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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약방
최용만

마음약방 자판기에
동전을 넣자
약을 지어준다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넌 위험해진 것이다.
혼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넌 더 위험해진 것이다.
누군가는 조금 익숙한 것이고
누군가는 조금 더 익숙한 차이일 뿐
다 외로우니
너도 외로운 것이다.
그냥 외로운 채로 살아가라.
그걸 즐기면 된다.〉

무슨 개소리 같기도 하고
똑 소리 나는 처방인 것 같기도 하고
씩 웃으며 간다.

〈그럼 그렇지
나만은 아니라서 다행이야〉

마음이 힘들어 "마음약방 자판기에/동전을 넣"고 "약을" 받았는데,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넌 위험해진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일 텐데도 "위험해진 것"이라고 하는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그 반작용으로 "혼자라고 생각"해 보는데, "혼자라고 생각하는 순간/넌 더 위험해진 것이다"는 처방전 글귀가 바로 보인다.

왜 그럴까. 그것은 외로움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니라 "누군가는 조금 익숙한 것이고/누군가는 조금 더 익숙한 차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 외로우니/너도 외로운 것이다"라는 보편적 잠언이 성립되는 것이고, "그냥 외로운 채로 살아가"면서 "그걸 즐기면 된다"는 진정한 처방문이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처방을 내리기 전의 진단에서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넌 위험해진 것이"고 "혼자라고 생각하는 순간/넌 더 위험해진 것이"라고 했으니,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좀더 낫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거나 진통제에 불과한 것이어서 근본적인 치료책은 되지 못한다. 근복적인 치료를 위한 정확한 진단은 외로움의 익숙함에 대한 차이일 뿐, 다 외롭다는 것이다. 모두가 외로워서, 너 역시도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환경과 형편이 다르고 만남과 관계도 다르다. 그 속에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맞닥뜨리며 살아가는 시기가 다가온다. 그 외로움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찾아오는 근원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이나 관계의 변화를 통해 외로움을 불식시키려고 하는 것은 잠시의 처방에 불과해서, 외로움을 근본적으로 치유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외로움은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다스리는 자세는 "그냥 외로운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외로움을 "즐기면" 된다는 지혜는 외로움을 견디는 자세에 균형을 잡아준다. 이것이 환경이 좋아지고 관계가 늘어나도 또는 그 반대로 환경이 나빠지고 관계가 줄어들어도, 병들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약'의 복용과 개선에 관한 사용설명서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