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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61] 분홍감옥
권력을 잃어버린 엄마의 잇몸은 물속에 죄수처럼
2020년 05월 11일 (월) 17:26:04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분홍 감옥
이화영

아랫니를 다 빼고 틀니를 하신 엄마
음식을 다 드신 후
한 손으로 입을 가린 다음 틀니를 빼 물속에 담가놓으신다

엄마의 아랫입술을 손으로 내려 본다
치아가 사라진 잇몸
치아가 나오기 전의 아기 잇몸을 보는 듯
물 묻힌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싶은,

치아를 빼고 난 후, 엄마의 말수는 급격히 줄었다
자식이 묻는 말에도
엄마의 대답은 그려…… 아니…… 정도,
치아만 사라진 게 아니라
잇몸 드러내던 엄마의 미소도 사라졌다
그 미소에 전염되던 내 미소도 사라졌다
분홍 경고만 남기고 사라진 치아

치아는 한 사람의 생애에서 묵묵한 권력이다
당당하게 음식을 씹고
환하게 웃고
쏟아내는 말들을 물컹하게 단단하게도 하는

권력을 잃어버린 엄마의 잇몸은
자식 앞에서도 입을 작게 오므리게 한다

틀니가 물속에 죄수처럼 갇혀 있다

   
▲ ⓒ부천타임즈

"아랫니를 다 빼고 틀니를 하신 엄마"입니다. "음식을 다 드신 후"에 이를 닦는 것처럼 틀니를 닦기 위해서 "한 손으로 입을 가린 다음 틀니를 빼 물속에 담가놓으"십니다.

틀니가 빠진 아랫입술은 튼튼했던 기둥이 없어진 탓에 쭈글쭈글하게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낯설고 이상하게만 보이는 "엄마의 아랫입술을 손으로 내려" 봅니다. "치아가 사라진 잇몸"이 말랑말랑하면서도 단단하게 보입니다. 치아가 빠진 잇몸이라기보다는 "치아가 나오기 전의 아기 잇몸을 보는 듯"해서 "물 묻힌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는데요. 자식들은 하루하루 바쁘고 힘들게 사는 탓에 "엄마의 말수"가 적어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모처럼 시간을 내어 엄마와 식사를 한 덕분에 식후에 틀리를 빼서 닦는 엄마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치아를 빼고 난 후, 엄마의 말수는 급격히 줄었다"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자식과 식사를 한 뒤에 틀니를 그대로 끼고 있어도 되지만, 평소 식사 후에 이를 닦는 생활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엄마인지라, 자식이 앞에 있어도 틀니를 빼서 닦아야 개운했을 테지요. 그런 엄마였으니 말은 안 해도 이가 없어진 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부대꼈을 것입니다.

"자식이 묻는 말”을 응대하는 “엄마의 대답은 그려…… 아니…… 정도"에 불과했으니까요.
엄마의 "치아만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잇몸 드러내던 엄마의 미소도"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엄마의 웃음이 사라지면서 "그 미소에 전염되던 내 미소도" 당연히 사라져버렸구요. 생각할수록 "분홍 경고만 남기고 사라진 치아"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치아는 튼튼하면서 힘이 있어야 하는데요. 그렇게 "치아는 한 사람의 생애에서 묵묵한 권력"으로 작용해서 "당당하게 음식을 씹"게 합니다. "환하게 웃"음짓게 만듭니다. "쏟아내는 말들을 물컹하게" 했다가 “단단하게도” 합니다.

그런 권력이, 유용하면서도 절대적으로 꼭 필요했던 권력이 사라져버렸으니 "권력을 잃어버린 엄마의 잇몸은"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기도 해서 “자식 앞에서도 입을 작게 오므리게” 만드는 이유로 작용했을 겁니다.

"틀니가 물속에 죄수처럼 갇혀 있"습니다. 틀니를 보는 자식의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물속에 잠겨 있는 틀니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엄마처럼 초라하게 보여서 가슴속이 물렁물렁 허물어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입속에서 혀를 움직여가며 아직은 권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치아들을 확인해봅니다. 중년이 되기 훨씬 전부터 치과를 들락거리기 시작했기에,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권력에 금이 가고 권력이 흔들릴 때마다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요. 이제 오래가지 않아서 그 권력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할 때가 다가올 것입니다. 그때 나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을까요? 자식 앞에서 즐겁게 말을 하고 있을까요?

먹는 일에 관한 권력이 무너져 웃음을 잃어버리기 전에, 지금의 작고 사소한 권력들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 살지 못하다가 어느 한순간 몸의 모든 권력을 내려놓게 될 엄마를 통해 말없이 깨우친 교훈입니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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