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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원에 도전하는 용감한 '무수리' 홍진아
홍진아 "최고가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자"
2018년 02월 16일 (금) 10:36:16 부천타임즈 webmaster@bucheontimes.com

본 기사는 부천시 심곡1동과 2동, 3동, 소사동, 원미2동에 출마하려는 홍진아씨의 블로그 (https://m.blog.naver.com/hja1107/221183164134)에 실린 기사를 홍씨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대담 : 정재현 부천시의원, 정리 : 최수진 프리랜서>

   
▲ 홍진아

부천시 심곡1동과 2동, 3동, 소사동, 원미2동에 부천시의원으로 출마하려는 홍진아 전 북초 운영위원장은 공주가 아닌 무수리에 가깝다.

1975년 11월 7일. 그의 태(胎)를 묻은 자리는 도당산 아래다. 부천시 도당동에서 딸 다섯에 셋째 딸로 태어났다. 삼대 독자였던 황해도 출신의 아버지는 아들을 낳겠다는 일념(?)으로 다섯째 딸까지 낳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실패했다. 아들은 낳지 못했고 딸만 다섯이 됐다.

부천시 약대동에서 목공업과 건축을 하던 홍 씨의 부친 고 홍순섭 씨는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더 이상 아들을 기대할 수 어려운 상황이 됐다.

망한 집의 다섯 중 셋째 딸

기억나진 않지만 '건축 파동' 쯤이었다. 아버지가 망하니 집도 망했다. 유치원이 사치였던 시절이 있다. 일곱 살 시절 남들이 많이 다닐 수 없었던 유치원까지 다니며 사랑을 독차지하던 셋째 딸의 행복은 여기까지였다. 2층 집에서 단칸방으로 이사한 우리는 일곱 식구 끼니를 걱정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까지 일터로 나가셔서 8살 어린 나이에 동생 둘 밥 챙겨가며 돌봐가며 학교를 다녔다. 학창 시절 집안 사정으로 하고 싶은 무용도, 합창도 포기해야 했다. 심지어 '김밥 싸줄 돈이 없다'는 어머니의 말에 소풍을 접기도 했다. 혹여나 학교에서 임원이라도 하면 돈이 드는 상황을 알기에 소녀 시절 홍 씨는 꿈도 꾸지 않았다.

먼저 집안 눈치를 살펴야 했다. 부천시 깊은구지(심곡본동) 산 위의 정명여상(현 경기경영고)을 진학한 것도 역시 눈치를 살핀 결과이다. 집안이 대학을 보내 줄 사정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돈 벌어서 동생들이라도 대학을 보내자'는 생각에 상고를 선택했다. 어린 시절 홍 씨의 삶은 가난이 지배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그의 인생에서 고등학교 시절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가정이 어려운 홍 씨는 부천의 유일한 상고였던 정명여상에 진학했다. 원래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상고이고 하니 맘 편히 먹고 첫 시험을 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내동중학교 당시엔 반에서 상위권과 중상위권 사이를 오갔다. 그런데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 중간을 한참 지난 등수를 기록했다. 충격이었다. 학교를 살펴보니 집안 형편상 일반고 진학을 포기하고 상고에 온 아이들이 대부분 상당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투성이'었다. 실제로 내동중학교 당시 전교 1~2등 하던 아이가 같은 반이었다. 첫 시험의 충격 이후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했다. 물론 학교 다니면서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여상은 보통 3학년 1학기가 되면 면접으로 보고 2학기가 되면 취업을 나간다. 취업을 나가기 전까지 한 번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고 상위권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세상일이 모두 그렇지만 성과가 보이면 공부도 취미가 붙는다.

   
▲ 새마을금고 근무시절 홍진아

"최고가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자"

당시 홍 씨가 이렇게 외웠다. 지금까지 좌우명이 됐다. "최고가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자!" 인생을 살면서 나에게 주어진 일이든 사람이든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한 결과가 꼭 최고이길 바라면 최선의 과정에 편법이나 나쁜 행동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중간에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도 어떤 결과가 나오던지 만족할 수 있다. 아직까지도 인생의 좌우명은 "최고가 아니어도 최선은 다하자"란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1993년 10월 상고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군이 금융권에 취업할 수 있었다. 아주 좋은 곳은 아니었다. 제2금융권 새마을금고였다. 당시 새마을금고는 상고 출신으로 학벌과 상관없이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직장이었다. 대부분 직원이 상고 출신이기도 한 덕분이었다.

