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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59] 생일 미역국 대신 비타민 한 알...
2020년 04월 27일 (월) 13:22:42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생일
김정수

미역국 대신 비타민 한 알 챙겨먹고
야간자율학습하는 딸
마중을 간다 너무 빨리 도착한 손이 문자를 읽고
차 한 대 없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태어난 날 교문 앞에서 기다려주는 것
친구들이 해준 과자목걸이 주렁주렁 매달고 나타난 딸과
종종 아빠가 자가용을 태워준다는 친구를
골목 입구까지 택시로 데려다주는 것 그리하여
자꾸 차를 얻어 타기 미안해
오늘은 그냥 버스 타고 갈래요 하던 딸에게
조금은 미안함을 덜어주는 것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을 먹지 않고 등교하여
급식으로 나온 미역국을 안 먹었다는 말에
바지 주머니 속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다가
슬며시 잡아본 딸의 손이
생크림케이크처럼 보드랍다

   
▲ ⓒ부천타임즈

딸의 생일입니다. 그런데 "미역국 대신 비타민 한 알 챙겨먹고" 학교에 갔네요. 딸의 생일이니 엄마가 당연히 미역국을 끓였을 텐데 그 "미역국"을 먹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공부로 인해 너무 고단한 나머지 깜박 늦게 일어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미역국과 함께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 "비타민 한 알 챙겨먹고" 간 것을 보면 짜증을 낸 흔적도 없으면서 매우 건강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딸의 생일 저녁에 학교 앞으로 "마중을" 갑니다. 안쓰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길에 깔리네요. 그렇지만 딸을 마중 간다는 설레임으로 인해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익숙한 길임에도 "너무 빨리 도착"을 했습니다. 딸도 그런 아빠를 알고 있는지 벌써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구요. 딸의 문자를 읽는 아빠의 마음이 환해졌을 것입니다.

아빠는 생각합니다. "차 한 대 없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건/태어난 날 교문 앞에서 기다려주는 것"이라구요. 그런 아빠를 잘 아는지 딸이 "친구들이 해준 과자목걸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나타"났네요. "과자목걸이"를 걸고 나온 것을 보면 딸도 아빠의 성정을 닮았나봅니다. 친구들에게 받았을 때는 목에 걸어도 학교 밖으로 나올 때면 가방 속에 넣는 것이 보통인데요.

딸이 종종 친구 아빠 자가용을 타고 집으로 오는 것을 아는지라 오늘은 그 친구를 "골목 입구까지 택시로 데려다"줍니다. 친구 아빠 차를 얻어 타는 것이 미안해서 "오늘은 그냥 버스 타고 갈래요 하던 딸에게/조금은 미안함을 덜어"주려는 아빠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친구가 손을 흔들고 사라진 후에 딸이 아빠에게 말합니다.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을 먹지 않고 등교하여/급식으로 나온 미역국을 안 먹었다"구요. 사랑하는 딸의 생일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미역국을 끓였는데 그 미역국을 먹지 않고 나왔으니 딸은 또 얼마나 엄마에게 죄송하고 미안했을까요. 그 마음 때문에 때마침 급식으로 나온 미역국조차 먹지 않은 딸이 참으로 대견합니다.

딸의 말을 들은 아빠의 가슴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솟구치려고 합니다. 눈물을 닦기 위해 "바지 주머니 속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다가" "딸의 손"을 "슬며시 잡아"보는데 "생크림케이크처럼 보드랍"네요. 손수건을 만지다가 잡은 딸의 손으로 인해 아빠의 가슴에 세상에서 보드라운 "생크림케이크" 촉감이 느껴졌는데요. 그 순간 아빠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깊고 그윽해졌을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있는데요. 소유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만족하는지, 아니면 존재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만족하는지 돌아보게 해주는 책입니다. 인간의 두 가지 기본 성향인 이기심과 이타심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책이기도 합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소유와 존재' 또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관점에서 보면 생일에 보여준 아빠와 딸의 행동과 마음은 '소유보다 존재'이며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 위에 놓여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받아야 만족하고 상대가 무엇을 주어야 만족하는 관계, 내가 상대를 위하는 관계보다 상대가 나를 위해야 하는 관계가 만연한 세상에서, '존재'와 '관계'가 바르게 설정된 아빠와 딸을 통해 가슴 뭉클하게 그려낸 생일 풍경이 참으로 흐믓합니다.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아빠와 딸의 체온은 사람이 마땅히 누리고 살아야 할 체온입니다. 가족이라면 당연히 서로 주고받으면서 확인해야 할 사랑의 체온입니다. 그 체온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준 「생일」이 고맙습니다. 그 고마움이 얼마나 깊은지 내 발과 손이 '마중 나가서 손을 잡아주고 싶다'는 듯 벌써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철학자 자크 엘룰이 말했습니다. '세계관은 거대하게 가져야 하나 그 행동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구요. 그러니 발로 마중을 가고 손을 잡아주는 그 사소한 행동은 분명 거대한 세계관에서 나온 행동일 겁니다.

나의 발과 손이 좀 더 가족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를 다짐하면서 손과 발을 쳐다보는데, 참 거칠고 무뚝뚝하게 보이네요. 「생일」에 나온 아빠의 발과 손은 참 포근하고 부드러울 텐데요. 얼굴이 아닌 손과 발을 부끄럽게 만드는 시인은 처음입니다.

발은 감출 수 있지만 손은 감출 수가 없어서, 혹여라도 김정수 시인을 만날 약속이 잡힌다면 그 전날에라도 가족의 손을 꼭 잡아줘야겠습니다. 김정수 시인과 악수하다가 스캔당하면 큰일이까요.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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