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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54]티브이 맞은편에
2020년 03월 23일 (월) 12:56:33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티브이 맞은편에
홍계숙

내장재가 기도로 채워진 소파가 있다
보드랍고 고요한 소가죽을 입은 소파가 있다
무릎에서 어린 새들이 뛰어놀던 소파가 있다
그 틈새로 채송화 봉숭아꽃 피어나던 소파가 있다
잠이 기대어 푸른 넝쿨을 내리던 소파가 있다
품속으로 온몸이 사라지던 소파가 있다
한 고집이 앉아 무심히 TV를 보던 소파가 있다
그의 주사酒邪가 어깨를 짓누르던 소파가 있다
이따금 소의 울음이 새어나오던 소파가 있다
뜯어진 솔기로 기도가 흘러나온 소파가 있다
낡은 소가죽을 비닐가죽으로 갈아 씌운 소파가 있다
노인의 유전자를 손자로 리폼한 소파가 있다
뒤를 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 오래된 소파가 있다
시간의 문간에 힘없이 기대앉은 노파가 있다
주름진 눈가에 육남매와 손주들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어머니가 있다 

   
▲ ⓒ부천타임즈

이번 주 詩장바구니에는 홍계숙 시인의 「티브이 맞은편에」를 담았습니다. 소파를 어머니로 또는 어머니를 소파로 발상해서 쓴 시인데요. 거실에 놓여 있는 소파와 그 이야기를 담백하게 그려낸 시, 마치 거실에 걸려 있는 그림처럼 그렇게 시로 그려 우리 마음에 걸어 놓은 액자 속 소파 이야기 한 편입니다.

그 소파는 "내장재가 기도로 채워"져 있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하셨던 어머니,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하셨던 어머니의 "내장재"는 바로 "기도"였습니다. 속으로 늘 기도하셨고 속에 늘 기도를 간직하고 계셨기에 겉은 "보드랍고 고요한 소가죽을 입은" 것처럼 한없이 부드러웠습니다.

그 "무릎에서 어린 새들이 뛰어놀"았고, "그 틈새로 채송화 봉숭아꽃 피어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피곤한 자식들의 "잠이 기대어 푸른 넝쿨을 내리"기도 했구요. 그러다가 마침내 그 "품속으로 온몸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 소파에는 남편이라는 "한 고집이 앉아 무심히 TV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고집스러운 남편을 받아주었던 소파는 남편의 "주사酒邪가 어깨를 짓누르던" 날에도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말없이 다 받아주었습니다.

그래도 힘든 것은 사실이어서 거실에 아무도 없는 날에는 "이따금 소의 울음이 새어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울음이 불쌍하지 않았던 것은 "뜯어진 솔기로 기도가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분탕질의 울음 끝에는 고요한 마침표처럼 기도가 자리잡았기에 다시 거실의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 ⓒ부천타임즈

소파도 오래되면 낡아지고 뜯어져서 "낡은 소가죽을 비닐가죽으로 갈아 씌"웁니다. 그러다가 "노인의 유전자를 손자로 리폼"하기까지 합니다. 나이 들어 손주들을 돌봐줘야 하는 형편은 물론, 손자들처럼 어려지고 퇴화되는 '늙어가는 슬픔'을 표현한 셈이지요.

어쩌다가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정적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 오래된 소파가 있"는 것처럼 "시간의 문간에 힘없이 기대앉은 노파가 있"습니다. "주름진 눈가에 육남매와 손주들이 주르륵 흘러내리는/어머니가 있"습니다.

식구들을 다 받아주었던 소파를 어머니로 비유해 풀어낸 이 시에서 놓치지 말고 꼭 생각해봐야 할 것은 바로 이 시의 제목입니다. "티브이 맞은편에"라는 제목을 붙여 소파의 위치와 감정을 정확하고 밀도 있게 표현해서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소파"는 언제나 "티브이 맞은편에" 있습니다. 티브이를 보기 위해 소파에 앉기 때문에 티브이만 볼 뿐 소파를 보거나 주목하는 일은 없습니다. 남편과 자식들은 티브이를 보기 위해 소파에 앉는 것처럼 그렇게 어머니를 소비하며 소모했고, 어머니는 노모가 되어서도 그 위치와 감정을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남편이나 자식들은 알고 있을까요. 소파로만 여기며 취급했던 한 여인의  "내장재"가 "기도"였다는 사실을요. 자기들은 단순히 쉬기 위해 소파에 앉았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그 순간에도 어머니는 스프링이 아닌 "기도"로 식구들의 무게를 받아내고 있었다는 것을요.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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