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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32] '가로수'
무섭게 달려오던 가로수,지나가면 또 달려오고
2019년 10월 21일 (월) 15:45:52 이종섶 mybach@naver.com

가로수
김윤환

   
▲ ⓒ부천타임즈

힘든 일 있을 때마다
어머니 이르시길
다 지나간다
다 지나간다

서울 가는 차창 밖으로
무섭게 달려오던 가로수
지나가면 또 달려오고
지나가면 또 달려오고

나무들 다 지나고
돌고 돌아
가로수가 끝난 자리

아, 거기
그가 계셨네

   
▲ ⓒ부천타임즈


1.
사람들은 편안함과 즐거움을 바라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불편하고 불행한 일들이 많습니다. 쉼과 여유를 바라지만 수고와 고단함이 그치지 않습니다. 슬픔과 괴로움도 중간중간에 끼어들고, 서러운 눈물과 저미는 아픔도 남모르게 스며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 때를 잘 대비하면서 지나가는 인생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김윤환 시인은 시집 『이름의 풍장』에 실린 「가로수」에서 그 지혜를 보여줍니다. 그 지혜는 어머니께 물려받았는데요. "힘든 일 있을 때마다/어머니 이르시길/다 지나간다/다 지나간다"입니다. 어머니는 성품까지도 참 좋으셨던 모양입니다. "다 지나간다/다 지나간다" 말씀하시며 다독여주던 그 손길과 음성이 참 부드럽습니다.

어머니 계신 고향에 들렀다가 "서울 가는" 길임을 감안하면 어머니는 더더욱 각별한 분임을 느끼게 됩니다. 자식이 어머니에게 "힘든 일"을 털어놓는 것 자체가 어머니의 됨됨이를 보여줍니다. 노인의 특성상,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자식 앞에서 어머니 역시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늘어놓기가 쉬운 법입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자식이 털어놓는 "힘든 일"을 듣고 그 자식에게 "다 지나간다/다 지나간다"라고 위로하며 힘을 북돋아 주시네요.


"차창 밖으로/무섭게 달려오던 가로수"가 지나갑니다. 그래서 '지나가는구나' 생각하는데 가로수가 또 달려옵니다. 한번 “지나간다”고 생각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지나가면 또 달려오고/지나가면 또 달려오고"하는 가로수처럼 인생도 그러니까요.

   
▲ ⓒ부천타임즈

2.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나간다"라는 말과 생각은 인생을 사는 지혜라고 하겠는데요. 지혜는 알맞은 자세가 드러나야 그 지혜가 온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지나간다”라는 지혜는 어떤 자세로 나타날까요? 『이름의 풍장』에 실려 있는 다른 시에 잘 나와 있습니다.

가장 평범하게는 실수가 있습니다. 그 실수도 지나갑니다. 실수 앞에서 자책하기보다는 실수도 "지나간다" 생각하면 "오늘도 실수의 먹물이/나이테를 이루"(「습자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틈과 나의 틈이 있습니다. 그 틈 때문에 벌어지고 깨지는 일과 관계가 많습니다. 한번 금이 가면 다시 아물지 못하고 굵은 상처와 깊은 앙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틈조차 "지나간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다스리면, "누군가의 빈틈이/내 삶의 계단이/되어" 줄 것입니다. "숭숭 뚫린 내 빈틈" 또한 "누군가 타고 올라/메마른 꽃봉오리에/이슬이 되어" 줄 것입니다. 마침내 "내 빈틈 사이사이/향기로/채워"(「틈」)지게 될 것입니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고 어쩌면 평생 견디고 살아야 할 병증도 많습니다. 그런 병이 있거나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놓친 풍경/새록새록 선명하"게 보면 어떨까요. 병으로 인해 불평과 낙심을 가지기보다 그 병으로 인해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더 선명하게 보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그 병을 "두려움보다/그리움이 앞서는/고마운 손님"(「녹내장」)으로 여기며 받아들일 때만이 가능합니다.

때로는 "모른 척 눈 감는" 자세로 살아야 하는데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에서 사람들의 단점이나 문제를 보이는 대로 지적하고 따지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길을 판단하고 선택할 때도 문제가 생깁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 말씀이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그저 눈 질끈 감고 살아라/어둠은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모른 척 눈 감는 거야/더러는 눈 감아야/안 보이던 길도 보이는 법이란다"(「눈꺼풀」). "눈 질끈 감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자세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 ⓒ부천타임즈

3.
이런 지혜와 자세를 언제까지 가져야 할까요? "가시가/꽃이 될 때까지" 해야 합니다. 그때까지 "바람에 실려/바람에 실려"(「도깨비풀」) 흔들리고 날아가는 세월을 보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도깨비풀"도 그렇게 "바람에 실려" 지나가면서 "가시가/꽃이" 되는 것이니까요.

지나가면 분명 흔적 같은 "나이테"가 남습니다. 그러나 그 "나이테"는 돌아볼 때마다 부끄러움과 상처가 가득한 흔적이 아니라, "향기"가 스며 있고 "꽃"이 피어 있는 흔적일 것입니다.

"다 지나간다/다 지나간다" 이렇게 자신을 다독여보시기 바랍니다. 자식의 등을 어루만지며 "다 지나간다/다 지나간다"이렇게 위로해주는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시는 바로 뽑으려고 하면 더 독하게 찌릅니다. 지금은 아픈 그 가시도 다 지나갈 것을 믿으며 사십시오. 가시가 꽃이 되는 날이 이르는 날을 꼭 볼 때까지요.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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