이 더욱 따듯해져 있을 것입니다.

   
▲ 시인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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