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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성지 양양, 속초, 신흥사, 진전사터, 낙산사
2004년 07월 04일 (일) 00:00:00 최현수 기자 bicfun2000@yahoo.co.kr
 

부천타임즈: 최현수(부천타임즈 역사문화전문위원)

   
▲ 양양 낙산사 우너통보전 앞에서

김포문화원과 드림씨티방송, (주)경인여행사는 지난 5월 27일(목) ~ 28일(금) 1박 2일간 제2회 金浦市校長團 연수 <관음성지 양양, 속초>를 다녀왔다.  

김포시 관내 40분의 교장 선생님과 교육청 학무과장을 모시고 최현수(부천역사문화재단 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소장의 안내로 속초의 설악산, 신흥사, 양양의 진전사터(3층석탑․부도), 낙산사, 횡성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답사하였다. 이번 연수는 경기도 김포교육청, 김포문화원, (주)경인여행사가 후원하였다.

부천시 중등교장단 연수를 다녀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40명이 넘는 김포시 교장선생님들을 모시고 자비의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5월 27일 속초와 양양으로 떠났다. 

관음보살을 뵙기 전에 서방정토에 계시는 아미타불을 뵈러 속초 설악산 신흥사에 들렸다. 속초라는 지명이 나오게 된 설화적 배경은 이 지역에 속새풀이 많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설이 있고, 풍수지리상 소가 누워있는 臥牛형국인데 소가 풀을 뜯어먹을 수 있도록 조도가 마치 풀을 묶어 놓은 것과 같아서 유래했다는 설, 영금정과 관련지어 영금정 옆의 솔산이 있는데 바다에서 포구를 보면 그것이 마치 소나무와 풀을 묶어 세워 놓은 것과 같은 형태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 설악산 신흥사 극락보전 앞에서

신흥사를 품고 있는 설악산은 금강산에 버금갈만한 남한 제일의 명산이다. 설악동에 들어서서 수임들의 무덤인 부도들이 모인 부도군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청동대불을 지나 신흥사에 들어갔다. 신흥사는 <사적기>에 따르면 653년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9층사리탑을 세워 香城寺라 불렀고 701년에 수천 칸의 대 사찰이 하루아침에 소실되고 앞뜰의 9층석탑도 화재로 파손되어 3층탑만 남았다. 그 후 의상대사가 이곳 부속암자인 能仁庵 터에 다시 절을 짓고 禪定寺라고 하였다. 선정사는 1000년간 번창했다가 1644년(인조 22)에 다시 소실되고 말았는데 운서·연옥·혜원 세 승려가 똑같은 꿈을 꾸고 다시 절이 세워졌으며, 신의 계시로 창건하였다고 하여 신흥사라 부르게 되었다. 신흥사에서 사천왕상, 보제루, 극락전 등을 둘려본 후 새로 지은 극락교를 지나 사바세계로 내려왔다.

사바세계에서 다시 고려 중기 <삼국유사>의 저자인 一然이 14세 때 체발득도 하였다는 전진사터로 향했다. 신라불교가 교종에서 선종으로 교체되는 시기에 그 싹을 틔운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사찰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최소한 8세기 경에는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6세기 경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절은 우리나라 선종을 크게 일으킨, 신라 禪門九山의 효시가 되었던 迦智山派의 初祖 道義禪師가 오랫동안 은거하던 곳으로 염거화상이나 보조선사와 같은 고승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으며, 현재 절터에는 단정하고 기품있는 높이 5m의 삼층석탑(국보 제122호), 우리나라 부도의 효시로서 도의선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보물 제439호) 등의 석조물이 있고 [진전]이라 새겨진 기와조각과 연꽃무늬 수막새, 당초문 암막새 등이 출토되었다.

   
▲ 낙산사 해수관음상 ⓒ2003 양주승

지금은 삼층석탑만 덩그렇게 서있는 진전사터. 낙산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예전 속초비행장 쪽으로 방향을 틀면 이름 꽤나 알려진 실로암 막국수 집이 보이고 거기에서 좀더 전진하면 진전사터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진전사터 아랫마을인 둔전리에 닿는다.

둔전리는 진전리였던 것이 둔전리로 변한 것이고 예로부터 탑골이라는 이름이 전해 내려왔다고 하니 이 마을은 진전사와 관련이 깊은 마을이다. 진전사의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진전사를 연 분이 도의선사이고 그 분이 중국에 유학하고 돌아온 해가 821년임을 감안하면 이 시기와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도의선사가 누구인가? 그는 선종의 효시인 가지산문을 연 분이다. 그가 신라에 소개한 선종은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동쪽으로 와서 중국에 소개한 것으로 당대에는 이단이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에 달마대사가 있었다면 신라에는 도의선사가 있었다.

