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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아의 여행스케치 ⑦] 메이지신궁
2004년 09월 24일 (금) 00:00:00 배선아 기자 immyself@freechal.com

도시 속의 푸른 숲에 잠시 머물다
<각종 스트레스들로 인해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 극에 달하면 가끔 인천공항으로 차를 몬다.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어 도착하고 떠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기도 하고, 리무진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어두운 밤하늘에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그들 특유의 활기와 생기가 전해져 온다. 덕분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음악의 볼륨을 한껏 높인다. 일탈에 대한 이러한 짧은 맛보기는 대단히 효과적이다. 그다지 멀리 나온 것도 아닌데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무척 즐겁게 느껴지기까지 한다.(2004 6월 ‘여행수첩’ 중에서)>

   
▲ 하라주쿠 역 앞. 1920년대에 지어졌다는 역사(驛舍, 사진 왼편)는 도심의 지하철역이라기보다는 주변의 풍성한 가로수들과 함께 고풍스러운 전원주택처럼 보인다. 역 뒤편으로 메이지신궁이 위치해 있다

국내외를 통틀어 민박집에 머무른 것은 이번의 동경 여행이 처음이었다. 취재를 위한 출장이 대부분이었고 나머지는 잘 짜여진 관광코스가 아니면 가족 방문이었던 덕분이다. 사실 안락한 숙박시설에 큰 돈을 쓰기보다는 그를 아껴 대신 식도락을 즐기거나 기념품을 사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4인실 방도 전혀 꺼려지지가 않았다. 고생스럽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고 누군가 조언해 준 기억도 한몫을 했다.    

모처럼 늦잠 한 판을 잘 자고 일어나 주방 쪽에 가보니 아무도 없다. 식탁 위에는 김치와 콩나물 무침, 그리고 몇 가지 맛깔스런 밑반찬이 보였다. 주인아저씨가 지나가시면서 밥통에 새 밥을 해놨으니 먹으라고 하신다. 국도 있단다. ‘어머, 밥도 주세요?’ 민박이라면 오직 잠자리만 제공하는 줄만 알았는데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고, 이게 웬 떡, 아니, 김치냐.

아침도 안 주는 값만 비싼 호텔에 갔더라면 정말 후회할 뻔 했다.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담그셨다는 김치의 그 맛이라니! 그 동안 내내 일본 음식만 먹었던 지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따끈따끈한 흰쌀밥을 두 공기나 해치웠다. 아, 이제야 살 것 같다. 어느 나라 음식이건 가리지 않는-너무 맛있어서 오히려 없어 못 먹는-왕성한 식욕을 가진 나지만 내 입맛에는 뭐니 뭐니 해도 우리 김치가 최고다.

오랜만에 거나하게 먹고 나니 기운이 솟는다. 지갑, 카메라, 지도, 물병, 선글라스, 수첩... 잃어버리면 큰 낭패인 여권까지 단단히 챙겨 의기양양 민박집을 나섰다. 첫 목적지는 하라주쿠(原宿)에서 시부야(澁谷)까지 이르는 지역이다. 가까운 거리라 도보로 다니면서 꼼꼼히 둘러보기로 했다. 또 다른 목적지인 롯본기는 역시 밤에 가야 제 맛이 날 터. 돌아다니다가 대충 저녁 끼니를 해결하고 그곳에 가기로 동선을 짰다.

역까지는 겨우 5분여 거리지만 친구 D 없이 처음으로 혼자 나서는 동경길이라 보도블록을 밟는 발걸음 하나에도 괜히 더 힘이 들어간다. 신오오쿠보(新大久保) 역에서 신주쿠(新宿)로 한 정거장을 간 다음, JR로 갈아탔다. 동경의 지하철은 같은 도내(동경의 정확한 명칭은 市가 아니라 都이다)라 할지라도 가는 거리만큼 요금도 올라간다. 환승역까지 합쳐 네 정거장 정도의 가까운 거리라서 가장 싼 160엔의 티켓이면 충분했다.

