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8.11.14 수 03:59
,
   
+ 로그인 독자회원가입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보도자료
> 뉴스 > 사회/정보
       
사회적기업 박명혜 대표, 시의원에 도전하다
정재현 의원 "박명혜 대표의 건승을 빈다"
2018년 02월 03일 (토) 17:01:52 부천타임즈 webmaster@bucheontimes.com

본 기사는 정재현 부천시의원(원미1동, 역곡1·2동, 춘의동, 도당동 출신)의 블로그(http://blog.naver.com/newmo68)에 실린 기사를 정 의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대담 : 정재현 부천시의원, 정리 : 최수진 프리랜서>

   
▲ 행복도시락 박명혜 대표

2017년 7월 말 <행복도시락> 박명혜 대표가 부천시의원에 도전한다고 상담하러 왔다. 그것도 경쟁자인 나에게 말이다. 출마의 이유가 궁금했다. 사실 박 대표와 나와는 워낙 오래된 사이다. 1994년 <부천시민신문> 기자 초년병 시절 아남반도체의 노동조합 간부일 때 처음 만났으니 벌써 20년이 넘는다.

그렇다. 많이 아는 사이다. 하지만 많이 모르는 사이다. 나도 궁금하고, 부천시민 여러분에게 나의 경쟁자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만났다. 내가 ‘잘 알지만 모르는’ 박명혜 대표를 다시 만나서 인생이야기를 '쭈~ 우~ 우~ 욱' 길게 들었다.

부천의 사회적기업 1호인 <행복도시락(주)>은 2006년 8월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 경기 부천점(이하 행복도시락)으로 문을 열었다. 박 대표(부천시 역곡동, 46)는 2009년 12월부터 대표를 맡았다. 사회적기업 경영자에서 시의원에 도전하는 셈이다.

야학교사를 꿈꿨던 소녀

박 대표는 1973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봉천동에서 쭉 살았다. 형편이 어려워 취업을 하려고 경복여자상업고등학교에 갔다. 하지만 야학교사의 꿈이 있었던 박 대표는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등록금을 모아 지금은 재능대학교로 이름이 바뀐 대헌공업전문대학 경영학과 91학번으로 입학했다. 인천 제물포와 동인천 사이, 인천에 몇 개 안되는 대학이었다. 하지만 졸업하지 못했다.

박 대표는 1991년 강경대 열사의 죽음으로 학생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박 대표가 대학에 입학한 1991년까지 총학생회가 별로 없었다. 1992년에 합법적으로 총학생회가 생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상태였다. 그리고 박 대표도 1992년 총학생회 선거에 부회장으로 입후보했다. 운동권에서 2개의 선거운동본부에서 입후보했다. 그 중 여자 후보는 박 대표 혼자였다.

제적된 대학생활

학교는 총학생회장 후보 자격 조건으로 성적을 내걸었다. 그래서 학생운동을 하고 지도력이 있던 후보들이 입후보 등록을 많이 하지 못했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이겼어요. 복학생들이 봤을 때 저는 완전 애기였죠. 학교에서도 제가 그다지 튀는 학생이 아니어서 큰 거부감이 없었어요. 저는 역사공부를 하는 동아리 활동을 했고 여자 동아리 대표는 제가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조용하고, 학점 좋은 학생이었죠. 하늘의 절반, 땅의 절반인 여성 학우들이 참여하여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와 내용이 아주 오랫동안 회자되었죠."

박 대표는 당선되고 나서 학원민주화와 등록금 인하투쟁을 이끌었다. 투쟁하고 삭발도 했다. 당시 경찰서나 여러 기관에서 찾아와 교수들이 박 대표를 피난시킬 정도였다. 그렇게 학생운동을 하다가 박 대표는 1992년에 제적됐다.

노동운동 위해 부천으로

박 대표는 제적으로 학생운동을 접었다. 노동자가 되고자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여러 공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터라 공장이 매우 익숙했다. 인천에 있는 여러 공장에 이력서를 넣었다. 다 떨어졌다. 서울 출신에 전문대 중퇴인데 공장에 취업하려는 박 대표의 의도를 알아챈 것이다. 부천에 있는 기업인 아남반도체는 사람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제가 좋은 고등학교 나온 사람이라 마음에 들어 했어요."

박 대표는 1993년 5월 10일에 에 아남반도체에 입사했다. 1년 후 1994년 5월 10일 조합원에 가입해서 문화부장 활동을 하며 파업에 참여했다. 노동조합 활동을 인정해달라는 요구였다. 최소한의 권리인 노동조합 활동을 합법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파업이었다. 당시, 200명의 조합원이 1천명이 넘는 직원들의 임금을 인상시켰고, 단체협약도 체결했다.

맞고, 욕먹고, 싸우고.