그는 경전이나 해석하고 염불을 외는 것보다 본연의 마음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외치고 다녔고 인간의 평등과 인간성을 중시하는 진보사상을 가져 신라 땅에서는 배척을 당해 깊은 산골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가 숨어든 곳이 경주에서는 머나먼 설악이었다. 설악산의 중심지엔 이미 신흥사가 자리잡고 있어 다른 곳을 물색하던 중 이 곳을 찾았을 게다. 이단으로 내몰린 도의선사는 절터를 잡는데도 한쪽으로 비켜 잡았으니 비켜 사는 인생은 끝까지 비켜 사는 모양이다.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이런 배경을 안고 이 곳에 서있다. 멀리서 보면 까맣게 보여 투박해 보이나 전혀 그렇지 않다. 까만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태생이 까만 것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련미가 넘쳐 난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과 함께 9세기경에 새롭게 일어난 개성적인 지방호족문화의 작품이면서도 도피안사 삼층석탑이 개성이 넘쳐나고 단순미가 있다면 이 삼층석탑은 1층 기단과 2층 기단에 각각 비천상과 팔부중상을, 1층 몸돌에는 여래를 한 분씩 돋을새김으로 장식하여 세련미가 돋보인다.

낙산사의 설화와 도의선사의 사상을 알고 의상대 일출과 까만 석탑을 보고 나면 설악은 매력적이고 동경의 대상이며 속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 된다.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밤이 깊었음에도 낙산사에 들렸다.

3대 관음기도도량(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 중의 하나이며, 또한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한 낙산사는 676년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의 眞身이 이 해변의 굴 안에 머무신다는 말을 듣고 굴속에 들어가 예불하던 중 관음보살이 수정으로 만든 염주를 주면서 절을 지을 곳을 알려주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낙산사는 관음보살이 상주하는 보타낙가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의상대 옆 관음송에 홀로 앉았을 파랑새(청조)를 상상하며 홍련암에 이르러 관음굴을 구경하고 나서 낙산해수욕장을 앞에 두고 저녁을 보냈다. 

낙산사는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창건 설화와 관련하여 의상과 원효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동해변에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의상이 찾아와 기도 끝에 관음을 만나 이 곳에 절을 지은 반면 그 뒤를 이어 찾아든 원효는 관음보살을 만나기는커녕 봉변만 당한다.

   
▲ 홍연사 ⓒ2003 양주승

신라 불교의 쌍벽을 이루고 있던 의상과 원효, 왜 그들의 능력은 차이가 나는 것으로 그려졌을까? 의상은 진골 출신이었고 원효는 육두품출신인데다 의상은 엄격성, 규범성을 강조하며 호국신앙을 내세운 반면 원효는 민중과 함께 하며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자율성을 강조하였다.

통일 전쟁을 치르고 난 신라는 새로운 국가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었고 그에 맞는 사상은 원효의 것보다는 의상의 것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의상의 '코드'가 더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의상보다 중생과 함께 하는 원효의 이념을 더 선호했을 것이다. 그래서 낙산사의 설화에서 무리를 해가며 원효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중으로 의상은 법력이 뛰어난 '반듯한' 승려로 그리고 있다.

낙산사의 창건설화가 대중의 코드에 반하여 정치적으로 이루어졌던 아니던 한번 머릿속에 박힌 생각은 10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바뀌지 않고 남아있다.

   
▲ 횡성 민족사관고등학교

이번 연수에서는 많은 교장선생님들이 김포역사연구소의 개설을 요구하였기에 하반기에 김포에 역사연구소를 개설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김포로 향하였다.

양양에서는 좋았던 날씨가 양양을 벗어나자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가운데 횡성의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들려 학교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나서 김포에 오니 어느덧 야심한 밤이었다. 김포에서 저녁을 먹고 부천으로 왔다.

   
▲ 낙산사 홍예문 ⓒ낙산사

최현수
부천역사문화재단 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천교육청 사회교과서 <우리가 사는 부천시> 감수위원,  중등교과 심의위원, 중등교재 <우리 고장 부천> 자문위원

최현수 소장님은 부천의 학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부천역사기행과 풍물기행을 연중 실시하고 있습니다. 전화:032-657-6409

   
▲ 2004년 1월1일 아침 7시 55분 해오름 광경 ⓒ2003 양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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