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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죽~이는' 장면이 나올 거야"
2004년 07월 23일 (금)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오마이뉴스: 나영준 기자    

야한 영화인줄 알았던 <공포의 여대생 기숙사>
공포는 보통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성인의 그것보다 더욱 깊게 각인되곤 하는 것 같습니다.그래서 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듣곤 하던 '사람의 간을 빼 먹는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 이야기는 모든 이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곤 합니다. 화장실 가기도 무서워 온 밤 내내 이불 속에서 끙끙거리던 유년 시절의 그 밤은 누구에게라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오래됐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한 중학교 1학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학교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전 수업만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게 된 어느 날이었습니다.

집에 그냥 가기가 아쉬웠던지라 초등학교 시절 내내 함께 다니던 친구와 발길 가는대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이었습니다.그 때 우리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래의 포스터였습니다.

   

요즘이야 사춘기가 빨리 오고 각종 매체를 통해 성(性)에 관한 이런저런 지식을 접하게 된다지만 당시 그 쪽으로는 무지하기 짝이 없던 우리들에게 위의 포스터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입학식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직 초등학생의 티도 채 벗지 못한 꼬맹이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공포 영화임에도 왜 저런 어정쩡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속옷만을 걸친 서양 여자의 모습을 처음 보는지라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기에 급급했습니다. 선배들 사이에서 소위 '빨간책' 이라는 것이 돌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저 모든 것이 막연한 상상 속에만 있던 때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포의 여대생 기숙사>라는 제목이 영화의 장르를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진 속의 그녀와 공포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여대생 기숙사, 제목 죽인다. 야, 너 이런 거 본 적 있어?"

'공포'라는 글자는 보이지도 않는지 친구가 입을 떡 벌린 채 물어 왔습니다. 물론 그렇게 넋을 놓은 것은 저도 똑같았습니다.

"아니…. 처음인데."
"야, 우리 이거 보러 갈래?"
친구의 제안에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야, 이거 어른들이 보는 거잖아. 우리가 어떻게 들어가?"
"그러니까 보고는 싶다는 거구나?"
"아니야, 그리고 너 돈 있어?"

은근한 놀림에 저는 빈약할 게 분명한 친구의 주머니를 가리켰습니다. 피차 떡볶이 값을 치르기에도 아쉬운 처지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친구는 태연했습니다.

"걱정 마라. 누가 저걸 돈 다 주고 보냐?"
"그러면?"
"초대권 사면 되지. 내가 살 테니까 보러 가자."

친구가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극장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찾을 만한 가게에 포스터를 붙이고 인사 치레로 초대권을 돌리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 가게 주인들은 다시 싼 가격으로 되팔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사봤던 초대권이라야 초등학생 때 입장이 가능한 만화영화뿐이어서 저는 은근히 걱정이 됐습니다.

"근데 미성년자 관람불가일 텐데, 우리한테 팔까? 그리고 판다고 해도 입장 안 시키면 그만 아냐?"
"걱정 마, 극장 입구에서 표 받는 형이 우리 앞집에서 일하던 형이니까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말을 마친 녀석은 의기양양하게 불량식품을 팔던 점방에 가서 초대권 두 장을 사 왔습니다. 그리고 녀석의 손에 이끌려 저는 극장 입구로 들어섰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햇살 속에서 나른한 표정으로 손부채질을 해대던 20대 초반의 큰 형 뻘 되는 사람이 우리를 제지했습니다.

"이 녀석들 뭐야. 초대권이네. 아니 초대권이 문제가 아니라 이거 미성년자는 볼 수 없는 거야."
"아이~ 형, 구석에 앉아서 볼 게요."

친구는 그 형과의 안면을 강조하며 사정을 했습니다.

"구석이고 뭐고 이거 니네 들여보냈다가 걸리면 안 되는데."
"오늘 손님 없잖아요. 혀엉~."

