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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29] '청소기를 돌리면서'
" 빈둥거려도 택배처럼 찾아오는 외로움"
2019년 09월 30일 (월) 12:01:11 이종섶 mybach@naver.com

 

청소기를 돌리면서
강준모


일요일 오후
창밖의 가을비는 막걸리처럼 탁하다
청소기에 전깃줄을 꽂는다
청소기가 어눌하게 하는 말이 있다
날마다 돌려도 쌓이는 말들이 몸통에서 빙빙 돈다
머리카락 붙잡고 죽자사자 뭉치던
한 움큼의 슬픔이 잡힌다
알 수 없는 곳에서 날아온
바람의 시체들을 모은다
먼지를 쓰레기통에 털면서
어제 일들은 잊자고 다짐을 한다
거실 바닥에 얼룩진 식구들의 그림자를 닦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비의 본적은 고독이다
빈둥거려도 택배처럼 찾아오는 외로움
때로는 먼지와 같아서 어느 틈엔가 또 쌓인다
공복에 마신 막걸리 같은 오후
가을비에 빨래 건조대가 쉬는 날이다
이런 날은 낮잠을 늘어지게 자는 것이다
무중력의 잠이
외로운 말들을 빨아들일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설거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무작정 설거지를 좋아한다기보다 요리나 음식 준비보다 설거지를 더 좋아한다는 경우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설거지는 더러운 것을 씻고 찌꺼기를 버리고 하면서 요리 도구와 그릇을 원래대로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런 설거지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불편하게 남아 있는 어리석었던 말과 생각을 씻어내는 것 같아서 좋다는 것이다.

사람의 성정은 비슷한지 강준모 시인도 "청소기를 돌리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청소기에 나를 꽂"고서는 "날마다 돌려도 쌓이는 말들"과 "머리카락 붙잡고 죽자사자 뭉치던/한 움큼의 슬픔"을 처리한다. "거실 바닥에 얼룩진 식구들의 그림자"도 치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빈둥거려도 택배처럼 찾아오는 외로움"은 "때로는 먼지와 같아서 어느 틈엔가 또 쌓"이지만, 그때마다 "외로운 말들을 빨아들"이며 잘 견딘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처럼, 세탁기를 돌려 빨래하면서 자기 마음을 빨 수도 있다. 그와 비슷하게 집에서 일을 할 때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관계된 일이나 도구가 더러 있다. 그럴 때 그냥 일하고 그냥 도구를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형편을 연계해서 해보면 어떨까. 그거야말로 집안일을 하면서 마음까지 수행하며 다스리는 진정한 일거양득의 모델이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이 생겨났듯이 '청소하고 마음 씻는다'는 말을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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