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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44]애들아, 잘 가자
-우리 땅 걷기, 지리산 둘레길
2020년 01월 13일 (월) 12:50:48 이종섶 mybach@naver.com
   
▲ 지리산 풍경 ⓒ부천타임즈

애들아, 잘 가자
-우리 땅 걷기, 지리산 둘레길
장우원

하늘아 안녕?
해가 보이지 않아서
비가 내려서
바람도 많이 불어서
우리가 걱정되진 않았니?

진흙탕 운봉 뚝방길
물웅덩이 요리조리 피할 때
비구름 갖춰 입은
바래봉 철쭉
가득 찬 물, 논 위에서 웃고
큰 나무 새 순 돋듯
나무에게 나무에게 다가갔단다
나무 하나 가슴 속에 심고 왔단다

달오름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
주먹밥 잘 먹었습니다
개울 또 개울
고개 또 고개
하루 종일 든든했습니다

큰구슬봉이가
각시붓꽃이
제비꽃이 우리를 따라 오고
애기똥풀은 손 흔들고
병꽃나무가 피로를 씻을 때둥둥
두구재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곳
다랭이논 구불구불
한참을 가도 오르막길
아이고 힘들다
오늘밤은 잘 자겠다
지리산이 자장가를 불러주겠다

하늘 높은 노고단
구름이 발 아래다
내가 이만큼 높아졌다
우리 땅을 걷고 나니
지리산만큼 넓어졌다
발은 저리고
주저앉고 싶었지만
잘 견뎌왔다

엄마, 아빠
엄청 자란 내 키가 보이시나요?
엄청 자란 내 꿈이 보이시나요?

   
▲ ⓒ부천타임즈

지난 월요일 새해 첫 시장바구니에는 철원에 관한 시를 담으면서 철원 이야기와 통일, 더불어 가족이나 공동체의 진정한 화합과 화목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직 새해의 빛이 남아 있는 두 번째 월요일 시장바구니에도 같은 흐름을 이어받아 지리산에 관한 시를 담았습니다.

이 시 아래에 있는 각주에 의하면, '우리 땅 걷기'는 장우원 시인이 근무했던 서울은빛초등학교에서 교사, 학부모, 어린이가 2박 3일 동안 우리 땅을 함께 걷는 행사라고 하구요. 지리산둘레길, 소백산자락길, 강원도바우길을 3년 주기로 돌아가며 걷는다고 합니다.

우리 땅을 걷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뿌듯합니다. 수려한 자연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그렇게 하면서 "우리 땅"을 걷는다는 정신과 가치관과 자세를 몸소 익히고 체험을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우리 땅 걷기를 시작하는 날 공교롭게도 "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도 많이 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위축되기보다는 오히려 "하늘아 안녕?"이라고 인사하면서 "우리가 걱정되진 않았니?"라고 하늘의 안부를 묻습니다. 현실의 어려움을 넘어선 동심의 세계가 참으로 의연하고 편안합니다. 구겨짐도 없고 과장도 없습니다. 하늘은 흐리고 비바람이 불었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맑음 그 자체였습니다. 아이들이 바로 하늘이었습니다.

   
▲ 지리산 풍경 ⓒ부천타임즈

우리 땅을 걸어가다 보면 "진흙탕"을 만나게 되고 "물웅덩이 요리조리 피"해서 걸어야 하는 일도 생깁니다. 그래도 우리 땅을 걷는 아이들에게는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면서 "큰 나무 새 순 돋듯/나무에게 나무에게 다가"가면서 아이들마다 "나무 하나 가슴 속에 심고 왔"으니까요.

소중한 이웃도 만났습니다. "달오름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였구요. 직접 만들어주신 "주먹밥 잘 먹"은 덕분에 "개울 또 개울/고개 또 고개/하루 종일" 걸었는데도 뱃속이 아주 든든했습니다. "주먹밥" 속에 담긴 "달오름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지리산둘레길을 걸을 때 친구도 만났습니다. "큰구슬봉이"와 "각시붓꽃"과 "제비꽃이 따라왔구요" 애기똥풀은 손 흔들고/병꽃나무가 피로를 씻을 때“ 드디어 중간 목표지점이면서 의미가 깊은 한 곳이 보였습니다. 눈과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둥구재다!"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많나는 곳"입니다. "다랭이논 구불구불"하고 "한참을 가도 오르막길"이어서 "아이고 힘들다"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리산이 자장가를 불러주"는 "오늘밤"에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잠을 자게 될 것입니다. 달디단 잠을 선물해주는 지리산의 품이 참으로 넓고 그윽합니다.

마침내 지리산둘레길의 최종 목표지점인 "하늘 높은 노고단"에 왔습니다. "구름이 발 아래"에 보이면서 "내가 이만큼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땅을 걷고 나니/지리산만큼 넓어졌다"는 것도 느껴졌습니다. 키도 마음도 높고 넓게 함께 자란 것이지요. 고생과 수고 없이 되는 법은 없어서 "발"이 저려서 "주저앉고 싶었지만“" "잘 견뎌왔다"는 인내심에 보람까지 얹은 만족을 듬뿍 채워서요.

   
▲ ⓒ부천타임즈

아이들은 지리산 노고단에 서서 발 아래 펼쳐진 우리 땅을 보며 "엄마, 아빠"에게 말합니다. "엄청 자란 내 키"와 "엄청 자란 내 꿈이 보이시"냐구요. 알고 보니 우리 땅을 걷는 아이들 뒤에 그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있었군요. 아니 함께 걸어왔었군요. 가족애가 더욱 돈독해지고 정이 물씬 우러나는 순간입니다. 큰 나무가 작은 나무를 기르듯 "엄마, 아빠"가 이런 아이들을 길러낸 것이지요.

새해 우리 땅 곳곳에 이런 아이들과 이런 엄마 아빠가 함께 걷는 풍경이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을 사랑하면서, 그 위에 펼쳐진 세상과 그 안에 자리 잡은 자신의 가정이 깊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지리산의 바람입니다. 우리를 품고 있는 이 땅의 소원입니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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