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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74] '밀림 속 진찰실'
2020년 08월 10일 (월) 15:54:46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밀림 속 진찰실
​김연종

이따금씩
짐승들 울부짖는 소리 깊어가는
밀림 속
온대의 나무들은 저마다
고독을 말하였다
당단풍나무
물푸레나무
허기진 벤자민까지
멍든 손길로 피부 깊숙히 박힌 응어리를 꺼내
목에 내걸었다
나는 나무 톱과 전정가위를 들고
울퉁불퉁한 나뭇가지의 멍울들을
잘라 내었다
이슬처럼 서러운 나무들의 눈물을
백의의 햇살이 모두 수거해 갔다
무당 같은 새들이
나무들의 마지막 남은 고독을
쪼아먹고 있었다
이따금씩
너무 많은 고독을 쪼아 먹은 새들이
울부짖고
너무 많은 이슬을 수거해 간 햇빛이
또 다시 숲 속에 비를 뿌렸다
적막한 밀림 안에서
나는 마지막 남은 눈물을
내 안의 나무들에게 쏟아 부었다

   
▲ ⓒ부천타임즈

「밀림 속 진찰실」을 쓴 김연종 시인은 실제로 의사입니다. 이 시가 실려 있는 시집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는 시집 전체가 의사로서 고민하고 통찰하면서 쓴 시들로 가득합니다. 의학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시에서부터 진료 현장을 다루는 시에 이르기까지 그 시들의 면면이 진지하면서 묵직합니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어법으로 이 시대를 성찰하고 진단합니다.
 
무엇보다도 의사로서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탐구와 분석의 사유가 시와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시들의 성취와 맛이 아주 좋습니다. 「알츠하이머 달팽이」와 「천도복숭아」 같은 시들이 그러합니다. 그중에서 「밀림 속 진찰실」을 고른 것은 이 시의 보편성 때문입니다. 특별한 소재나 특정 대상에게만 해당되는 시가 아닌, 시를 읽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짐승들 울부짖는 소리 깊어가는/밀림 속"에 진찰실이 있습니다. "온대의 나무들은 저마다/고독을 말하였"습니다. 그냥 "나무들"이라고 해도 될 텐데 "온대의 나무들"이라고 한 것은 따뜻함과 같은 '온기'를 의도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나무들이 "고독을" 말한 것은 고독의 본질로써 온기를 나누지 못하는 현실을 언급한 것이겠구요.

"당단풍나무/물푸레나무/허기진 벤자민까지/멍든 손길로 피부 깊숙히 박힌 응어리를 꺼내/목에 내걸었"습니다. 온기를 주고받으며 온기로 소통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온기를 나눌 수 없어 "고독"해지다 못해 "피부 깊숙히 박힌 응어리"가 되었다가, 끝내 그렇게 박혀있는 "응어리를 꺼내/목에 내걸"수 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그 세상을 "밀림"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런 일이나 현상들이 가득 차 있는 현실이라고 하겠습니다.

"울퉁불퉁한 나뭇가지의 멍울들"이나 "이슬처럼 서러운 나무들의 눈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다 "나무들의 마지막 남은 고독"과 "너무 많은 고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 "고독"을 "쪼아 먹은 새들이/울부짖"는다는 표현을 통해 '고독으로 인해 울부짖는다'는 등식을 성립시키고, "너무 많은 이슬을 수거해 간 햇빛이/또 다시 숲 속에 비를 뿌렸다"는 진술을 통해 '눈물을 비처럼 뿌렸다'는 은유를 만들어냅니다.

그 주체가 "새"와 "햇빛"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노래해야 하는 새들이 노래를 하지 못하고 울부짖는 현실'과 '밝고 환하게 비춰야 하는 햇빛이 비를 뿌리는 현실'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대변한다고 하겠습니다. 그곳이 바로 "밀림"인 셈이구요.

인간은 본성적으로 "온대의 나무들"과 같은 "온대의" 사람들입니다. 그 "온대"로 대표되는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구요. 그런데 사람에게서도 언젠가부터 그 온기가 사라지면서 "응어리"가 되고 "멍울"이 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의 실체는 바로 "고독"이구요, 그 고독은 울부짖음과 수많은 눈물을 사회적으로 동반합니다.

밀림이면 생명이 풍성하여 생명다운 생명 누림이 충만해야 하는데, 반대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곳이 밀림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도 밀림과 다르지 않아서, 사람다움의 온기를 누리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 반대로 고독한 응어리의 멍울들과 그에 따른 울음만이 난무합니다.

   
▲ ⓒ부천타임즈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의사인 "나는 나무 톱과 전정가위를 들고/울퉁불퉁한 나뭇가지의 멍울들을/잘라 내었다"고 하였고, "이슬처럼 서러운 나무들의 눈물을/백의의 햇살이 모두 수거해 갔다"고 하면서 '백의의 천사'라고 하는 간호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나는 마지막 남은 눈물을/내 안의 나무들에게 쏟아 부었다"고 한 진료 행위가 해결책이겠습니다.

"마지막 남은 눈물"의 의미는 저마다 다양하겠지만 따뜻한 눈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이 시의 출발이 그러하고, "마지막 남은"이라는 표현의 이면적 의미가 그러합니다. 그 마지막 눈물조차 마지막이 아닙니다. 마지막 눈물을 쏟아부으면 다시 마지막 눈물이 샘솟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눈물을 받은 "내 안의 나무들"에게서 온기 가득한 눈물이 다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남은 눈물"의 진정한 특성입니다.

   
▲ 시인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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