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2.7.5 화 07:48
,
   
+ 로그인 독자회원가입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보도자료
> 뉴스 > 히든 | 역사기행
       
제5회부천시 초등학교장단 연수
백제인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부여,보령을 찾아서
2004년 07월 04일 (일) 00:00:00 최현수 기자 bicfun2000@yahoo.co.kr

-백제인의 충절과 혼이 서린 부여, 만세영화의 땅 만세보령-

(사)부천역사문화재단과 드림씨티방송, (주)경인여행사는 지난 4월 27일(화) ~ 28일(수) 1박 2일간 제5회 富川市初等校長團 연수<백제인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부여․보령을 찾아>를 다녀왔다.  

   
▲ 제5회 초등학교교장단 연수
 

부천시 관내 30분의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최현수 소장의 안내로 부여의 국립부여박물관, 정림사터(5층석탑․석불좌상), 능산리고분군(국보 제287호 금동대향로 출토지), 무량사와 보령의 석탄박물관, 성주사터(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5층석탑)를 답사하였다. 이번 연수는 경기도 부천교육청, 부천상공회의소, (주)경인여행사가 후원하였다.

우리 일정의 첫 답사지인 부여는 123년간 찬란했던 백제의 왕도로서 자리메김하였던 곳이다. 사비시대 123년의 도읍기를 통틀어 유일하게 유물이 남아있는 백제 유적이었으며, 백제 절터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정림사터(5층석탑․석불좌상), 부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문화 유적과 유물의 보존 관리에 힘써 오고 있는, 특히 백제 문화유산의 보존과 연구의 중심기관인 국립부여박물관, 최상부에는 한 마리의 봉황이 여의주를 목에 끼고 비상하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봉래산을 주제로 연화화생관과 수중을 지배하는 용이 의미하는 음과 천상을 지배하는 봉황인을 지배한 6세기 백제인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백제공예품의 진수라 할 수 있는 국보 제287호 금동대향로 출토지인 능산리고분군, 부소산성, 매월당 김시습의 생시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무량사였다. 

전날부터 내린 비가 부여에 도착해서도 내렸기 때문에 실내인 국립부여박물관을 들렸다. 1993년 8월 6일 금성산 기슭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모습으로 개관하였다. 19,800여 평의 면적에 4개의 전시실과 야외 유물전시장을 마련하고 약 9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와같이 국립부여박물관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박물관에 있는 유물 중 금동대향로는 충남지방의 대표적인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1970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서 발견된 금동관세음보살입상도 있다.

   

다음은 박물관 옆에 있는 예전 답사 때에는 허허벌판이었던 정림사터를 답사하였다. 부여읍 동남리에 위치한 사적 제301호 정림사터는 사비시대 123년의 도읍기를 통틀어 유일하게 유물이 남아있는 백제 유적이며, 백제 절터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정림사란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 이 절터는 창건 당시의 명칭은 사료에서 찾을 수 없으며 정림사라는 절 이름은 고려 재건시 제작 사용된 平瓦 중에 大平八年戊辰定林寺大藏當草라는 문자명이 새겨진 것이 발견됨으로서 붙여진 사명이다.

정림사터를 답사하고 나니 날씨가 화창하게 개여서 황금대향로가 출토된 능산리 고분군을 답사하였다. 부여에서 동으로 논산 가도를 향해 약 3Km 쯤 되는 해발 121m의 능산리 산의 남사면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총 7기의 고분이 일군을 이루고 있다. 경내에는 의장왕과 그의 아들 부여 융을 모신 단이 있다.

능산리 고분군을 나와 聖住山의 한 지맥인 만수산 남쪽 계곡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는 무량사를 답사하였다. 창건 이래 법등이 꺼지지 않았던 무량사는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인조 때 재건되었으며, 인조 14년(1636)에 조성된 범종과 불화가 남아 있다.

주전인 극락전 좌측에는 매월당 김시습(1435~1493년)의 영정을 모신 전각이 있다. 김시습은 15세기의 위대한 학자이자 사상가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절의를 중시한 인물이다.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창작하였으며, 사상적으로는 유학과 불교, 도교의 사이를 넘나들었다. 문화관광부는 매월당을 1999년 9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무량사를 답사한 후 우리 일행은 숙박과 성주사터의 유적들을 보기 위해 보령으로 향했다. 보령은 산천이 가장 훌륭하고 호수와 산의 경치가 아름답고 탁 틔어서 명승지라 부른다. 이와 같은 점들로 보령지역이 전국적인 만세영화지지로 알려지고 만세보령이라 부른다. 보령에는 성주산문의 개창조사인 국보 제8호 무염국사의 부도비인 ‘大郎慧和尙白月寶光塔碑’가 있는 성주사터, 석탄박물관, 남포읍성 등이 있다.

성주오석으로 유명한 대천에서 1박을 하기 위해 한화콘도에 짐을 풀고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를 통해 하루 동안 답사한 유적지에 대한 감회와 느낌을 토론하고 나서 부천지청 범죄예방협의회의 청소년 폭력 대처한의 대한 이야기와 토론을 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다.

다음 날 외산에서 성주를 거쳐 성주천을 따라 소풍이라도 하듯 소나무 숲을 지나 성주사 터의 유적들을 답사하였다. 사적 제307호인 성주사터는 듬직한 성주산(680m)이 뒤를 받쳐 주고 있는데, 성주면 성주리에 있다.

