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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84] "말짱"
"수긍" 없는 "수용"이 얼마나 위험하고 또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2020년 10월 19일 (월) 16:55:34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말짱
이돈형


가을국화가 피어난대 새겨들어야 할 말이 생겨나는 거겠지

익숙한 사람

익숙해서 더는 익숙해질 수 없는 사람

더는 익숙해질 수 없어 내가 나를 데리고 어딘가를 좀 걸었으면 싶은데

그 사람이 웃는다

피는 국화처럼 웃고 있어 나는 웃음을 거두는 수용소가 된다

수용은 백번 고함쳐도 단 한 번 수긍이 필요한 거라 했다 그 말에 수긍해버리고 나니

한 움큼 가을빛이 붕대에 감겨 있다 나도 곧 이방인이 될 수 있겠다

오늘이 생일인데

비가 온다면 일주일 동안 생일이 될 수 있을 텐데

익숙한 사람 앞에 서 있는 것보다 오래 태어나는 일이 더 수월할 텐데
 
웃으며 썼던 반성은 다들 어디 가서 돌아오지 않는지

말짱

돌아오지 않는지

   
▲ ⓒ부천타임즈

산에 들에 피어나는 수많은 들꽃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들꽃은 가을국화가 아닐까 합니다. 맑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도 시기이거니와 부드럽고 편안하게 피어나면서 색깔까지도 부담이 없는 은은하고 고운 색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이나 바탕과 가장 닮은 꽃이라고 할까요. 한두 송이 또는 몇 송이 피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무리 지어 피어나는 모습에서도 사람의 어울림을 닮았다고 하겠습니다.

"가을국화"를 떠올리면 "새겨들어야 할 말이" 생각나곤 합니다. 이 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잔소리'를 생각하면 되는데요. 좋은 의미에서 잔소리는 상대방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말인 동시에 그 상대가 가까운 사이일 때 나타나는 말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잔소리가 나타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잔소리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꼰대짓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잔소리와 형태가 유사하나 말하는 사람이 예의를 갖춰서 말한다면 잔소리가 아닌 "새겨들어야 할 말이" 되는 거고, 듣는 사람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잘 알아듣는 자세를 취한다면 역시 "새겨들어야 할 말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함께 대비하고 있는 "가을국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가을국화"의 자태를 보면 꽃을 보는 대상에게 강렬하게 개입하거나 다가가지 않습니다. 수수한 자태로 감정의 기복이 없이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렇게 대상에게 다가갑니다. "새겨 들어야 할 말이" 바로 이렇다는 것이니 그 말을 하는 사람 또한 어떻다는 것을 이렇게 알 수가 있겠습니다.

   
▲ ⓒ부천타임즈

"가을국화가 피어난"다는 소식을 들으니 "익숙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 사람은 너무 "익숙해서 더는 익숙해질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는 익숙해질 수 없어 내가 나를 데리고 어딘가를 좀 걸었으면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아마도 내가 익숙해지기를 원했으며, 이제 완전한 익숙함에 도달해 더 이상 익숙해질 것이 없는 사람이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도, 그 사람과 더 익숙해지고 싶으면서도, "더는 익숙해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혼자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익숙한 사람"의 자리가 없게, "익숙한 사람"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누군가가 있어야 하겠기에, 그래야 "익숙한 사람"이 생각나기 않겠기에, 그 "익숙한 사람" 대신 "나를 데리고" 가기로 합니다. "내가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간다는 것은 "익숙한 사람"을 데리고 가지 않는 동시에 나 혼자만 가겠다는 생각의 부드럽지만 분명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웃는" 것이 보입니다. 정말이지 참 징그럽게 "익숙한 사람"입니다. "내가 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는데도 나타나서 웃고 있으니 말입니다. 서운함도 질투도 없이 그저 웃고만 있으니 말입니다. 정말 "가을국화" 같은 사람입니다. 실망의 낯빛도 없고 감정이 깃든 얼굴빛도 전혀 없이 그저 맑고 투명하게 웃고만 있으니 말입니다.

