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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58] 나는 울면서 눈물 흘리지 않는 기술자
2020년 04월 20일 (월) 12:34:12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울보
김유섭

나는 울면서 눈물 흘리지 않는 기술자다.
콘크리트 지붕 위에 핏빛 구름
보도블록 틈으로 고개 내민
맨드라미 비명에 놀라 운다.

상점마다 진열된 플라스틱병 속 물의 눈망울에
손끝도 발끝도 닿을 수 없어 울고
부서진 햇살 조각조각 매달려 떨고 있는
창문들의 행진,

날개 잊어버린 비둘기 뒤뚱거릴 때마다
낯설어 멀어지는 시간을 떠돌아 운다.
눈이 날리고 비가 쏟아져도
느린 발걸음 숨길 처마조차 없는 거리

날마다 웃음을 만들어 얼굴에 붙여보지만
울음 멈추지 못하는 울보
눈물이 흐르지 않으니
내가 우는 것 아무도 몰라서 좋다.

   
▲ 맨드라미-민들레ⓒ부천타임즈

"울면서 눈물 흘리지 않는 기술자"를 보셨나요? 속으로 아무리 울고 있어도, 날마다 울면서 지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니 아마도 평생 보기 힘들 겁니다.

그가 왜 그렇게 울면서 지낼까요? 무엇 때문에 울면서 지내는 걸까요? "기술"이 없어 울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는 "콘크리트 지붕 위에 핏빛 구름" 때문에 울고요. "보도블록 틈으로 고개 내민/맨드라미 비명에 놀라"서 웁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겨우 이런 정도를 가지고 우나 싶겠지요.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정도를 가지고 울기 때문에 그보다 더한 상황들 속에서는 얼마나 더 많이 울면서 지내는지 쉽게 짐작할 수가 있을 겁니다.

"콘크리트 지붕"은 가난한 동네입니다. 그 "위에" 있는 "핏빛 구름"은 당연히 노을일 텐데 "핏빛"이라고 했으니, 피가 상징하는 어떤 일과 기억의 감정들이 그 동네에 서려 있음을 말하는 것일 테지요.

"보도블록 틈으로 고개 내"미는 것들은 이름 모를 잡초가 많고요. 아니면 민들레가 제일 흔하게 해당되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맨드라미"라고 했으니 분명 아무렇게나 자라는 것들이 아니라 의지와 의도를 가지고 자라는 어떤 존재를 가리킨다고 봐야겠습니다.

그러면서 "비명"이라는 말을 썼으니,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도 없이 살아가는 존재는 아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터전인 "보도블록 틈" 사이에서 내지르는 "비명"일 테고요. 그 비명을 들으면서 그 비명 때문에 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겠습니다.

울보인 그는 꼭 서정적인 것들만 보면서 울지는 않습니다. "상점마다 진열된 플라스틱병 속 물의 눈망울에/손끝도 발끝도 닿을 수 없어"서 울고요. 그리고 "부서진 햇살 조각조각 매달려 떨고 있는/창문들의 행진" 때문에도 웁니다.

뿐만 아니라 "날개 잊어버린 비둘기 뒤뚱거릴 때"면 "낯설어 멀어지는 시간을 떠돌아" 웁니다. "눈이 날리고 비가 쏟아져도/느린 발걸음 숨길 처마조차 없는 거리"에서도 하염없이 웁니다. 생각해보면 날개를 잊어버린 비둘기와 처마가 없는 거리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되었는데요. 왜 이것을 모르고 살았을까요.

울기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 또 그렇게만 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서 "날마다 웃음을 만들어 얼굴에 붙여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울음 멈추지 못하는 울보"라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는 그 많은 울음을 처리할 줄 아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기술자"여서, "눈물이 흐르지 않으니/내가 우는 것 아무도 몰라서 좋다"고 말하며 울음을 툴툴 털어버리네요. 울음을 유발하는 환경은 도처에 널려 있지만 그 역시도 툴툴 털어버리는 듯하고요.

   
▲ ⓒ부천타임즈

물론 앞으로도 그를 울게 만드는 요인들이 계속 그 앞에 나타나 그를 울게 하겠지만, 아니 그의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시선과 감정이 숨어 있는 것들의 아픔과 상처를 감각하고 발견하면서 울며 살아가겠지만, 그는 그때마다 '울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기술'로 능히 그 상황을 잘 이겨나가리라 믿습니다.

세상 살아가기 참 힘들지요? 울고 싶을 때가 많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때마다 다 울어버리면 사람 참 이상해집니다. 반대로 그것 때문에 울지 않으면서 울음이 막힌 사람으로 고착된다면 사람 참 딱딱해집니다.

그러니 "울면서 눈물 흘리지 않는 기술"을 익혀보면 어떨까요. 충분히 울어서 후련한데 남들은 전혀 모르니 내가 살기 편하고 다른 사람들 대하기 좋고, 무엇보다도 메마르지 않는 가슴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요.

그거 아세요? 세상을 따듯하게 만들어야 따뜻한 세상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따뜻해야 세상이 따뜻하다는 것을요.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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