결국 친구의 집요함에 그 형은 두 손을 들고 어른들에게 안 걸리는 자리에서 보라며 입장을 시켜줬습니다.

그리고 들어가는 우리의 뒤통수에 대고 "무서워도 책임 안 진다"는 이야기를 남겼지만 그때는 이미 아무런 이야기가 귀에 안 들어올 정도로 우리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극장 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쮸쮸바를 빨며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들어온 사람은 우리를 포함해서 대여섯 명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두어 사람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왔는지 극장 뒤쪽에 길게 누워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때 친구가 옆구리를 찌르며 물어 왔습니다.
"야, 그런데 왜 제목에 '공포'가 들어갔을까?"

그때야 비로소 저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집에 있던 '한국문학전집'에서 읽은 'B사감과 러브레터'가 생각났습니다.

"알았다. 기숙사니까 거기 지키는 사감이 나올 거야. 그 사람이 아마 무서울 거야."
"사감이 뭔데?"
"그러니까 무서운 수위 같은 사람이야. 원래 사감은 좀 무서운 사람이 하는 거래. 그러니까 <공포의 여대생 기숙사>지."

저는 당시 읽기만 했지 제대로 이해도 못한 문학작품까지 끌어다 대며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친구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친구는 알았는지 몰랐는지 기대에 부풀어서는 혼자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대(?)대로 영화 초반 풍만한 몸매의 여성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친구는 과연 얼마나 야한 영화일까 하고 두 눈을 빠끔하게 뜨고 스크린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제가 말한 대로 기숙사의 깐깐한 사감 선생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를 툭 치며 "거 봐" 하고 웃어 보였고 친구는 질세라 "내가 보러 오자고 했잖아" 하고 씩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초반 그만 사감 선생이 물에 빠져 죽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조금씩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야, 근데 왜 저 아줌마가 죽는 거지?"
"바보야. 그래야 뭐라 그러는 사람이 없으니까 자기들 맘대로 놀지."

세상에, 저는 그 말을 듣고는 "아~아"하고 고개까지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그 친구는 한 술 더 떠 제 귀에 대고 은밀하게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야, 조금만 기다려봐. 이제 '죽이는' 장면이 나올 거야."
친구는 마치 다 안다는 듯한 느긋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랬습니다. 정말 '죽이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숙사에 있던 여학생들이 한 명 한 명씩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끝으로 스크린에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놀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처음 보는 외국산 공포물이었던 것입니다. 단순히 한 맺힌 눈으로 흘겨보던 우리네 귀신과는 너무도 다른 괴물이 스크린을 휘젓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은 면역이 되었지만 그 당시로는 처음 보는 흉측한 장면들은 공포를 떠나 경기마저 일으키게 했습니다.

"야, 야. 이거 야한 거 아니잖아. 무서운 거잖아. 어떻게 된 거야. 우리 그만 나가자."
저는 역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아니야, 뭔가 이상해. 이럴 리가 없는데. 그럼 다른 영화 아니야?"
"뭐가 다른 영화야. 여대생 기숙사 맞잖아!"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녀석은 자존심이 상하는지 돈이 아까운지 턱을 덜덜 떨면서도 오기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날 결국 텅 빈 극장 어둠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극장 문을 나오며 우리는 오싹함에 온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또 그 뒤로도 한동안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결국 포스터 속의 그녀에게 우린 속고 말았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후 완연한 어른이 되어 다시 그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 조금은 엉성한 구성과 반복되는 잔인한 장면에 웃고 말았지만 그 옛날 친구와 나는 일생에서 가장 무서운 영화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단련이 되어서인지 그 후 남들이 무섭다고 혀를 내두르던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나 <이블데드> 같은 작품을 보고도 막상 아무렇지도 않았던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만 제외한다면 시간 때우기 용도에는 충실한 B급 호러영화인 듯합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공포 섞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아 너무도 슬픕니다. 공포는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청량제 정도의 역할만을 해주는 시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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