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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없는 색'을 생성해 내는 이종섶의 세 번째 시집
'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논(論)에서 학(學)의 차원으로의 도약
2019년 07월 30일 (화) 09:49:04 양주승 기자 webmaster@bucheontimes.com

Done을 None으로, None을 New로 변주해 내는 시인이 있다.
그는 이미 정의 내려지거나 규정된 존재들조차 공(空)의 상태로 돌려놓는다. 이미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모조리 허물고 새로운 인식의 통로를 열어 가는 것이다. 그 통로는 낯설고 황량하다. 그는 그토록 낯설고 황량한 통로에서 전혀 생소한 색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가 ‘시인의 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상에 없는 색을 향한 목마름"으로 이전에 없던 색을 끈질기게 생성해 낸다. 그 색은 곧 그의 언어이며 시 그 자체다.

부천타임즈에 <이종섶의 詩장바구니>를 연재하고 있는 이종섶 시인은 이미 알려진 대로 "사물을 본래의 자리에서 끌어내어 새로운 자리에 위치시키는 언어의 연금술사"(고인환 문학평론가)이며, "제재들에 시인의 독특한 의식을 투영하여 낯설고 강렬한 충격을 불러일으"(『바람의 구문론』 책 소개문)키는 시인이다.

'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출판사:문학수첩,160페이지, 정가 8천원)

   
▲ 도서출판 문학수첩 <수선공 K씨의 구두학 기술>,160페이지, 정가 8천원

다음은 출판사 서평이다.

그간 지각의 범위를 확장하며 언어를 조합해 온 이종섶 시인은 4년 만에 출간하는 세 번째 시집 『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에 이르러 "논(論)에서 학(學)의 차원으로의 도약을 시도한다"(기혁 문학평론가). 대상을 부수고 깨뜨려 '논'하던 그는 이제 대상 너머의 세계로 지평을 확장해 ‘학’을 구축해 낸다.

'학(學)'을 구축해 가는 도정에서도 그는 좀처럼 무엇을 정의 내리지 않으며, 그 무엇도 섣불리 규정하지 않는다. 대상을 '정의'하고 '규정'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인 까닭이다. 그는 다만 '지상에 없는 색'을 끊임없이 발견해 내어, 그 색으로 지금 여기, 그 너머를 그려 낼 뿐이다. 보는(읽는) 이는 그저 온 감각을 열고 이 낯설고도 생경한 그림(학문)을 음미하며 이전의 인식을 허물고 새로운 대상을 마주하면 되는 것이다.

낯선 '학문'에서 발견되는 가없는 '공동'

수선공 K씨의 구두 수선학은 단순히 지식을 나열한 현학적인 연구가 아니다. "현장 경험에 바탕을"(「구두 수선공 K씨의 구두 수선학」) 두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축적된 그의 노하우는 어엿한 '학(學)'의 차원으로 체계를 갖춘다. 이 학문 안에는 무수한 세부 영역이 존재한다. "앞굽선호이론"을 비롯해 "창갈이학", "모방 기하학", "미적분 수선학" 등이 그러하다. 이 세부 학문은 저마다 역사와 근거를 지니고 있다.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가져다붙인 것이 아니라 연구를 통해 논리를 확보한 이론인 것이다. 이는 수선공 K씨가 '구두'를 통해 정립해 낸 인생 공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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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클리드 구두 기하학 총론 초등 수선학이 완성되는 날, 데카르트가 좌표 개념을 도입해 바닥 수선학을 주창한다 밑창이 꺾이거나 갈라졌을 때 필요한 창갈이학의 토대가 이루어진다 발을 본떠서 수선하는 모방 기하학도 확립된다 걸을 때마다 꺾이는 어제와 쩍쩍 갈라지는 오늘이 미적분 수선학의 발견으로 감쪽같이 해결, 내일을 광낸다

