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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동 할머니, 훨훨 가세요" 평생 싸우던 日대사관앞 작별인사
2019년 02월 01일 (금) 13:35:06 양주승 기자 webmaster@bucheontimes.com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다. 2019.2.1/뉴스1 © News1 허경 기자

본 기사는 부천타임즈가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김정현 기자 = "순덕이 형, 수고했네. 열심히 싸워서 일본한테 항복을 받도록 싸우다가 따라갈게. 나도 뒤따라갈테니, 우짜든지 가서 잘 살기를 바라네. 잘 가요."

지난 2017년 별세한 고(故) 이순덕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모습이 스크린에 펼쳐지자,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헌신하던 김복동 할머니는, 1일 먼저 간 동지들과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났다.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서울 종로구 구(舊) 일본대사관 앞에서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시민장 영결식'이 치러졌다. 구 일본대사관 앞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27년째 열리는 곳이다. 김복동 할머니는 건강이 나빠지기 전까지 늘 수요집회에 참석해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해왔다.

소녀상이 위치한 평화로 앞은 김복동 할머니를 배웅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시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통상 수요집회 참석자들이 인도 1개 정도의 공간을 차지했던 것과 달리, 이날은 94개의 만장에 둘러싸인 참석자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이날 서울에는 체감온도가 최저 영하 13도를 기록하는 반짝 한파가 찾아왔지만, 참석자들은 저마다 두꺼운 점퍼와 목도리 등으로 무장한 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우리의 영웅 김복동', '우리의 마마 김복동'. 만장에 쓰여 있던 문구는 세계 각지에서 전시 성폭력으로 고통받던 여성 피해자들이 김복동 할머니를 부르던 이름이다. 참석자들은 전시 성폭력 피해 고발을 넘어 전쟁범죄 처벌과 평화 도래를 소리 높여 외쳤던 고인의 삶을 되새기며 그의 뜻을 이어 나갈 것을 다짐했다.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에서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2.1/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첫 번째 추모사는 김복동 할머니를 생전부터 임종 직전까지 지켜봐 왔던 이들 중 한 명인 권미경 연세대의료원노조 위원장이 맡았다. 목이 잠긴 채 연단에 오른 권 위원장은, 김 할머니가 세상을 향해 닫았던 마음을 열고 고통 속에서도 강인한 투쟁을 이어 나가던 시절의 추억을 되짚으며 끝내 참았던 오열을 토해냈다.

권 위원장은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매달 오는 우리에게 어느 날은 앉아서 손을 잡아 주셨고, 어느 날은 '짜장면 사 줄 테니 먹고 가라'시며 바지 속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 넣은 지폐를 꺼내셨다"며 "그날 먹은 짜장면이 왜 그리 맛있었는지 계속 기억이 난다"고 울먹였다.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병원에 가지만 너무 싫다던 할머니는 대장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 정도 병은 이긴다,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 살아야 한다'며 좋아하던 담배도 하루아침에 끊었다. 그 모습이 무척 크게 보였다"며 "할머니의 상처를 보며 아파하던 우리에게 강하디 강한 여성인권운동가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진통제마저도 듣지 않을 무렵 투병에 힘겨워하던 김 할머니가 '엄마'를 부르면서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을 회상하며 "그래도 간호사인데 아무것도 못하고 손밖에 잡아드릴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며 "복동 할머니, 이제 배 안 아프시죠? 눈도 잘 보이시나요? 그래서 저희를 환한 미소로 바라보고 계시죠?"라며 하늘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는 "그 오랜 세월 모질고 모진 고통과 상처를 잘 견디고 잘 싸웠다고 어머니가 꼭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그 곳으로 마음 편히 훨훨 날아가시라"며 "남아 있는 우리가 끝까지 잘 싸워서 끝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흐느껴 울었다.

두 번째 추모사를 맡은 극단 '고래'의 이해성 대표 역시 "아픔과 외로움,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는 그런 고통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다 가신 할머니의 숭고함을 마음 깊이 새기겠다"며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계실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평화를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엄수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2019.2.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할머니의 뜻에 따라 할머니께서 편히 가시라고, 길었던 시간 함께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손을 흔들어 달라"고 참석자들에게 요청했다. 그의 요청에 따라 참석자들은 일제히 한 손에 들고 있던 나비 모형을 하늘을 향해 조용히 흔들기 시작했다. 모형이 없는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었으나, 차마 손을 올리지 못하고 조용히 눈물만 훔쳐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영결식이 끝난 직후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을 필두로 한 상주단이 헌화를 시작했다. 금방 자리를 뜨지 않고 헌화한 뒤 돌아가는 시민을 덕에 김복동 할머니의 영정 앞에는 저마다의 다짐과 마음을 담은 국화가 수북히 쌓였다.

은평구에서 온 김동한씨(67)는 "다 같은 마음일 것인데 지금 한일 관계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고 아베 정권이 준동하고 있다"며 "김복동 할머니의 투쟁사를 보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온 이혜영씨(24·여)는 빈소와 노제에는 찾아가지 못했지만 시간을 내어 영결식에 참석했다. 이씨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사람들이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 명이라도 머릿수를 더 채우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유해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 후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된다.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엄수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을 마친 후 장지로 향하고 있다. 2019.2.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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