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구르트 사업을 벌이는 새마을부녀회 회원들

초록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 손에는 봉지가 들려있다. 바쁜 걸음으로 골목을 지나 어느 집으로 들어간다. 익숙하게 노크를 하는 그들.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안전지킴이'다. 매주 화요일, 오전 9시, 낮 12시. 10여 명의 안전지킴이가 요구르트를 배달한다. 그들은 춘의동, 여월동, 약대동에 닿아있는 도당동 구석구석 안 가는 곳이 없다. 40여 곳을 들른다. 모두 홀몸 어르신.

"커피 한잔 하고 가"는 일상이다. "어머니 저 왔어요. 정운이 엄마~~"

맨발로 뛰어나온 전재순(가명) 할머니. "커피 한잔 하고 가. 오늘은 더 여럿이 왔네?" 할머니 얼굴에 함박꽃이 핀다.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진다. 문 앞에서 시작된 수다는 끝날 줄 모른다. 더 놀다 가라는 할머니를 애써 뿌리치고 서두르는 지킴이. 매주 화요일을 기다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직 많다. "또 와, 잘 가~" 할머니는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든다.

"고마워서 오래 살아야지"

혼자 사는 어르신은 사람이 그립다. 누구라도 오는 게 좋다. 요구르트보다 달콤한 지킴이와의 대화. 지킴이들은 계속 붙잡고 얘기하는 어르신을 두고 나오기가 제일 힘들다. 어르신들은 화요일을 기다리며 아이스크림을 사놓기도 한다. 누룽지도 만들어 둔다. 대접을 받으면 다음에도 또 준비할까봐 거절한다. 마음만 받는다.

자식이 있어도 왕래가 거의 없다. 사는 곳도 열악하다. 대부분 애매한 반지하이거나 지하. 현관문이 열리면 습한 악취가 먼저 반긴다. 집도 누추하고 안 씻어서 냄새 난다며 도리어 어르신이 먼저 지킴이를 피한다. 그럴수록 손을 덥석 잡으며 잘 지냈냐고 반갑게 인사한다. 친부모, 형제보다 자주 본다. 어버이날 꽃을 가져가면 자식한테도 못 받았다며 좋아한다. 시장에서 만나면 얼싸안고 반가워한다. 외로움이 사무치는 날에는 어느 누가 나에게 이렇게 해주겠냐며 눈물짓기도 한다.

"내가 고마워서 오래오래 살아야지. 늙은이 맨날 맛있는 것 주고 고마워"
 오늘도 찾아온 지킴이의 손을 잡고 안분남(가명)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말 뿐이다. 오래 살겠다는 할머니 말에 지킴이들은 힘이 난다. 김정숙 부회장은 예전을 떠올린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살가웠던 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형식적으로 요구르트만 드리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손도 잡고, 안아주고 온다. 사랑 표현은 스킨쉽이 최고였다. 일주일에 한번 어르신들을 만나다보니 길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신발 끈도 묶어주고 안색도 살핀다.

"할머니~ 집에 계세요?"

화요일에 요구르트를 전할 때는 괜찮았다. 그런데 채 일주일이 지나기 전, 전화를 받는다. 요구르트를 받는 어르신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난 것. 그럴 때면 마음이 내려앉는다. 일주일이면 짧은 시간이지만, 고령에 건강까지 따라주지 않는 어르신.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래서일까. 요구르트를 들고 찾아갔는데, 아무 대답이 없으면 순간 철렁한다. 귀가 어두워 부르는 소리를 잘 못 듣기도 하고, 집을 비울 때도 있다. 그래서 지킴이들은 오늘도 목청이 크다. “할머니~ 집에 계세요?” 귀가 어두워도 안 들을 수가 없다. 얼굴을 보면 안심이다. 전화를 걸어 목소리라도 들어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킴이는 도당동주민센터 사회복지팀과도 어르신의 건강상태를 공유한다. 요구르트를 받을 어르신을 추천해주는 독거노인지원센터, 함께 어르신을 살피는 도당동주민센터, 도당동 새마을부녀회 모두가 안전지킴이다.

9년의 착한 노크

2007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새마을부녀회 강기옥 전 회장은 당시 부녀회원들에게 제안했다. "주변에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찾아가보자"고. 일주일에 한두 번쯤 안부를 묻고 말동무가 되고자 시작한 일. 빈손으로 가기가 쑥스러워 요구르트를 챙겼다. 강 전 회장은 "빈손이 쑥스러워 요구르트를 샀고, 지금까지 잘 유지해준 회원들이 고맙다"고 회상한다.

이제는 새마을부녀회 황옥숙 회장이 1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 배달하고 있다. 어느덧 만 9년. 참 꾸준하다. 황 회장은 도당동복지협의체 위원이기도 하다.

가을에 열리는 도당동복지협의체 경로잔치. 그땐 도당동 새마을부녀회 회원들이 기꺼이 어르신의 발이 된다. 이동하기 힘든 어르신을 차로 모신다. 집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과 모시는 이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마주보고 웃는 얼굴이 닮았다.

끊임없이 나누는, 부지런한 손

사실 부천 곳곳에서 어른들의 안부를 묻는 지킴이의 발길은 잦다. 16개 동복지협의체에서 주나 월 단위로 500여 가구 이상에 사랑을 전한다. 요구르트, 요플레, 우유 등 종류도 다양하다.

부천시 오정구 성곡동은 그동안 배달서비스업체에서 어르신들에게 요구르트를 전했다. ‘안부 확인’이라는 본 목적을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고민하던 중 묘안을 냈다. 오정노인복지관 노노- 케어 사업단과 협약을 맺은 것이다. 동복지협의체는 도움의 발길이 이어질 수 있게끔 기금을 맡았고, 노노-케어 사업단 어르신은 직접 안부를 챙겼다. 덕분에 매주 30명에게 음료를 전한다.

노-노 케어는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사업이다. 어르신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 가구를 방문해 서로 말벗이 되는 것. 요양보호사나 생활관리사가 찾아가지 못하는 가정을 찾는다.

 그동안 어르신들은 빈손으로 찾아가기가 민망해 월 20만원의 사업단 활동비를 털어 음료나 사탕을 사기도 했다.

▲ 홀몸어르신 가정을 방문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어르신이 어르신을 섬긴다.

함께 하니 좋다. 노-노케어 어르신은 더 이상 빈손이 아니다. 성곡동 복지팀과의 협력으로 케어가 꼭 필요한 어르신에게 찾아간다. 성곡동에서는 배달서비스 업체에서 느끼는 한계를 극복했다. 본래 목적을 찾은 셈이다. 어르신들은‘친구 말벗’도 얻고 외로움도 달랜다. 음료는 덤이다.

부천시 오정구 성곡동 정미연 팀장은 “외로운 어르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시 전체로 퍼진다. 이렇게 착한 마음은 서로 닮아간다. 이웃은 이웃을 찾아 사랑을 전한다. 동에서는 손길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찾아 이웃과 맺어준다”고 설명한다.

허모 복지국장은 "부천시의 이웃 돌봄 주인공 동복지협의체는 기금도 마련하고, 봉사단도 조직하고, 업체와 협약을 맺기도 한다. 부족한 부분을 찾아 메꾼다. 그물처럼 촘촘히 나눔을 엮어간다. 이것이 문화특별시 부천의 참 모습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