   
▲ 30만평의 광활한 부지에 약 13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어 도심 속의 푸르른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메이지신궁의 대문 앞에서. 이 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재로 불탔다가 1958년에 다시 지어졌으며 동경 내에 있는 신사 중에서 가장 명소로 꼽힌다

메이지신궁은 원래 그저 지나치려고 했던 코스였다. 그런 나를 멈춰 세운 것은 바로 아마 자연의 힘이었던 것 같다. 나이테를 세다가 하루가 다 지나가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나무 기둥과, 그 뒤로 푸르디푸르게 우거진 숲과 녹음의 행렬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안 되겠다. 여기까지 왔으니 기념촬영만이라도 해놓자.

“쓰미마셍. 포토 구다사이.(실례합니다. 사진 좀...)”
“에? 아노, 하이.(아, 네.)”
“아노, 고노 몬오 입빠이 구사다이. 후르, 후르(full)데쓰요.(저기요, 저 문을 화면 가득 차게 해서 부탁합니다.)”
“하하하, 하이, 와카리마쓰.(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때마침 교복을 입은 귀여운 여학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찍어줄 사진에 문이 커다랗게 나왔으면 한다는 의사를 전달하려고 눈을 크게 뜬 채 엉터리 일어는 물론 영어 단어, 그리고 손짓발짓까지 합세했더니 의외로 쉽게 말이 통한다. 그런 관광객다운 내 말투가 재미있는지 카메라를 건네받은 여학생이 천진난만하게 까르르 웃는다.

찰칵! 디지털 카메라의 액정 화면에 찍힌 사진이 마음에 드느냐는 듯이 보여준다.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일본어를 잘 못하면 좀 어떠랴. 벌써 나흘째다. 동경에 도착한 날부터 지금까지 비록 엉터리이기는 하나 간단한 의사소통은 물론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구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에 더욱 기운이 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운 좋게 친절한 사람들만 골라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 신궁으로 향하는 길에서 정체도 모른 채 일단 기념용으로 찍어 두었던 사진. 나중에 친구 D가 그 모두가 술통이라고 알려줘서 깜짝 놀랐다. 이 술들은 제례나 기념일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 사용된다고

내친 김에 입구에 들어서서 신사만 아니라면 꼭 잘 만들어놓은 산책로 같은 길을 걸어보았다. 앞쪽에서 정식 기모노를 입은 아주머니 두 분이 게다를 신고 자갈길 위를 종종걸음 친다. 언제 보아도 기모노의 화려하고 농염한 색감에는 저절로 시선이 끌린다. 메이지신궁에서 전통 혼례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격식 있게 잘 차려입은 옷매무새를 보니 아마 하객으로 가는 길일까.  

술통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자마자 서둘러 그 곳을 빠져 나왔다. 동경 젊은이들의 패션 감각과 유행 경향을 느낄 수 있는 하라주쿠에서도 주말이면 넘치는 인파로 걷기조차 힘들다는 그 유명한 다케시다 도오리로 향하기 위해서다. 하라주쿠 역 앞에서 길을 건넜다. 이상하다. 어디지? 지도상으로는 맞게 온 것 같은데.

지나가는 행인에게 다케시다 도오리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물었더니 빙긋 웃으면서 ‘바로 여기가 거긴데요’하고 가르쳐 준다. 순간 내가 서 있는 작은 골목이 그제야 눈에 제대로 들어온다. 아, 여기구나. 조용하고 단정하게 꾸며진 메이지신궁에서 겨우 도로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너무나 대조적인 분위기다. 젊음과 패션, 유행과 탐닉이 시끌벅적한 골목 구석구석에 넘친다.

   

<배선아 님은> 방송작가, 카피라이터, 작사가, 잡지 자유기고가 등으로 글을 쓰고 있는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위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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