<성주사 사적>에 따르면 성주사의 규모를 거의 천여 칸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절에는 오층석탑 말고도 탑이 셋이나 더 있다. 각각 3층으로 금당의 뒤쪽에 거의 일렬로 정렬해 있는데, 이런 배치는 다른 절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주사의 내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낭혜화상 부도비가 절터의 북쪽 부근에, 지금의 비각 안에 들어 있다. 이 비는 신라 하대 비로서는 가장 크며 특히 비문에 적힌 내용은 낭혜화상의 생애와 더불어 신라 하대 사상 흐름의 변천을 밝혀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무염국사를 오합사의 주지로 모시고 성주사를 열게 한 金陽은 보령 지역을 근거로 한 지방 호족이었다. 중앙 진골귀족에 서서히 대항해 가던 호족들은 자신들의 이념을 선종에서 찾았다. 이제 예전 자취만 남았을 뿐이지만 당대의 모순을 자각하고 새로운 사상과 힘을 일구어 내던 자취로서 성주사터는 매우 뜻깊은 유적지이다. 드넓은 성주사터를 보고 난 후 석탄산업의 산 교육장인 석탄박물관을 구경하였다.

내부전시관 및 외부전시관으로 구분되어 조성된 석탄박물관에는 각종 탄광시설 및 광물표본류 외 2,500여 점의 표본이 전시되어 있다

내부전시관을 다 돌아보고 밖으로 나와 야외전시장을 구경하였다. 야외전시장은 생산된 석탄을 옥마역까지 운반했던 갱도 입구, 압축기, 광차 등 탄광에서 이용했던 대형장비가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경내에는 채탄광에서 매몰되어 희생된 탄광 근로자들의 명복을 기리는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이 번 연수기간 중 드림씨티방송에서는 영상칼럼 <교육의 현장에서>를 촬영하였다. 이 영상물은 신학기를 맞이한 학생들에게 "올바른 학창생활, 바른 역사의식, 청소년의 문화, 효" 등을 전하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이 영상물은 연수 일정 중간에 개인별로 촬영하였으며, 드림씨티방송 지역 채널 5번을 통해 5월 이후에 지속적으로 방영할 예정이다.

우리는 그 동안 매년 한 번씩 총 5회의 연수를 다녀왔다. 교장선생님들은 이곳들을 수차례에 걸쳐 다녀왔다. 그 때 교장선생님들은 학교의 책임자로서 동행했을 것으로 생각되나 우리가 매년 가는 연수는 교장선생님들이 평소 가지고 계신 경험과 유적지를 설명하는 안내자의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또 다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흔히 문화유적지를 답사할 때는 그 사람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우리 국토 어느 곳이든 유적지가 아닌 곳은 없다.

네 번의 걸쳐 연수를 하여본 결과 유적지를 대하는 교장선생님들의 놀라운 열정과 적극적인 참여 자세를 보았다. 그러한 열정과 자세는 앞으로 우리 부천을 책임지고 갈 학생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의식을 함양하게 된다면 현재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른 반민족행위자(일명 친일파) 처벌과 같은 과거사에 대한 청산도 훨씬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의 자기반성은 물론 어떠한 이유이든지간에 역사교육에 소홀히 하고 있는 역사학계도 함께 책임지고 헤쳐 나가야 할 무거운 과제이다. 

역사는 과거의 일들을 거울삼아 오늘과 내일을 밝히는 등불이라고 E-H 카아는 설파하였다. 역사는 가만히 있어도 배워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고 가꿀 때만이 그 위력을 발휘하여 우리에게 힘이 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지도하여 역사의식을 함양하도록 하는 것은 교육의 몫이며, 그 선봉에 교장선생님들이 계신 것이다.  

이러한 연수는 비록 지역이 다를지라도 역사유적지에서 얻은 교훈을 학생들에게 전달하여 우리 지역 초등교육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 최현수
부천역사문화재단 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천교육청 사회교과서 <우리가 사는 부천시> 감수위원,  중등교과 심의위원, 중등교재 <우리 고장 부천> 자문위원

최현수 소장님은 부천의 학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부천역사기행과 풍물기행을 연중 실시하고 있습니다. 전화:032-657-6409

최현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부천타임즈(http://www.bucheon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추천수 : 714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생생포토] 선서하는 제23대 조용익
문화예술전문 최의열 시의원, 재정문화
[생생포토]제22대 장덕천 부천시장
부천전국국악경연 종합우승했으나 국회의
제21회 복사골국악대제전 종합대상 기
배우 박병은·한선화 제26회 부천국제
예방적 노인복지, 재가노인지원서비스의
부천시, 설렘 가득한 '신중년, 나도
부천시, 의료기술직렬 공무원 역량 강
부천시 복지택시 요금 체계 개편, 교
부천시 원미구 부흥로 315번길 14 포비스타 1414호 | 대표전화 032-329-2114 | Fax 032-329-2115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아00018 | 등록일:2005년 11월2일 | 사업자등록번호 130-19-41871
종별 : 인터넷신문 | 발행인겸 편집인 : 양주승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양주승
Copyright 2003 부천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bu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