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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51] '벌 레'
2020년 03월 02일 (월) 13:35:34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벌레
이재훈

꽃 속에 산다.
웅덩이에 잠겨
달콤함에 취해
먹고 싸며 늙는다.

그곳이 지옥인 줄 알고
기어 나올 때

지옥을 보려고 온 사람들
예쁘다고 기념할 때

벌레들끼리 서로 눈 마주쳐
징그러워 깜짝 놀랄 때

마지막 계절은
툭 떨어진다.

   
▲ ⓒ부천타임즈

3월입니다. 이제 땅속의 벌레도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나무의 꽃망울도 꽃을 피울 준비를 한창 하고 있겠지요. 이러한 때에 이재훈 시인의 시 한 편을 통해서 벌레와 꽃의 이면을 살펴보면 아주 좋겠습니다. 무엇의 본질과 위치, 그리고 상호 관계에서 빚어지는 존재와 기능을 탐구하는 것은 봄을 맞이하기 전에 익혀 두면 좋은 아주 유익하니까요.

시의 첫 행을 보면 벌레와 꽃의 관계에서 벌레가 "꽃 속에" 사는 설정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두 소재는 벌레와 꽃이고, 두 소재의 관계에서 비롯된 환경이 "꽃 속에 산다"인데요. 이런 설정이 당연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의미가 색다르면서 깊은 맛까지 우러납니다.
 
벌레는 꽃 속에 들어가 살아도 벌레일 뿐이며, 꽃은 제아무리 예쁘고 화려한 꽃이라 해도 벌레라는 미물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벌레가 꽃 속에 들어가서 살면 꽃처럼 되리라 생각하겠지만, 꽃도 자기 안에 들어오는 것은 꽃에 맞는 멋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모든 생각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벌레는 꽃 속에 들어가 살아도 벌레일 뿐이며, 꽃은 자기 안에 들어온 것이 도무지 꽃에 어울리지 않는 벌레일 뿐입니다.

벌레는 꽃을 꽃으로 알고 들어가 살기보다는 하나의 "웅덩이"로만 여기는 상태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 "웅덩이에 잠겨"서는 “달콤함에 취해/먹고 싸며 늙는” 것이 전부입니다. 벌레에게 꽃은 웅덩이에 불과하고, 꽃도 벌레에게는 웅덩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진실인 셈인데요, 참으로 가슴 아픈 말입니다.

   
▲ ⓒ부천타임즈

벌레에게도 지각과 깨달음이 있는지 벌레가 "그곳이 지옥인 줄 알고/기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지옥을 보려고 온 사람들"이 "예쁘다고 기념할 때"이기도 하며, 기어나오던 "벌레들끼리 서로 눈 마주쳐/징그러워 깜짝 놀랄 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때 벌레가 가진 깨달음조차도 그 깨달음이 더 나은 조건과 환경으로 가는 깨달음이 아니라 단순히 "지옥인 줄" 아는 제한적 깨달음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기념"하는 행위조차도 그것이 “지옥을 보려고 온” 한정적 행위에 불과합니다.

벌레들이 꽃 속이 "지옥인 줄 알고/기어 나올 때" 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벌레들끼리 서로 눈"이 마주친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벌레의 모습이 "징그러워 깜짝 놀"란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기 모습이 바로 저렇다는 사실 앞에서, 아니 저렇게 "징그러워" 끔찍하다는 사실 앞에서, 햇빛처럼 강렬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충격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벌레에게 주어졌던 "마지막 계절은/툭 떨어"지고, 모든 것이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립니다. 벌레에게 기회는 없는 것일까요. 벌레의 깨달음은 소용이 없는 것일까요. 해답은 자기 마음속에 있겠지요. 대답이 들리는 사람은 봄을 소비하며 살지 않을 것이고, 들리지 않는 사람은 봄을 소비만 하며 살 테니까요.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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