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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동 먼마루 도당우물 대동제를 아십니까?
2004년 07월 04일 (일) 00:00:00 최현수 기자 bicfun2000@yahoo.co.kr

부천타임즈: 최현수 역사문화 전문위원

4월19일(음력 3월1일)은 원종동(먼마루)에서 도당우물 대동제가 열리는 날이다. 올해 다음 대동제는 8월16일(음력 7월1일) 개최된다.

   
▲ 2004년 4월19일 ⓒ부천타임즈 양주승 기자

이 때 도당이란 말은 마을사람이 함께 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한마음, 즉 대동을 의미하므로 도당우물은 마을사람이 함께 쓰는 우물을 말한다. 

처음 도당우물의 위치는 원종대로 통과하는 원종동 157번지에 팔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가 1차 복원할 때는 수도꼭지형으로 위치는 156번지에 있었다.  현재는 원형대로인 팔각형으로 보존하여 162-4번지에 있다.

   
▲ ⓒ부천타임즈 양주승 기자

원종동(먼마루) 도당우물 대동제는 매년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안동네에서 거행되고 있는 마을의 공동축제이다. 원종동은 일명 먼마루는 마을이 위치한 야트막한 야산이 멀리서 보았을 때 마루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마을이 위치한 곳이 산의 등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멧마루가 먼마루로 변했다.

대동제 때는 소머리나 소 한 마리를 제물로 바쳤다. 즉 해방 전까지만 해도 봄철인 3월 1일 대동제 때는 소머리를, 여름철인 7월 1일에 거행되던 대동제 때는 소 한 마리를 잡아 제물로 바쳤다. 지금은 소머리를 2개를 가지고 도당우물대동제를 지낸다. 

   
▲ 오정농협 흥나리 풍물패 ⓒ부천타임즈 양주승 기자

이 마을에는 250여 년 전부터 밀양 손씨, 안동 김씨, 의령 남씨, 인동 장씨, 평산 신씨, 경주 최씨 등 각성바지 1백여 가구가 모여 우물 하나를 사용해왔는데, 그 우물은 마을 수호신의 역할을 겸해‘도당우물’이라 부르고 있다.

이후 계속 이어져 내려오던 우물제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한 행사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꺼려한데다 몰래 소를 잡는 밀도살을 못하게 해서 잠시 중단되기도 했고, 해방 후에는 대동제를 주관할 만한 사람이 없어 2년여 동안 치성을 드리지 않게 되자 마을에 화가 닥쳐 마을 사람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게 되어 다시 대동제를 거행하게 되었다. 대동제를 행하는 절차는 다른 곳의 대동제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대동제 당일에 소를 잡는다든지, 이 때 제물로 바친 쇠고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똑같이 분배하는 것, 그리고 제사가 끝난 후 수숫깡에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우물 앞 미나리꽝에 임의대로 꽂아 각기 미나리를 심도록 한 것은 원종동도당우물제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우물제가 계속되던 6·25사변 때에도 이 동네사람들은 큰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며, 궁도대회에 출전하기 전에는 반드시 도당우물에 치성을 드린 후 대회장으로 떠날 정도로 마을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신적 지주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우물제는 1991년 부천역사연구소 최현수 소장이 발굴하여 1993년 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 부천시 대표로 참가해 우수상(도의회의장상)을 수상했다. 원종동 도당우물 대동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부천타임즈 양주승 기자

1. 제사 주관자 선정 : 대동제는 봄철과 여름철로 나뉘어 일년에 두 번 지내는데 봄철엔 음력 3월 1일에 거행한다. 이는 미리 풍년이 들게 해달라는 예축제적 성격이 강한 의식에서 기인한다. 여름철에는 음력 7월 1일에 대동제를 거행하는데 이는 김매기가 끝나고 농민들이 한가한 시간을 내어 그간의 피로를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의식임과 동시에 마을사람들의 친목이 중요한 일면을 차지하고 있다.

제사 주관자는 마을 유지들에 의해 생기 있고 복덕을 갖춘 사람이 선정된다. 제사 주관자가 되기 위한 자격은 우선 그의 몸이나 그의 가정에 부정이 없어야 하고, 그의 집안이 상을 당하였거나 부인이 월경 중에 있다거나, 그 자신이나 또는 그의 집안사람 중에서 병환 중에 있으면 안된다.