서울, 부천, 인천에 있는 아남반도체 계열사 노동조합협의회를 조직했다. 전국 단위로 사업을 하며 아남 그룹 임원과 전국민주금속연맹이 교섭하는 대각선 교섭(기업별 노조에서 산별노조로 가기 위한 시도)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설립에 참여하고, 부천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했다. 하지만 노동법이 개정되고 탄압이 강해지면서 1997년부터 노동운동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무노동, 무임금에 사람들은 지쳐갔다. 그리고 아남반도체는 1999년 광주로 이전했다.

박 대표는 7년 동안 아남반도체 3교대 사업장에서 일하며 동료들과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여성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했다. "그때 참 소중하고 반짝이던 시절이었어요." 박 대표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때를 회상했다. "당시 부천지역 뿐 아니라 수도권에서 많은 분들이 우리와 함께 연대해주셨어요. 구속되신 분도 계시고, 맞고, 욕먹고, 싸우고. 전 늘 그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아직도 한경석의장님(당시 민주노총 부천지부 의장)을 뵈러 마석모란 공원에 매년 갑니다." 

또 다른 시작

박 대표는 아남반도체를 퇴사하고 필리핀과 호주로 갔다. "필리핀에서는 민중운동과 기독교운동 했던 분들을 만나서 배웠어요. 호주에서는 사회민주주의를 꿈꾸는 다양한 단체들과 소수정당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많은 것을 배웠어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본 귀한 시간이었죠."

2002년에 돌아온 박 대표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용산지회 사무차장을 맡았다. 전국공무원 노동조합에서 원칙적이던 지부가 용산지부였다. 박 대표는 그곳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합법화와 권리향상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결혼을 앞두고 지부장이 구속되어 흔한 신부마사지도 한번 받지 못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은 1998년 공부 모임에서 만난 동갑 친구다. 남편은 역사를 전공했고 지금도 역사 관련 연구자다. 당시에는 공부와 활동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덕분에 연애나 여자에겐 관심이 하나도 없던 친구였어요. 그 친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오랫동안 공을 들였고 사귀게 되었죠. 늘 거칠고 투박한 손이 부끄러웠던 저는 곱고 긴 그 친구의 손이 참 좋았고, 덥석 잡고 결혼도 하자 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린 부부랍니다."

한계를 느끼다

2004년 민주노동당 단병호 국회의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단병호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 관련 노동정책 관련 업무를 맡았다.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당시 담당 보좌관으로 다양한 사례를 공부하며 법 제정에 참여했다. 2008년까지 일하며 박 대표는 소수정당이 가진 한계를 너무 많이 봤다.

"특히 노무현 정권에서 굵직한 노동개혁과제가 줄줄이 무산됐어요. 그 당시 조금만 더 지혜로웠다면 화합해서 할 수 있는 게 진짜 많았을 거예요. 수의 부족함, 국정운영을 해보지 못한 미숙함, 조금 더 약지 못한 아쉬움을 느끼며 정치는 내가 할 게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좌절했죠." 박 대표는 다시 부천으로 돌아와서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땄다. 일자리조차 찾기 힘든 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연결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 행복도시락 박명혜 대표

사회적기업 대표가 되다

행복도시락은 부천지역 내 취업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노인, 아동 등 지역 안의 결식 우려 이웃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행복도시락은 경기부천나눔지역자활센터 공동체에서 출발했다.

SK-행복나눔재단-노동부-지자체-시민사회가 연계한 모델이다. "사실 당시 사회적기업의 개념은 굉장히 모호한 상태였어요. 모델이 없는 상태였지요. 행복도시락이 딱 떨어지는 사례였죠."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2007년에 제정됐다. 2008년에 행복도시락이 부천에서 처음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비영리성은 이제 졸업을 해야 하고, 사업적으로 굴러가야 하는 시기였죠. 내부적으로 대표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판단했고, 외부에서 대표를 데려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해요." 자활센터는 취약계층 중장년 여성의 취업을 도울 전문가를 찾는다는 공고를 냈다.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박 대표는 문을 두드렸다. "실무자 감이 아니니 대표를 맡으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결국 박 대표는 2009년부터 행복도시락의 대표를 맡았다.

9년 간 이룬 성과

"막상 들어가 보니 직원 17명 중에 14명이 취약계층에 돈 되는 사업이 없었어요. 그때부터 메뉴개발하고, 동네마다 들고 다니며 팔기 시작했어요." 뿐만 아니라 박 대표는 업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출장뷔페, 도시락 판매, 공영차고지 식당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했고, 사회적 가치도 만들어나갔다.  

