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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40] '무단 입주'
그녀는 세 개의 둥근 속주머니를 가졌다
2019년 12월 16일 (월) 14:10:44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무단 입주
이선유

그녀는 세 개의 둥근 속주머니를 가졌다
열 달 내내 풍선처럼 부풀던 한 개의 주머니와
아기 입에 물려주던 또 다른 두 개의 주머니
은밀한 곳에 숨은 주머니들은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여문 씨알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빈 주머니엔 시들시들 적요만 들어찼다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흑거미 한 마리가 들어왔다
거미는 제 집인 듯 새끼를 슬어놓고 점점 자리를 넓혀갔다
단단하게 굳어가는 자리에는
알 수 없는 통증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녀는 둥그렇게 몸을 말고 앉아있기가 일쑤였다

한쪽 가슴을 도려낸 자리엔 울음이 고이고
빈 주머니를 쓸어내리는 손목에
거미줄처럼 얽힌 핏줄이 드러났다
무수한 눈물이 다녀간 거미집을 제거한 뒤
그녀는 뚝뚝 떨어지는 젖을 받아먹고 있다
말라붙은 속주머니를 채우려는 듯
링거 주머니가 그녀의 손목을 적시고 있다

   
▲ ⓒ부천타임즈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중순입니다. 이번 주 시장바구니에는 이선유 시인의 「무단입주」를 담았는데요. 지난 한 해 동안 힘들었고 건강하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골랐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뜻밖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우리 자신에게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선유 시인의 「무단입주」는 몸속에 "세 개의 둥근 속주머니를 가"진 여인이 주인공입니다. "열 달 내내 풍선처럼 부풀던 한 개의 주머니와/아기 입에 물려주던 또 다른 두 개의 주머니"였으니, 젊은 여성임에 틀림없어서 더욱 애처롭기만 합니다.

"은밀한 곳에 숨은 주머니들은" 텅 빈 채로 "시들시들 적요만 들어"차다가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흑거미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거미는 제 집인 듯 새끼를 슬어놓고 점점 자리를 넓혀갔"습니다. 그때부터 "알 수 없는 통증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그녀는 둥그렇게 몸을 말고 앉아있기가 일쑤였"습니다.

결국 "한쪽 가슴을 도려"내야 했고 그 "자리엔 울음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수한 눈물이 다녀간 거미집을 제거한 뒤/그녀는 뚝뚝 떨어지는 젖을 받아먹"고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라붙은 속주머니를 채우려는 듯/링거 주머니가 그녀의 손목을 적시고 있"으니 상처는 곧 아물겠지만 그간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쉬이 사라지지 않은 채 그녀 주변을 맴돌게 되겠지요.

이선유 시인이 말하는 "무단입주"의 실체는 저 여인에게 찾아온 유방암이었는데요. 이처럼 원하지도 않고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무단으로 입주해서는 자리를 비켜주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은 채로 끝까지 고집불통으로 사고를 치면서 그 자리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단으로 입주한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지 적절하게 대처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단입주입니다. 해결한다고 해도 나가지 않으려고 생떼를 쓰는 그것들이 헤집어 놓은 흔적과 상처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닙니다. 그 대가도 너무나 커서 삶의 한 부분이 움푹 꺼지거나 사라져버리는 느낌입니다.

이선유 시인이 보여준 「무단입주」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무단으로 입주해서 괴롭히는 속성'과 같은 형편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로 인해 "통증"과 "울음"이 수시로 들락거립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에 이분들을 떠올리며 응원합니다. 그런 분들이 주변에 있다면 격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추운 겨울에 무단입주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마음의 이불이 제일 필요하니까요.

   
▲ 이종섶 시인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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