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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78] 생(生) 한 송이
2020년 09월 07일 (월) 16:38:53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생(生) 한 송이
심종록

해안가 절벽
자주빛 꽃이 봉오리를 펴고 있다고
해풍에 쓸리듯 휘청대던 잎들이 꽃 피울 준비를 한다고
그대 보낸 엽서 한 장 무적처럼 도착한다

해국 또는 바다국화라고도 부르는 국화과 다년생 풀보다 사실
그대 소식 더 궁금했다 자주색 꽃이야
해풍 속에 꽃 피우고 무서리 내리면 열매 익겠지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태양의 흑점을 거느린 사람이여
간밤엔 어떤 폭풍이 백야의 잠을 방해했는지
어떤 자기장이 오로라의 시야를 끈질기게 어지럽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 그대 향해 달려간 것을 아는지
먹빛 하늘이 코발트블루로 깨어나는 시간까지 달려간 것을 아는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사람을 믿는 거라지만
해안가 절벽에 매달린 꽃 같은 사람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세상이 심장을 물어뜯더라도
살아라 부디 살아서 생(生) 한 송이 피워라

 

   
▲ ⓒ부천타임즈

그대여, 올해는 태풍이 참 많이 왔습니다. 한 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일인 오늘도 비가 오면서 태풍의 영향권 아래 있구요. 태풍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기 전에는 물폭탄 같은 길고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면서 홍수와 산사태로 온 국민이 고통과 신음 속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비단 비바람과 관계된 것만이 태풍은 아닐 것입니다. 태풍과 같은 흔적을 남기면 그것은 모두 태풍과 같은 것, 태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것은 도무지 아득해질 기미가 전혀 없이 날마다 생살이 돋는 것처럼 섬뜩한 고통을 상기시켜 주곤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든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이든 태풍이 다가오려 하거나 태풍의 한 복판에 있거나 태풍이 지나간 그 자리에 서 있거나 할 때, 몹시도 안쓰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대에게서 "해안가 절벽"에 "자주빛 꽃이 봉오리를 펴고 있다"는 "엽서 한 장"이 왔네요. "해풍에 쓸리듯 휘청대던 잎들이 꽃 피울 준비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랬는데도 너무나 반가운 그대 소식에 먼저 투정부터 앞세우고 말았습니다. 투정이 없었다면 그대를 생각하는 내 그리움이 식어버린 것이었다고 변명처럼 말하고 싶습니다. "바다국화"보다 "그대 소식 더 궁금했"던 까닭입니다. 그대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태양의 흑점을 거느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간밤엔 어떤 폭풍이 백야의 잠을 방해했는지" 몹시도 궁금했습니다. 그대로 인해 너무나도 애간장이 끓어올라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 그대 향해 달려간 것을 아는지" 묻고도 싶었습니다. "먹빛 하늘이 코발트블루로 깨어나는 시간까지 달려간 것을 아는지" 어둑어둑 푸른 빛으로 밝아오는 새벽 하늘에라도 간절하게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눈물겹게도 "해안가 절벽/자주빛 꽃이 봉오리를 펴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왔네요. 반가운 불평처럼 "다년생 풀보다 사실/그대 소식 더 궁금했다"고 말했지만 내 어찌 그대가 전해준 소식의 의미를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매불망 기다렸던 반가운 마음에 잠시 투덜거렸던 것일 뿐 그대의 진심을 내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고 다시금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사람을 믿는 거"라는 말을 누가 했을까요. 그대의 마음속에 고여 있는 말을 내가 사모하듯 읽은 것일까요. 태풍이 몰아쳤던 어느 밤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면서 끝까지 붙잡았던 그 천년 바위 같은 그대의 말이 바람결에 내 가슴에 떨어진 것일까요. 한탄이나 푸념이 아닌 나침반과 지팡이같이 자리 잡은 그대 마음속 그 기둥 때문에 내가 그대의 안부를 더욱 애타게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안가 절벽에 매달린 꽃 같은" 그대여. 부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세상"이 그대의 "심장을 물어뜯더라도" 그때마다 "부디 살아서 생(生) 한 송이 피워"낼 수 있기를 바랄게요. 그대가 "무적처럼" 전해주는 기별이 내 가슴속에서 끝없이 피어날 수 있기를 온 마음을 다해 바랄게요.

   
▲ ⓒ부천타임즈

그대여, "해안가 절벽" 같은 환경에 수없이 내몰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은 그대의 목숨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그대의 신념이라는 것을 내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사람을 믿는 거"라는 말을 거름 삼아,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 사람을 믿는 거'라는 말의 꽃을 피울 수 있기를 이리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세상"에게 그대의 "심장을 물어뜯"기게 된다 할지라도, 그대의 심장에서 푸르게 흘러나가는 피로 인해 세상이 마침내 푸르게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대의 심장처럼 믿고 있다고 뒤늦게나마 이리 고백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대의 신념이 너무 곱고 향기로워서 그 신념의 대가가 그대를 절벽으로 내몰고 있다고 해도 나는 그대의 신념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이미 내 안에 피어 있는 "한 송이" 꽃이니까요.

   
▲ 시인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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