"피는 국화처럼 웃고 있"는 그 사람으로 인해 "나는 웃음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웃음을 내게 보여주고 보내주는 그 사람의 웃음이 내 마음속에서 얼마나 풍성했는지 "나는 웃음을 거두는 수용소가" 되었습니다. "웃음"과 "수용소"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표현인데도 그 좋은 "웃음"을 관계하고 유지하면서 이후로도 계속 그리고 충분하게 소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끝까지 구속할 수는 없어 아니 구속하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한시적인 입장에서 "수용소"라는 표현은 딱 제격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사람이 평소처럼 또 "새겨들어야 할 말"을 하네요. "수용은 백번 고함쳐도 단 한 번 수긍이 필요한 거라"구요. 그래서 당연한 마음과 자세로 새겨듣기로 합니다. 수용을 백번 아니 천번을 한다고 해도 수긍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수긍 한 번이면 사실 다 되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얼른 "그 말에 수긍해버"렸는데요. 그랬더니 글세 "한 움큼 가을빛이 붕대에 감겨 있"는 것이 보이네요.

이것은 가을빛이 많이 상했거나 상처를 받았다는 것인데요. 여기서는 가을빛이라는 대상보다는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 더 중요다하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수용"에 이어 "수긍"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상처'를 볼 수 있었고, 동시에 그 상처를 치료하고 치유하는 의미에서 "붕대에 감겨 있"는 것까지 보이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가을국화"를 닮은 눈이 맑게 열렸다고 하는 말이 맞을까요. "국화처럼 웃고 있"는 그 사람의 웃음과 "새겨들어야 할 말"로 인해 그렇게 되었을 텐데요. 그로 인해 "나도 곧 이방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내가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가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나타난 것일 수도 있고, "한 움큼 가을빛이 붕대에 감겨 있"는 것을 보고서 이제는 치유가 되고 있으니 '이방인처럼'이 아니라 아예 '이방인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가을국화” 같은 그런 이방인 말입니다.

   
▲ ⓒ부천타임즈

그런데 알고 보니 "오늘이 생일"이네요. 아, "생일"이어서 그랬군요. "생일"이어서 "익숙한 사람"이 생각났고, "생일"이어서 "피는 국화처럼 웃고 있"는 웃음을 꽃다발보다도 더 크게, 아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와 깊이와 넓이를 품고 있는 꽃다발인 "웃음을 거두는 수용소"를 받은 것이군요.

우선은 그게 참 좋았나봅니다. 그렇게 좋았으니 "생일"이 계속되기를 바랐을 것이고 그 바람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로 비가 오기를 고대했던 것이네요. 비가 오면 밖에 나가 돌아다닐 일이 없이 집에만 있을 테니 그게 정말 좋은 일이고, 그 비에 흠뻑 젖으면서 뿌리부터 꽃까지 맑고 깨끗하게 마음까지 씻을 "가을국화"도 더없이 좋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비가 온다면 일주일 동안 생일이 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해보는 것인데요. 안타깝게도 "익숙한 사람 앞에 서 있는 것보다 오래 태어나는 일이 더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드네요. 사실은 "오래 태어나는 일"보다 "익숙한 사람 앞에 서 있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익숙한 사람"과의 관계 때문일 것입니다. "수용은 백 번" 하면서도 "수긍"을 해주지 못했던 자세와 거기에서 비롯된 그 많은 시간들과 그 속에서 빚어진 일들이 그 증거로 아프게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웃으며 썼던 반성은 다들 어디 가서 돌아오지 않는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고 야속하기만 합니다. "말짱"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잘 알고 있어서 그것 때문에도 마음이 더욱 힘듭니다. "가을국화가 피어"나는 계절마다 "새겨들어야 할 말이 생겨나는" 이유입니다.

   
▲ ⓒ부천타임즈

나는 "수용"을 해주면서, 그것도 "백번"이나 해주면서, 그것도 "수용"해주는 것이 얼마나 정당하고 잘하는 것인지를 강변하기 위해서 “고함”까지 지르곤 했는데요. 문제는 "수용"만 했지 전혀 "수긍"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수긍" 없는 "수용"이 얼마나 위험하고 또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를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붕대"를 감아야 할 만큼 상처가 깊었고 그로 인해 언제나 함께했던 생일에 이렇게 혼자 있게 되었으니까요.

"익숙한 사람"에게 "수긍"을 해준다. 뒤늦게 쓰는 반성문입니다. 들국화가 피어나는 가을이 오면 아프게 써보는 반성문입니다. 익숙할수록 "수긍"을 해야 한다. 돌아오지 않는 반성의 메아리를 찾기 위해서 들국화가 하얗게 피어 있는 들길을 걸어갑니다.

   
▲ 시인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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