박 대표가 행복도시락에서 일한지 9년 째. 부천지역 독거어르신과 학교, 아동, 예비군부대 두 곳에 도시락을 납품한다. 또 최근까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구내식당을 4년 동안 위탁 운영했다. 지금은 연매출이 7억 원이다. 박 대표는 그동안의 성과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 박명혜(왼쪽에서 여섯번째) 대표가 2017년 9월 세상을 바꾸는 사회적 기업 해외연수(일본 도쿄및 요코하마)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HACCP 인증은 고비

사회적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모든 지원이 끝난 2011년. 작업장이 계약만료로 시설을 이전하거나 폐업을 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 주변에선 폐업을 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공영차고지를 운영하며 신규 사업장을 모색했고, 새로운 곳에서 2013년에 HACCP(해썹) 인증을 받았다. 전국 행복도시락 중에 최초였다.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구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행복도시락 박명혜 대표

"사업장이 너무 작아서 무시를 당했어요. HACCP 인증을 받기 위해 1년을 직원이랑 영양사랑 이를 악물었어요. 결국 받아냈죠. HACCP 인증을 받고서 입찰을 넣으니까 예비군, 학교, 박물관 식당까지 모두 수주를 받을 수 있었어요." 폐업 위기를 딛고 HACCP 인증에 전념한 박 대표의 끈기와 노력의 결과였다.

2013년에는 행복나눔재단과 전국 행복도시락 20개 센터가 출자하여 '행복도시락 사회적협동조합' 을 설립했다. "결식아동들이 편의점 카드로 식사하는 정책이 시행 된 후 전국의 행복도시락 센터들이 힘을 모으고자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됐어요." 박 대표는 전국 조직인 사회적협동조합에서 교육 이사를 맡았다. 결식이웃들의 영양문제 해결과 공동구매, 교육, 지역 환원 등 사회적 사명을 다하며 지속가능하기 위해 뛰었다.

2010년에 결성된 부천 사회적기업협의회에서 5년간 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5개로 시작한 회원사들이 20개로 늘어났고, 부천시와 함께 조례를 제정하고 다양한 정책 제안을 하였다.  2017년 부천시로부터 "사회적경제활성화 공로상" 을 받았다.

직접 정치, 시의원에 도전

박 대표는 2008년에 민주노동당이 분당되고 탈당을 하면서 10년 동안 한 번도 소속 정당이 없었다. 그런 박 대표가 다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2018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에 부천시의원으로 도전한다. 선거구는 원미갑 가선거구 도당동과 춘의동, 역곡1동과 2동, 원미1동 선거구이다.

다시 정치를 시작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국민이 그러했듯 박 대표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때 상처를 많이 받았다. “전 노동에 익숙한 사람이에요. 항상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또 다른 진보세상이 올 거라 생각했어요. 하루에 3-4시간 자면서 살았어요. 특히 최근 10년을 정말 힘들게 살았어요. 먹고 살려면 이렇게 힘든데, 몇 십억, 몇 백억이 저렇게 쉬워? 살아오면서 20살 이후 25년 동안 내가 정치랑 떨어져서 살아온 적은 없었어요. 대학 때 학생운동도 그랬고, 사회에 나와서 했던 노동운동,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책을 만들고자 했던 일, 그리고 사회적기업까지 돌이켜보니 저는 늘 정치 속에 있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직접정치를 한 적도 없었죠.”

현장과 정치의 간극

박 대표는 앞으로 지역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현장은 너무 목이 말라요. 온도차가 나더라고요. 현장과 중앙정부의 정책, 지역에서의 활동이 연계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어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좋은 시민으로 살까 생각했지만 직접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저는 1993년 원미동에서 공장을 다니며 현재까지 춘의동, 도당동, 심곡동, 고강동 구도심 지역에서만 살았어요. 초본을 떼어보니 이사를 너무 많이 다녔더라고요. 주차문제로 이웃들이 서로 싸우고, 인도가 없어 아이들이 차를 비켜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했어요. 지혜를 모으고 뭔가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시의원에 도전하기로 했어요."  

박 대표는 "정책을 제안하고, 입법하고, 실행해서 완성하는 것이 정치"라고 말한다. 고운 얼굴에 비하면 박 대표는 오랜 노동으로 손이 거칠다.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에 대해 고민도 했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에서 제 몫을 다 했다. 박 대표의 행보가 노동하는 부천시민들에게 친구로 이웃으로 자리 잡으려면 이번에 부천시의원이 돼야 한다. 건승을 빈다.

   
▲ 지난해 12월 12일 부천시청 소통마당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시민정치학교에서 행복도시락 박명혜 대표가 허원배 목사로부터 수료증을 받고 있다ⓒ부천타임즈 양주승 기자
부천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 부천타임즈(http://www.bucheon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추천수 : 34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생생포토] '제12회 임종국상 시상
서양화가 김미정의 '푸른꿈'...첫번
오형민 부천대교수,'4차산업혁명시대의
김명원 도의원 "불법다단계 하도급
문우람 "억울해도 너무 억울합니다"
부천 젠더거버넌스 '부천에꿈'으로 성
부천 소사 도시재생, 마을벽화로 새
오정보건센터, 건강 100세를 위해
부천시, 라돈측정기 행정복지센터에서
부천동초, 11월 11일 '빼빼로'
부천시 원미구 부흥로 315번길 14 포비스타 1414호 | 대표전화 032-329-2114 | Fax 032-329-2115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아00018 | 등록일:2005년 11월2일 | 사업자등록번호 130-19-41871
종별 : 인터넷신문 | 발행인겸 편집인 : 양주승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양주승
Copyright 2003 부천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bu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