2. 우물 및 주변 청소 : 이 우물은 마을에 경사가 있을 때 제일 먼저 제사를 올리고, 마을사람이 상을 당했을 때는 포장으로 덮어 부정이 타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인 신성한 존재이다. 더욱이 우물은 생명의 근원으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물고사 수행의 정당성을 우물신의 영험함과 연결시켜 설명하는 이야기들은 여타 동제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전해지며 사람들의 행동의 정당함과 정통성을 보증해 주는 것으로 간주된다. 전쟁이나 병, 교통사고 등 불가항력적인 원인에 따른 죽음이 연속적으로 마을주민 특히 젊은이들에게 닥칠 때 이의 원인을 신의 영험함이나 의례에 대한 불성실 등에서 찾게 된다.

먼마루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는 전쟁과 관련된 것이다. 전쟁을 전후한 좌우 대립 정치적 혼란 속에서 마을 주민 중에서 다친 사람이 없었다-실제로는 적었다-는 점을 우물신의 영험과 연관짓는다. 아울러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들어서서 마을 신앙이 전반적으로 약해질 때에도 그 결과가 젊은이들의 이유 없는 죽음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물고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하나의 사회적, 경제적, 혹은 놀이로서의 성격보다는 우선 종교적 성격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우물고사는 기본적으로 공동체 종교였기 때문이다. 종교에 대한 여러 정의 속에서 중요한 것은 신으로 대변되는 초월적 존재인데, 먼마루 우물고사에도 초월적 존재가 나타난다.

이 신은 마을 주민과 그들의 길흉화복을 전반적으로 책임지지만 일상생활에 일일이 참견하지는 않는다. 그는 많은 의례를 요구하지는 않으며, 일년에 두 번의 우물 고사로 만족한다. 하지만 그 두 번의 의례를 제대로 지내지 않을 경우에는 마을 주민들에게 재앙을 내리는 무서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마을 주민들 중에서 우물신을 직접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개인의 꿈에 나타나는 경우와 이 마을 출신 무당을 통해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개인의 꿈에 대표적으로 우물을 옮길 때 나타났다고 하는데, 키가 크고 구부정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자신의 거처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 하소연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꿈에 직접 나타나기보다는 우물의 상태를 변화시킴으로서 의사를 표현한다. 한국전쟁 때는 그 전까지 한 번도 얼지도 마르지도 않았던 우물이 얼었다고 한다. 이러한 우물의 자연적 상태의 변화를 마을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닥치게 될 어떤 사건의 조짐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우물의 규모는 깊이가 약 6.6m이고, 직경은 2m 정도의 오각형이었다.

처음 안동네에 있다가 원종대로가 신설되면서 새로 파서 길가로 옮겨 원형이 파괴된 체 보존되어 있다가 2001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예전에는 우물 옆에 멋있는 향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는데 향나무를 베어 버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대동제날 아침에 실시하는 우물청소에는 10여 명이 참가한다. 우물청소에 들어가기에 앞서 종이를 태우는 소지를 올리는데 이 때 개인 소원을 빈다.

특히 우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장가는 들었으나 득남하지 못한 사람이 주로 맡았다. 이는 우물신(도당신)에 득남을 기원하는 사상(祈子信仰)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도당우물 이외에 개인적으로 우물을 파면 화를 입는다고 해서 파지 않았다고 한다.

우물청소에 필요한 물통은 큰 고무통을 잘라 만들었다. 이 통 안에 사람이 타고 우물로 들어가 우물바닥을 청소한 후 이 물을 통에 담아 미나리꽝에 버렸다. 이 때 우물 주위도 깨끗이 청소하여 치성을 드렸다.

   
▲ ⓒ부천타임즈 양주승 기자

3. 소잡기 : 제물로 쓰이는 소는 당일에 잡는다. 소를 잡고 제를 지내는 동안은 쇠고기를 한 곳에 모아 두며,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소를 희생으로 삼는 이유는 농경사회에서 가장 필요로 한 동물을 희생시킴으로써 더욱 더 풍요를 기원하고자 하는 깊은 뜻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4. 제사 : 제사에 쓰이는 물건은 소나 소머리, 백설기 2시루, 맑은 물, 통북어, 소지 등인데 여기에 드는 비용은 여러 사람이 나누어 낸다. 이 때 이장은 떡 한 시루를, 유지들은 술을 내놓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여성들의 몫이며 음식을 진설하고 제사를 하는 것은 남성이 담당이 담당하였으나 현재는 여성들의 몫이다. 떡은 과거에는 직접 만들었으나 현재는 방앗간에 주문을 한다. 축문은 마을 노인들이 상의하여 짓는다.

축문을 낭독할 때는 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경건한 마음으로 일어서서 경청하고 마음의 다짐을 새롭게 한다.

축문의 내용은 ‘정천축, 유세차 ㅇㅇ년 ㅇ월ㅇ일ㅇ시 유학 ㅇㅇ생ㅇㅇㅇ감소고우 인명생활 유축무환 가문청정 제병양조 청정기원 금후청작 가고’이다.

