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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79] 어쩌다
"이 생(生)에서 건너야 할 이별을 헤아려보는..."
2020년 09월 14일 (월) 16:05:06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어쩌다
김밝은

흐르는 눈물을 만져준 건 지나가던 바람뿐이었다

글자가 흐릿한 수채화처럼 번지는 오후
저만큼 멀어진 계절의 등이 뭉툭해져 있다

만 년의 시간쯤 단숨에 건너가는 잠 속에서
뜨거운 목숨으로 웃을 때조차
눈부신 전언은 약속되지 않아서

달빛 테두리에 걸려 있을지도 모를
정다운 표정들을 힘껏 상상해 본다

이 생(生)에서 건너야 할 이별을 헤아려보는 날들이 더 많아져 가도
울면서도, 끝내 환해지는 시간들이 있을 거라고
꽉 쥐었던 손을 펴면

그늘의 배후에서라도 버텨보려 안간힘을 쓰던 기억들이
부러진 손금에 길을 내고 있다

   
▲ ⓒ부천타임즈

무엇 때문인지는 처음부터 알 수 없지만 눈물이 흐르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흐르는 눈물을 만져준 건 지나가던 바람뿐이었다"는 말에서, '바람이 눈물을 만져주었다'는 내용보다도 '아무도 눈물을 만져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오네요.

"글자가 흐릿한 수채화처럼 번지는" 것을 보면, 눈물이 "글자" 위에 떨어져 "수채화처럼" 그것도 "흐릿한 수채화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글자"라는 표현이 먼저 걸리네요. 글자가 있다면 종이 위에 쓴 편지 같은 것일 텐데요. 그것을 편지라고 하지 않고 글자라고 한 것을 보면 편지가 가져다준 그간의 상황에 대해서 객관적인 정리가 진행되어 가고 있는 동시에, 아직도 감정이 정리가 되지 않아 '글자'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만큼 멀어진 계절의 등이 뭉툭해져 있"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겠구요.

아무도 그 눈물을 달래주지 않아서 "만 년의 시간쯤 단숨에 건너가는 잠"을 잡니다. 아직 미련이 남았을까요. 아니면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일까요. 그 잠속에서 "뜨거운 목숨으로 웃"으며 무언가를 말해보는데, 바람대로 "눈부신 전언은 약속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년의 시간"과도 같은 잠 속에서 "달빛 테두리에 걸려 있을지도 모를/정다운 표정들을 힘껏 상상해" 봅니다. 이 '정다운 표정들"이 눈물을 빠져나오는 힘이 되고 "만 년의 시간쯤 단숨에 건너가는 잠"을 이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 ⓒ부천타임즈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이 생(生)에서 건너야 할 이별을 헤아려보는 날들이 더 많아져 가도" 지금처럼 "정다운 표정들을 힘껏 상상해" 보면서 건너가기로 합니다. 당장은 눈물이 앞서는 울음만 터져나온다고 할지라도, 그 누구도 눈물 섞인 울음을 달래줄 수 없다고 할지라도 "끝내 환해지는 시간들이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라앉고 정리가 되어 결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결심하는 그 순간에, "꽉 쥐었던 손을 펴" 봅니다. 이 손을 꽉 쥐기까지 그리고 이 손을 다시 편안하게 펼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요. "그늘의 배후에서라도 버텨보려 안간힘을 쓰던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고 다시 살아납니다. 다시 살아서 상처를 남기지 않고 생명에 속한 것들을 남기기 시작합니다.

울면서, 울면서 얼마나 주먹을 꽉 쥐었는지 손을 펴고 보니 "부러진 손금"이 보이네요. 그런데 그 손금이 부러진 곳에 "끝내 환해지는 시간들이 있을 거라고" 믿는 마음이 "안간힘을 쓰던 기억들"을 일으켜 "길을 내고 있"습니다. 길이 부러졌지만 다시 길을 내면서 그 길을 걸어갑니다.

   
▲ ⓒ부천타임즈

생각해 보면, "이 생에서 건너야 할 이별"이 참 많습니다. 그동안 많이 겪어 왔고, 앞으로도 많이 겪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마다 이 시의 제목처럼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하면서 넋이 나가거나 한탄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는데요. 그럴 때마다 이 시에 장치된 두 가지를 생각하면서 붙잡아 바위처럼 묵직하게 지나가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정다운 표정들을 힘껏 상상해"보는 것과 "끝내 환해지는 시간들이 있을 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괴로운 이별이어도, 그 주변과 그 시기에는 분명 "정다운 표정들"이 있을 겁니다. 그 "정다운 표정들"을 힘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고통스러운 시간일지라도 "끝내 환해지는 시간"이 분명 올 것입니다. 그 "환해지는 시간"을 지금이라는 어둠을 잘 건너가게 하는 소망의 등불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길이 부러졌을지라도 부러진 길에 다시 길을 낼 수가 있습니다. 길이 부러졌다고 울며불며 통곡하면서 푸념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부러진 길에 다시 새로운 길을 내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부러진 길에 새로운 길을 내는 사람은 무너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끝내 환해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자신을 이끌어가는 사람입니다.

   
▲ 시인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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