용감한 무수리 홍진아...새마을금고 노조 결성, 여성부장을 맡다

홍 씨의 최선을 다하는 성품은 빠른 승진을 안겼다. 직장 안에서 그의 미래는 비교적 밝았다. 그러던 중 입사 7년 차인 2000년 새마을금고의 노조를 첫 결성했다. 당시 노조의 여성부장을 맡으며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공부했다. 노동자의 기본인 단체협약을 체결하자는 요구도 용납하지 않았다. 파업과 해고, 복직을 이어갔다. 홍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꽤나 용감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의에 맞서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 앞에 서 있었다."고 말이다. 결혼 후 1년 뒤에 자연스럽게 경력이 중단된다.

   
▲ 홍진아의 결혼사진

2002년은 월드컵 열기로 뜨거운 해였다. 인생에서도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한다. 녹차로 유명한 전남 보성 출신의 한 남자와 1년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양가의 도움 없이 남편이 모아놓은 1천만 원, 서로 대출받은 3천500만 원을 보태 부천시 심곡2동에 작은 전셋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 홍진아의 북초등학교 운영위원장 시절 가족 등반대회

북초등학교 초대 학부모회장에서 운영위원장까지

'굉장히 성실하고 착한 남편'과 '지혜롭고 예쁜 딸 하나'를 낳고 아주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했다. 원래 홍 씨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본인 스스로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부모로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제도와 양가의 압력으로 포기하고 하나만 낳기로 하고 얻은 딸이었다. 홍 씨는 "어찌됐던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훌륭한 부모가 되려고 노력했고, 앞으로 정치도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모든 일을 접고 아이를 뒷바라지했다. 결국 인생의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되는 계기였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 친구들 모든 구성원들이 행복해야 우리 아이도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소신인 "최고가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자"는 인생 좌우명이 학교 일로 그를 불렀다.

덕분에 그는 부천북초등학교 초대학부모회장을 했고, 부천 원미구 어머니폴리스 단장도 맡았다. 학교의 안과 밖을 가리지 않았다. 이어서 부천북초 운영위원장까지 됐다. 사실 홍 씨는 "남 앞에 나서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내세우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게 돕겠다는 목표가 날 움직였고 보람 있는 일에 앞장서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 정명여상 재학시절 홍진아

치맛바람과 진정성

무수리 홍진아 씨는 "당시 학교에서 어려운 아이들이 먼저 눈에 띄고 맘이 가는 건 나의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그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 거 같다."고 털어놓는다. 치맛바람으로 불리는 학교일. 부정적인 시선도 가득하다. 덕분에 주변의 시기와 질투도 많고 이리저리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홍 씨는 진정성을 믿는다.

"내가 떳떳하게 행동하고 행동에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행동하면 그 진정성은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활동했고, 모든 일을 마쳤을 때 드디어 내 맘을 알아줘서 고맙고 뿌듯했다."고 회상한다.

혹시 외모로 손해 보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우리 사회에 그런 경우는 많다. 사실 홍 씨도 그렇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 외모만 보고 부잣집에서 잘 자랐거나 서울깍쟁이 일 거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인디언 추장 딸, 홍카리스마, 홍다르크, 타고난 무수리라고 부른다."

홍 씨는 '겉만 보면 공주과! 알고 보면 타고난 무수리' 란다. 참고로 무수리는 고려와 조선 시대 궁중에서 청소의 일을 맡은 여자종을 이르는 말이다.

   
▲ 홍진아

타고난 무수리 홍진아

무수리 홍진아 씨는 어떤 일 이든 안 맡으면 모를까 맡은 일에 책임감 있게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다. 그는 촛불집회에서 많이 배웠다. "2016년 겨울 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광화문 촛불집회. 그전까지 누군가 나서주겠지 누군가 해결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남편과 아이의 손을 잡고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며 외치고 함께 하며 승리할 수 있었다."고.

다른 깨달음도 있다. "그때 알았다 나 하나쯤이야 가 아니고 내가 움직여야 세상은 바뀐다는 것을. 이제 정의를 위해 나설 줄 알고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감함과 우리 아이가 사는 세상이 좀 더 행복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내 지역을 살피고 걱정하고 소외받는 사람들 없이 오지랖 넓게 찾아다니며 최선을 다하는 정치인으로 살려고 한다."

그의 오지랖이 세상을 조금만 바꿀 수 있어도 무수리 홍진아 씨에겐 분명하게 성공한 인생이 될 것이다.

   
▲ 부천시선관위 지방선거 설명회에 참석한 홍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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