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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38] 검 객
12월... 그동안 어떤 칼잡이로 살았는지 되돌아봅니다
2019년 12월 02일 (월) 13:50:37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검객
이인수


영하 13도
언 텃밭에 나가
계란찜에 넣을 대파 한 쪽
밑동만 남기고 싹둑 잘랐다
칼 든 김에
혼자 푸르등등한 새벽달
어슷하게 베었다
새끼 아홉 다 떼내고
벌벌 떠는 어미 개를 보다가
문득 파단 자르듯 싹둑 등진
부모형제 처자식이 생각났다
엄동설한 깊어가는데
이러고도 멀쩡하니
나는 천상 칼잡이인가

   
▲ ⓒ부천타임즈

한겨울 "영하 13도/언 텃밭에 나가/계란찜에 넣을 대파 한 쪽/밑동만 남기고 싹둑 잘랐"습니다. 겨울 텃밭의 대파 자르기는 "칼 든 김에/혼자 푸르등등한 새벽달/어슷하게 베"는 것으로 이어지는데요. 대파를 자르러 나갔을 때가 새벽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대파를 자르다가 문득 먹먹하게 느껴진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인해 허리를 펴고 새벽달을 쳐다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나아가 이 땅의 어머니들이 새벽달을 보면서 치성을 드렸던 것과 오버랩되는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새끼 아홉 다 떼내고/벌벌 떠는 어미 개"로 이어지면서, 동시에 "파단 자르듯 싹둑 등진/부모형제 처자식이 생각"난 것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엄동설한 깊어가는데/이러고도 멀쩡"한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는 천상 칼잡이인가"라는 뼈아픈 고백의 여운에 이르게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면서 부모형제나 친지나 친구나 이웃과의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역이나 거리 등의 이유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은 살다 보면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인위적으로 어떤 관계를 끊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크든 작든 남모를 아픔을 동반하면서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을 상처로 남아 통증을 유발할지도 모릅니다.

칼은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휘둘러야 하는데 그 칼을 휘둘러 단절하고 고립되었다면 결국엔 칼을 잘못 사용한 것이요, 비정한 칼잡이로 살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그 칼이 보이지 않으니 짐짓 모른 척 휘둘러버렸던 어리석음을 탓할 수밖에요.

일 년을 마무리하는 12월에 그동안 어떤 칼잡이로 살았는지 되돌아봅니다. 겨울 텃밭에서 대파를 자를 때 또는 마트에서 대파를 살 때 부끄러움이 일지 않도록 "파단 자르듯 싹둑" 잘라버린 관계들을 생각해봅니다. 앞으로 그렇게 잘라버리는 관계들이 있을지도 몰라 지나간 날들의 미련했던 처신을 떠올리며 아파합니다.

설렁탕을 먹을 때 푸르게 살아있는 대파 조각을 보면서 잘못 자른 아픔을 떠올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따뜻한 국물을 넘기며 뱃속 가득 훈훈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겨울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런 겨울엔 춥지 않기 때문입니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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