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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㉑] '수채화'
"욕망의 물감들 질척인 오후가 되면 덧칠을 거듭하는 우리들의 숲은"
2019년 08월 05일 (월) 17:26:50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수채화
박부민


여백이 서늘한 빗물을 머금으면
지친 골짜기 속 깊이 해맑아오는데
욕망의 물감들 질척인 오후
덧칠을 거듭하는 우리들의 숲은
본색을 잃고 탁해지곤 한다
하늘이 훈훈한 바람을 불러
축복의 새 떼를 풀어놓을 때에야
비로소 잎들은 투명한 눈을 뜨고는
숲에 남은 빛을 마을로 조용히 흘려보낸다

비가 쓰다듬던 상처마다
글썽이던 눈물을 털며 나무들은
저물수록 더 푸르러지고
넉넉한 강물을 빨아 마시는 화폭의 들판엔
야윈 벌레들이 숨 가쁜 필력으로 그림을 그린다
기법도 화려함도 없이
오직 몸부림으로 완성하는 소품들
그때, 화면 가득 솟구치는 눈물 기둥을 역주행하듯
별들이 달려와
온 산골 등불들로 다시 웃으며 돋아난다

빛을 품은 것들은
저토록 함께 꿈틀대며
하루분의 명도를 이뤄내는구나
또 한 번 무채색을 엎질러 놓은 저녁
천지간 먹물 속에서도
반짝이며 끝내 살아 푸르스름한 것은
빛에 스민 물의 피
피로 번지는 비의 싱싱한 영혼이다


폭염에 시달리는 마음이 박부민의 「수채화」를 읽는다. 숲속에 들었다고 하면 될까. 숲의 색채가 참으로 시원하다. 수채화는 물을 사용한다. 물로 그린 그림과 물이 흐르는 화폭이어서 수채화야말로 자연을 그리기에 본질적으로 가장 적합하다. 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자연을 구현할 때 그 물의 성질을 이용하여 그리는 수채화가 맑고 투명한 자연의 속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박부민의 「수채화」는 "여백이 서늘한 빗물을 머금"는 붓질로 시작한다. 그때 "지친 골짜기 속 깊이 해맑아"온다. 그러나 그런 숲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욕망의 물감들 질척인 오후"가 되면 "덧칠을 거듭하는 우리들의 숲은/본색을 잃고 탁해지곤" 하는 것이다.

'해맑음'과 '욕망의 덧칠' 이 두 가지는 함께 공존할 수 없지만 인간 세계와 마찬가지로 숲의 세계에서도 함께 공존한다. 숲을 보는 것은 사람이니 결국 숲을 통해 사람을 투영할 터, 사람의 문제를 숲을 통해서 발설한다.

"해맑아오는" 숲이 "본색을 잃고 탁해"졌을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훈훈한 바람"과 "축복의 새 떼"가 해결한다. "바람"은 "하늘"의 숨결이요, "새 떼" 또한 "축복"의 표상이다. 이 두 가지를 합친 '하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잎들은 투명한 눈을 뜨고는/숲에 남은 빛을 마을로 조용히 흘려보"낸다. 숲을 지으신 이가 "하늘"이시니 그 숲이 "본색을 잃고 탁해졌을 때"도 역시 '하늘의 축복'으로 소생하게 되어 그 "빛을 마을로" 보낼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은 "축복의 새 떼" 뿐만 아니라, '치유의 비'를 내려준다. '하늘의 비'가 "상처"를 쓰다듬어줄 때 "나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글썽이던 눈물을 털"면서 더욱 푸르러지고, '하늘의 비'로 인해 "넉넉한 강물을 빨아 마시는" "들판"도 바로 그 순간 "화폭"으로 변해 "야윈 벌레들이 숨 가쁜 필력으로 그림을 그"린다.

'축복과 치유'가 넘실대는 생명의 화폭에 "빛"이 가미된다. "기법도 화려함도"근사하게 구사할 수 없지만, "몸부림으로 완성하는 소품들"과 "화면 가득 솟구치는 눈물"로 덧입힌 별빛. 그 빛을 위해 기꺼이 "별들이 달려와" 주었기에 "온 산골 등불들로 다시 웃으며 돋아"난다.

"글썽이던 눈물을 털"어낸 "나무들"이 흘린 "솟구치는 눈물"은 기도가 된다. 그 기도가 별빛으로 곱게 물들인 또는 그 별빛 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눈물로 "하루분의 명도를" 완성하는 "무채색을 엎질러 놓은 저녁"을 펼쳐놓았다.

그 '무채색의 저녁'에도 색이 있고 생명이 있다. "무채색" 속에서 꿈틀대는 푸른색, 그 푸른색은 "반짝이며 끝내 살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빛에 스민 물의 피/피로 번지는 비의 싱싱한 영혼”이기 때문이다. 저녁의 무채색 아래 "푸르스름한 것"은 "물의 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 곧 "비의 싱싱한 영혼"이다.

그러므로 "물의 피"는 붉은색이 아닌 푸른색이라고 정의한다. "비의 싱싱한 영혼"이 가진 심장도 푸르다고 정의한다. 따라서 내 피는 푸른색이며 내 심장도 푸르다고 믿는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
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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