축문을 낭독한 후 제사 주관자가 먼저 마을의 안녕을 축원하는 소지를 올리고 난 후 지역유지들이 소지를 올린다. 이 때 마을 부녀자들이 함께 기원하면서 치성을 드린다. 소지가 끝나면 잡은 쇠고기를 끓여 온 동네사람이 모여 피로도 풀고 그 동안의 농사작황 및 덕담을 주고받는 음복이 이어진다.

5. 쇠고기 나누기 : 새끼를 꼬아 쇠고기를 마을 가구 수에 맞추어 나눈다. 넉넉한 집안은 8근 정도에 해당하는 한 메를 가져가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두 집 내지 몇 집이 함께 한 메를 가져간다. 이 때는 출가했거나 고향을 떠났던 사람도 함께 와서 쇠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6. 미나리꽝에 수숫대 세우기 : 쇠고기를 나눈 후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는 행사가 이어진다. 즉 어느 한 사람이 수숫대에 호주의 이름을 적어 임의대로 미나리꽝에 심어 놓으면 그 이름이 적힌 사람의 소유에 속한다.

7. 미나리 심기 : 미나리는 하루에 바로 심는 것이 아니라 대동제 당일부터 시작하여 2~3일 사이에 심는데, 이 일은 주로 부녀자들이 맡았다.

8. 뒷풀이 : 경기농악(웃다리 농악)이 주가 된 농악놀이로 뒷풀이를 한다.

9. 우물대동제가 거행되는 음력 3월 1일과 7월 1일에는 각 가정마다 굿을 했던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굿은 우물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평안뿐만 아니라 해당 가정에도 똑 같은 영향을 행사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행해진 것이다.

원종동 도당우물대동제는 그 구성과 전승 내용 등에서 여타 동제와 비교하여 한국 동제의 전형성을 보여 주는 사례는 아니다. 원종동 도당우물대동제는 그 형식과 내용이 엄격하다고 할 수 없으며 전반적으로 보면 단순화와 합리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는 상대적으로 마을의 규모가 컸고 그에 따라 주민의 이동이 많았다는 데에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주민들의 변화 요구가 반영될 소지가 상대적으로 컸으며 그에 따른 변화는 도시화나 근대화에 따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동제가 유지되는 데에 중요하게 작용하였다고 보인다.

도당우물대동제는 창출이나 재구성의 급격한 문화변동 과정과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는 동제가 일상생활에 경제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는 합리적인 면을 지니고 있었고 전승 주체들이 공간이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마을의 정체성과 동제를 연결시키는 데에 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 및 여성들의 종교성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

우물신은 마을 통합의 한 상징이었다. 이 신에 대한 믿음은 1950년대까지는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고 보이나 그 후부터 점차로 흔들리게 된다. 중요한 원인으로는 이 동제를 미신으로 몰아붙인 정부의 문화정책과 그에 따른 교육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종동 도당우물대동제가 부천시가 의도하는 하나의 축제로 변화되어서 부천의 상징, 혹은 적어도 오정구나 원종동의 상징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 해답은 종교성에 있다고 보인다. 종교성이 강조된다면 현대 한국 사회처럼 종교적으로 다원화된 사회에서 비토박이 주민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게 될 것이다.

먼마루 공동체는 근대화와 함께 다양해진 구성원들을 동제라는 공동체 상징으로 통합하는 데에는 성공하고 있지만 마을에 들어온 지가 30년이 넘는 사람들을 아직도 완전히 포함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 준다. 이는 토박이 공동체의 한계이며 또한 한국인들의 일반적 역사적 경험에 따른 한계와도 연관이 있다.

외부로부터 이식된 한국 근대화는 공동체라는 상징적 구성물을 이익사회의 형식 및 구조로 변화한 것처럼 공동체라는 상징적 구성물을 이익사회의 형식 및 구조로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급격하게 파괴하렸다. 이러한 과정은 사람들을 ‘유목민화’ 하였고 사람들을 자신들의 공간으로부터 소외시켰으며, 타향/고향에 대한 강한 이분법적 구분을 가지게 하였다.

아쉬운 부분은 여성들이 도당우물대동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부분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부분이다. 이는 여성의 참여가 여성의 종교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  최현수 :
부천역사문화재단 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천교육청 초등3학년 사회교과서 <우리가 사는 부천시> 감수위원,  중등교과 심의위원, 중등교재 <우리 고장 부천> 자문위원

부천의 학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부천역사기행과 풍물기행을 연중 실시하고 있습니다, ▤전화:657-6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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