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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37] 오가피 제약 회사
"만병을 다스리는 제약 회사가 뒤뜰에 설립되었습니다"
2019년 11월 25일 (월) 16:55:22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오가피 제약 회사
이지호


만병을 다스리는 제약 회사가 뒤뜰에 설립되었다

설립자 할아버지는 약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병의 끝이 되었고
왁자한 울음이 오가피나무 한 그루 키웠다

정제 환제 액제 준비하고
면역 증강 항피로 혈압약을 생산하느라
분주한 줄기와 잎

정제를 만들기 위한 혼합과정에 꽃이 피었다
쓴맛 가시 피톤치드는 나무의 방부제
찾아오는 새와 벌레는 영업이익이다

나무 근처를 배회하는 노래
오늘은 무슨 효능을 생산할지
궁륭에 제조 지시서를 작성한다
한동안 문밖 출입 못 한 할아버지의 검버섯
알약이 까맣게 달리는 오가피나무
오가피 제약 회사 마케팅이 바쁘다

영세한 제약 회사 한 그루
자가 합성의 시간을 보내는
올해의 순이익은 조금 굵어진 가지다

   
▲ ⓒ부천타임즈

"만병을 다스리는 제약 회사가 뒤뜰에 설립되었"습니다."설립자 할아버지는 약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오가피 제약 회사"는 "정제 환제 액제 준비하고/면역 증강 항피로 혈압약을 생산하느라" 한 해 동안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정제를 만들기 위한 혼합과정에 꽃이 피었"고 "찾아오는 새와 벌레"로 "영업이익"을 남겼습니다. "오늘은 무슨 효능을 생산할지/궁륭에 제조 지시서를 작성"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알약이 까맣게 달리"면 "오가피 제약회사 마케팅이 바쁘"게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한 해를 결산해보니 "영세한 제약 회사"라서 많은 이익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자가 합성의 시간을 보내는/올해의 순이익은 조금 굵어진 가지" 뿐입니다. 그러나 "오가피 제약 회사"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자책하지도 않습니다.

   
▲ ⓒ부천타임즈

"올해의 순이익"으로 "조금 굵어진 가지"만 남겼을지라도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내년 한 해의 "순이익"도 "조금 굵어진 가지"가 될 것이고, 그 다음 해의 "순이익"도 역시 "조금 굵어진 가지"가 될 것이니까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굵어지면 되니까요.

12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결실의 계절이 끝나 결산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오가피 제약 회사"처럼 크지 않은 사업과 일터일 수 있으며, 한 해 동안 수고했음에도 "오가피 제약 회사"의 "순이익"처럼 "조금 굵어진 가지" 정도의 결산이 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지난해보다 "조금 굵어"졌으면 되었으니까요. 그것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니까요. "조금 굵어진" 자식들을 볼 때마다 대견하면서 흐믓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다만 "한동안 문밖 출입"을 못하게 되다가 결국엔 "병의 끝이 되"고 말 가족이나 부모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조금씩 가늘어지는 가지'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왁자한 울음이 오가피나무 한 그루 키웠"던 것처럼 우리 마음의 가지도 그렇게 조금 더 굵어지겠지요.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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