4
19세기 위상도입개념, 수학과 자연과학뿐 아니라 디자인계까지 일대 혁신을 가져온다 뒷꿈치를 꺾어 신어 기형이 되어 버린 구두 각을 계산해 유행을 창조한다 재료는 끊어져 나간 실밥과 발자국 무게로 달아 놓은 배고픔……
―「구두 수선공 K씨의 구두 수선학」 부분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시에 존재하는 공백 말이다. 유클리드, 데카르트 등 유수한 학자들 그리고 "모방 기하학", "미적분 수선학" 등의 번듯한 학명과 "구두 각","실밥","발자국 무게" 등 지극히도 현실적인 단어 사이에는 "구두 수선학"이라는 학문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동(空洞)이 존재한다. 그 공동은 "역사적 사실의 유무, 명제의 참, 거짓"(해설, 「수선공 K씨가 절대자를 구술하는 방식」)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구멍)이다. 이종섶 시인은 이처럼 시를 통해 낯선 학문을 제시함으로써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는 ‘구멍’(동굴이나 웅덩이 등)을 곳곳에 배치해 둔다. 이는 비단 「구두 수선공 K씨의 구두 수선학」에 해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쥐구멍을 탐사해서 완성한" 「프로파일러 P씨의 고양이 프로파일」, 드라마와 드러머의 연관 관계를 서술한 「드라마 앤 드러머」, "아마추어 이기주의와 프로의 무책임"에 관한 「필드 윤리학―모럴과 오럴의 해저드 표류기」, "희고 검은 감옥"인 피아노에 관한 「피아노 해부학―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과 같은 시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 시인은 다양한 분야에 ‘학’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의 '―학'은 어딘가 낯설고, 그래서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이 시집 곳곳에 포진된 구멍 또는 빈 공간이 마치 '크레바스'처럼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그 균열에 발을 헛딛는 순간, 가없는 공동으로 빨려들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곧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모든 감각이 열리고 환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시집을 조금도 허투루 흘려 읽을 수 없는 이유다.

표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실은 전부인 것

표면이라는 것
감싸고 있는 속을 숨겼다 들켰다 하면서 방어의 최전선에서 중심 노릇까지 해야 하는 그 표면이라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실은 전부인 것이어서
그곳에 둥지를 튼 발톱이 뽑히지 않는
―「뿌리의 힘」 부분

시인은 '너머'를 이야기하기 위해 '표면'에 주목한다. "방어의 최전선에서 중심 노릇까지" 해내는 "그 표면이라는 것"은 결국 "전부"일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대상의 본질을 감싸는 외피에 불과한 무수한 시어들이 한 편의 시로 완결되었을 때 그 대상의 '전부'로서 작용하듯이 "감싸고 있는 속을 숨겼다 들켰다 하"는 표면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실은 전부"를 표상한다.

이종섶 시인은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표면의 속살을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표면을 두드린다. 계속해서 두드리면 표면이 부서지고 깨어져 마침내 본색을 드러낼 테니 말이다. 아마도 시인은 그 작업을 "마음껏" 계속할 것이다. 사물과 존재(「바위」, 「버섯」, 「나비화석」, 「붉은 장갑」, 「굼벵이」, 「우체통」 등)를 끊임없이 두드려 보고 치열하게 재해석하면서 "파괴가 아닌 건설"이자 "교란이 아닌 확장"으로 "변형이 완전하게 정착되면서 입에 붙을 때까지"(「성형외과」) 말이다.

시인은 언어와 지식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온 존재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종섶의 "구술" 작업은 현실 너머 진리 자체가 아니라 "표면"을 말하는 쪽에 가깝다. 굳이 현상학적 사유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불가해한 우리의 삶은 "속을 숨겼다 들켰다 하면서 방어의 최전선에서 중심 노릇까지 해야 하는 그 표면이라는 것"에 속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불완전한 언어와 지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전달이 불가능한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실은 전부인 것”이란 우리의 지각 너머에 있는 것이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지각의 범위에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실현 불가능한 그 "전부"를 이야기하기 위해 불가능한 이상을 말하는 쪽을 택한다는 것은, 결국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대상의 부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요청을 역설하는 것이다
―해설, 「수선공 K씨가 절대자를 구술하는 방식」 부분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 <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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