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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27] 늙은 아이가 '소풍'을 왔다
2019년 09월 16일 (월) 11:47:50 이종섭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소풍
변영희


늙은 아이가 소풍을 왔다

땅에 엎드려 지문을 찍을 때마다
둥글게 자라는 무덤

다시 품어보겠다는 양
다시 돌아가겠다는 양

엄마는 다시 배가 부르다

 

벌초와 성묘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벌초는 힘들기도 하고 성묘는 번거롭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여운과 잔상이 오래 남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상과 자신이 죽음으로 소통하면서 자연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나 감정의 흔들림 위에 얹혀지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무덤에 가는 사람은 "늙은 아이"입니다. 물론 젊은 사람도 가고 아이도 가지만, 무덤을 향하고 무덤과 교감하는 사람은 "늙은" 사람이 주가 되므로 "아이가 소풍을" 가는 날처럼 무덤으로 갑니다. 무덤이 소풍의 장소가 될 리는 없겠지만 부모를 찾아가는 당사자로서는 "아이"가 될 수밖에 없고, 또 무덤 앞에서 "아이"가 되어 어릴 적 생각을 하게 되니 "소풍을" 간다고 하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소풍을 가면 놀이를 하고 놀이에는 결과가 있는 것처럼 "땅에 엎드려 지문을 찍"고 그때마다 "둥글게 자라는 무덤"을 봅니다. 무덤 앞에서 절을 하는 행위를 묘사한 것이지만 소풍을 간 장소에서 다 함께 손을 잡고 놀이를 하거나, 손을 이용해서 노는 술래잡기 같은 놀이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그렇게 하는 행위의 정서는 "다시 품어보겠다는" 것과 "다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쳐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품어보겠다는" 마음,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워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인해 "엄마는 다시 배가 부르"게 되었습니다. 소풍을 가서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것처럼 엄마도 엄마의 무덤에 소풍을 와서 배부르게 먹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배가 고파지면 다시 소풍을 와서 배부르게 먹을 것이구요.

벌초와 추석 명절이 일찍 시작된 올해 가을을 그 배부름이 더욱 깊고 그윽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아직 허기가 가시지 않아 배고픔이 느껴진다면 언제 한 번 아이처럼 "소풍"을 다녀오면 되겠구요. 무덤이 없는 수목장이나 납골 공원이면 어떻습니까. 소풍을 가서 거기에 꼭꼭 숨어 있는 어머니나 아버지를 손으로 치면서 '찾았다'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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