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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76]'너희 집은 아무 일 없냐'
김성조 시인의 '안부'
2020년 08월 24일 (월) 13:43:04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안부
​김성조

어머니는 매일 아침
묵주 기도가 끝나면
일곱 남매 집집이 다이얼을 돌리셨다
무탈하냐, 칠흑 밤 쌓고 쌓은
걱정 보따리 일도 없이 풀어놓으셨다
낮에는 직장으로 핸드폰으로
그 많은 전화번호 다 외셨다
온종일 일곱 새끼 치마폭에 싸안고
고립무원 홀로 외로워하셨다

뭐 하러 자꾸 전화 하세요
짜증 소리 귓등으로 흘리시며
망령이 났는지 자꾸 이리 궁금쿠나!
세상 끈 놓으시기까지
날마다 허공에 다리를 놓아
궁금타, 이리 궁금타!

이제 아무도 날 궁금해 하지 않는다
내 죽거들랑 우짜든지 느이
칠남매 우애 있기 지내라이
일 년에 한두 번 얼굴 볼까 말까
우리는 서로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 ⓒ부천타임즈

아버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이 땅의 어머니들은 매일 자식을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특히나 새벽마다 아침마다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들은 기도 중에 자식을 품었던 만큼 자식들의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돌리곤 합니다. 

아무 일 없냐고 물으시며 자식들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 보따리"를 풀어놓으십니다. 기억력이 없다고 하시면서도 자식들의 "그 많은 전화번호"며 "핸드폰" 번호는 곧잘 외우셔서, 마치 그 옛날 자식들이 어렸을 때 "일곱 새끼 치마폭에 싸안고" 지내셨던 것처럼 이제는 어머니의 "전화"가 "치마폭"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걱정스런 전화에는 "고립무원 홀로 외로워하셨"던 외로움이 섞여 있습니다. "뭐 하러 자꾸 전화 하세요"라는 자식들의 "짜증 소리 귓등으로 흘리"면서도 "망령이 났는지 자꾸 이리 궁금쿠나" 하시는 말씀에는 어머니의 외로움이 절반은 묻어 있는 겁니다. 

 

   
▲ ⓒ부천타임즈

"세상 끈 놓으시기까지" 자식들 걱정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커지기만 해서 "날마다 허공에 다리를 놓"고서는 그 높고 위험한 곳까지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궁금타, 이리 궁금타" 하셨을 테니까요.

지난봄과 얼마 전의 기나긴 장마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어머니가 알고 있는 자식들의 형편이 어머니 걱정의 진원지였는데요. 코로나와 장마는 어머니 걱정의 서식 환경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뉴스 때마다 보여주는 코로나 소식과 장마 소식에 '가족들 별 탈 없냐', '너희 집은 아무 일 없냐'라고 물으시는 어머니의 안부 전화는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차근차근 말씀드려도 자식의 설명보다는 텔레비전 화면이 보여주는 현실로 인해 걱정이 더 많아지는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편을 잘 아는지라 어머니의 걱정을 줄여드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해결의 실마리가 아예 없는 이런 생각의 끝에 가면 어머니 스스로 생각의 물꼬를 틔어 주셨는데요. 어머니의 잦은 전화에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자식들에게 어머니도 느끼는 것이 있겠지요. 

   
▲ ⓒ부천타임즈

그래서 어머니는 늘 같은 결론을 이번에도 꺼내시는 것입니다. "내 죽거들랑 우짜든지 느이/칠남매 우애 있기 지내라이".  어머니의 남은 소원이 바로 이것인데요.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식들 형편은 어머니 뜻대로 되어가지는 않습니다. 칠남매가 "일 년에 한두 번 얼굴 볼까 말까" 하며 지내고 있으니까요. 칠남매 "서로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결혼해서 자식이 생기면 누구나 다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됩니다. 그러나 위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있으면 그 부모를 중심으로 자식들이 함께 모이지만 부모가 다 돌아가고 나면 비로소 자식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 자기 자식들을 맞이하고 자기 자식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어머니의 형제들을 생각하기보다 자식들을 걱정하는 것처럼 어머니의 자식들도 어머니처럼 자기 형제들을 생각하기보다 자기 자식들을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우애가 시들어가거나 사라져가는 건 어쩌면 인생의 당연한 순리가 아닌가 싶어요. 자식들도 이 순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구요. 자식들 역시도 홀로 살아가야 하는 노년이 되면 어머니처럼 자기 자식들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눈에 선하니까요. 

   
▲ ⓒ부천타임즈

내리사랑이라는 말에는 내려가기만 할 뿐 올라가는 것은 힘들고 옆으로는 아예 퍼지지도 않는 사랑의 속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자식들 역시도 사람인지라 그 내리사랑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네요.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자식에게 잘 물려주면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땅에는 이런 자식도 많을 테니 오늘은 이런 자식들 마음을 이렇게 헤아려보는 안부를 드립니다. 

 

   
▲ 시인 이종섶

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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