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0.8.12 수 10:44
,
   
+ 로그인 독자회원가입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보도자료
> 뉴스 > 문화/예술
       
[이종섶의詩장바구니-71] 달의 계곡
2020년 07월 20일 (월) 15:22:31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달의 계곡
정연홍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
달의 눈물 소금만이 가득하다
부르튼 살이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전갈의 독침이 태양을 찌른다
그늘 없는 마른 계곡
구멍을 파고 벌레가 집을 짓는다

먹구름이 땅을 덮는다 바람이
먼지를 몰아가자
붉은 빗줄기 쏟아져 내린다 땅 위로
상처의 흔적을 밀어 올린다

사람은 보여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짐승은 그것이 상처인지 모르고
다 보여주며 살아가므로
인간처럼 밤을 지새우는 일이 없다

달의 뒷면 마른 계곡엔
아픈 흔적이 남아 있다
상처의 안쪽은 자신만이 볼 수 있다
달은 하얀 상처를 남긴다
달의 계곡엔 소금사막이 있다

   
▲ ⓒ부천타임즈

제목이 "달의 계곡"이지만 시의 첫 행이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로 시작합니다. 제목처럼 시가 "달"을 가리키면서 "달"을 직접적으로 다뤘다면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반대로 시가 말하는 "이곳은 지구"이지만, "지구"라기보다는 "달"처럼 특히 "달의 계곡"처럼 생겼기 때문에 시의 제목과 첫 행을 이렇게 시작한 것입니다.

시의 제목과 첫 행의 이해와 더불어, 이 시가 실려 있는 정연홍 시집 『코르크 왕국』에는 지구상의 곳곳에 대한 언급과 그것들을 소재로 삼은 시들이 많다는 것을 아울러 기억해야 합니다. 지구를 넘어 우주적인 영역까지 확대된 시들도 있는데요. 이러한 사실이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함께 「달의 계곡」 초반부 이해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준 덕분에, '달의 계곡'을 검색해서 아래와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달의 계곡'이 있는 칠레 북서부의 아타카마 사막은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다.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 곳도 있으며 미생물조차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몇 천 년 전에 죽은 동물과 식물들이 부패하지 않고 햇빛에 구워진 채로 남아있다. 바위, 깊은 모래 언덕, 운석으로 형성된 구멍들, 오래전에 말라붙은 고대의 호수 등으로 이루어진 이곳의 풍경은 종종 달이나 화성과 비교된다. 심지어 나사는 이곳에서 우주에서 쏠 원격 착륙 장치의 테스트를 하기도 한다. 아타카마 사막의 중심부는 살아있는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극도로 건조한 지역이지만 가장자리로 갈수록 오른쪽으로는 안데스 산맥으로, 왼쪽은 태평양으로 이어진다.’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정연홍의 시 「달의 계곡」 앞부분을 읽으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달의 눈물 소금만이 가득하다/부르튼 살이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전갈의 독침이 태양을 찌른다/그늘 없는 마른 계곡/구멍을 파고 벌레가 집을 짓는다"라는 1연은 시인이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달의 계곡을 묘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연 역시도 달의 계곡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하면서 3, 4연으로 이어가는 다리를 놓고 있는데요. 1~3행 "먹구름이 땅을 덮는다 바람이/먼지를 몰아가자/붉은 빗줄기 쏟아져 내린다"와 "땅 위로/상처의 흔적을 밀어 올린다"가 각각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1연과 2연에 나타난 표현들을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달의 계곡과 소금사막을 묘사한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3연과 4연에 나타나는 "상처"에 관한 주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물"은 물론 "부르튼 살이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것과 "전갈의 독침이 태양을 찌"르는 것과 "그늘 없는 마른 계곡"과 "구멍을 파고 벌레가 집을 짓는다"는 표현이 모두 인간의 상처에 앞선 것으로 장치되어, 인간의 상처도 그와 같은 선행적 상태로 인해 상처가 밖으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 맞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밀어 올려진 “상처의 흔적”은 ‘달의 계곡’에서나 인간의 마음에서 드러나는 것의 양태만 다를 뿐 그 과정은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정연홍 시인은 "사람은 보여줄 수 없는 상처를 안고/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면서 공감을 확장하기 위해 "짐승은 그것이 상처인지 모르고/다 보여주며 살아가므로/인간처럼 밤을 지새우는 일이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보여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짐승이 아닌 사람'이므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달의 뒷면 마른 계곡엔/아픈 흔적이 남아 있"으며, 달이 남긴 "하얀 상처"가 "달의 계곡"에 "소금사막"이 되어 그 흔적으로 드러났다고 하겠습니다. 그 "흔적"의 이면은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아타카마 사막이거나 달의 계곡 자신 뿐이겠습니다.

   
▲ 詩장바구니-71] 달의 계곡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의 안쪽은 자신만이 볼 수 있다"는 시구는 그래서 절절하고 동시에 단단합니다.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상처의 안쪽"을 "자신"도 볼 수 없으면 좋으련만, "자신"에게는 갈수록 뚜렷하게 보이니 그것이 진정 "상처의 안쪽"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1연처럼 지금 상처가 만들어지면서 상처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2연처럼 상처가 솟아나고 터지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수조차 없는 상처를 안고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상처가 남긴 흔적을 지니고서 때마다 그 상처의 흔적들을 물끄러미 또는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지,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과정에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상처의 안쪽은 자신만이 볼 수 있다"는 이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를 다 보여주면 그것은 짐승밖에 되지 않으므로 상처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은 당신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상처의 흔적으로 소금사막이 남은 것처럼,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의 흔적 때문에 드러나는 약간의 말과 약간의 감정과 약간의 흔들림은 그 상처를 잘 간직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보이는 "상처의 안쪽"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아무도 봐주지 않는 "상처의 안쪽"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기보다, 당신에게만 보이는 "상처의 안쪽"을 밤마다 어루만지면서 그 흔적이 잘 말라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겠습니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 부천타임즈(http://www.bucheon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추천수 : 15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최성운 의원 "영상단지 정치적으로 원
권유경 의원 "소각장 광역화를 강력
박명혜 의원,영상문화단지 원점에서 재
이학환 의원,시민들이 동부천IC에 울
정재현 의원 "시집행부와 관계는 '불
친환경 디자인카페 ‘숲마실' 26일
[이종섶의 詩장바구니-74] '밀림
박정산 의원 "만화영상진흥원 갈등 원
구점자 의원 "오정동의 심각한 문제는
홍진아 의원"소명여고 앞 청소년 유해
부천시 원미구 부흥로 315번길 14 포비스타 1414호 | 대표전화 032-329-2114 | Fax 032-329-2115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아00018 | 등록일:2005년 11월2일 | 사업자등록번호 130-19-41871
종별 : 인터넷신문 | 발행인겸 편집인 : 양주승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양주승
Copyright 2003 부천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bu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