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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고스톱' '김재규 고스톱' 기억하세요?
가족과 함께 20년 만에 고스톱을 치다
2004년 05월 19일 (수)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오마이뉴스: 지요하 기자

(1)

강원도 설악산으로 2박3일 수학여행을 갔다온 중학교 2년생 아들녀석이 가방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놓는데 이상한 물건이 하나 있었다. 뭔가 하고 보니 놀랍게도 화투곽이었다. 납작한 플라스틱곽의 뚜껑을 열어보니 화투장이 반씩 나뉘어져 나란히 담겨 있었다.

"이거, 어디서 난 거니?"
나는 놀랍기도 하고 지레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조금은 미묘한 느낌을 삼키며 아이에게 물었다.

"수학여행 가서 샀어요. 여럿이 500원씩 모아 가지구 2천원 주고 샀어요. 그래갖구 고스톱도 배우고, 애들이랑 재미있게 놀았어요."
"여관방에서 밤에 잠도 자지 않고 고스톱을 했단 말이냐?"
"아뇨. 조금씩 했어요. 낮에도 했구요. 자유시간에…. 고스톱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아빠도 고스톱 할 줄 아세요?"

녀석이 아비에게 고스톱 할 줄 아느냐고 묻는 것은 여태까지 아비가 고스톱 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일 터였다. 녀석은 고스톱이라는 말도 거의 듣지 못하며 자랐고, 화투라는 물건을 제대로 접해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일 터였다.

우리 집에서는, 적어도 내가 결혼을 한 이후로는 명절 같은 때 온 가족이 모이게 되어도 화투놀이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윷놀이를 한 적은 많다. 뒷 동 동생네 집에도 화투는 없고 장기와 바둑만 있다. 그러니 내 아들녀석은 화투라는 것이 낯선 물건일 수밖에 없었다.

처가에 가면 화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처남들과 처형과 동서들이 모이면 밤새 고스톱 판을 벌이곤 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고스톱 판에 낀 적이 없다. 구경도 별로 한 적이 없다. 고스톱 판에 긴긴 시간과 노고와 체력을 무더기로 쏟아 붓는 것은 내 양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었다.

청년 시절 한때는 고스톱을 참 즐겼다. 초상집 같은 데 가면 그냥 오는 법이 없었다. 성당 사제관에서도 신부님과 자주 고스톱을 했을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고스톱과 결별을 하고 산 세월이 아마 20년쯤 됐을 듯싶다. 왜 고스톱을 하지 않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내가 옛날에 즐겼던 것 세 가지―담배와 낚시와 고스톱을 거의 동시에 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 '동시'라는 것과 상관성이 있을 듯도 싶다.

아무튼 고스톱을 하지 않고 산 세월이 20년에 이르다 보니 고스톱의 방식이며 규칙이 냉큼 생각나지를 않았다. 그래서 아빠도 고스톱 할 줄 아시느냐는 아들녀석의 물음에 즉답을 피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수학여행 가서 중학생들이 고스톱 허는 걸 선생님도 보셨냐?"
"그럼요. 선생님이 말했어요. 화투놀이는 모르고 사는 것이 좋지만 만약 하게 되더라도 정도를 잘 지켜야 한다고…. 지나치게 좋아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나기 때문에 화투를 경계하고 멸시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도 하셨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아내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선생님 말씀이 맞다.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못하게 하는 것보다 그렇게 잘 가르쳐 주시는 것이 낫지."
"또 이런 말도 하셨어요. 고스톱은 친구들과 하는 것보다 집에서 엄마 아빠랑 하는 것이 좋다고요. 아빠, 엄마랑 우리 고스톱 해요."

그러자 아내가 즉각 나섰다.

"안 돼, 녀석아. 얼른 씻기부터 하고 밥 먹어야지 벌써 무슨 고스톱이야."
"그럼 엄마, 나 씻고 밥 먹고 나면 고스톱 해요? 엄마도 고스톱 할 줄 아시죠?"
"그건 아빠와 할머니가 결정하실 일이야."

엄마의 그 말에 따라 아들녀석이 할머니를 바라보자 할머니는 즉각 반대를 했다.
"중학생이 그새 뭔 고스톱이여. 그 시간에 공부를 헤야지…."
"고스톱 하면 공부도 더 잘할 수 있어요."
"뭐? 별 시퉁맞은 소리 다 듣겄네."

내가 한마디했다.
"내일 누나가 온다니까, 고스톱을 하게 되면 우리 가족이 다 같이 해보자."

"오케이! 좋아요. 그럼, 내일 해요."
녀석은 어느새 변성기가 정리된 굵어진 목소리로 쾌재를 불렀다. 서둘러 몸을 씻고 늦은 저녁을 먹더니 피곤한지 곧 잠자리에 들었다.

(2)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예정대로 오후에 천안에서 딸아이가 왔다. 역시 딸아이를 제일 반기는 이는 할머니이고, 할머니는 손녀에게 먹일 반찬 걱정도 도맡아 하셨다.

저녁을 먹고 나자, 아들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화투곽을 꺼내들고 고스톱을 재촉했다.

"지금은 안 돼."
나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그 안에 할 일이 있어. 아까도 얘기했잖아? 여덟 시부터 KBS 제1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프로,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얘기…."

"그래,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70명에 대한 얘기…. 아빠 말씀대로 그 프로부터 꼭 봐야지."

그리고 아내는 서둘러 설거지를 마쳤다.

우리 가족은 모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채널을 9번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24년 전의 그 기가 막힌 야만의 시절로 되돌아갔다. 그 시절을 간접 경험도 하지 못한 내 아이들은 텔레비전에 열중하면서도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한 가지는 공수부대가 뭐냐는 아들녀석의 질문이었다.

나는 공수부대의 성격을 설명했다. 적진 깊숙이 또는 후방에 공중에서 낙하산으로 침투하여 전투를 하는 군의 최고 정예부대라고…. 그러자 중학교 2학년 아들녀석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런 부대를 광주에 투입했단 말예요? 광주가 적국이었나요? 광주 시민들이 적군이었나요? 어떻게 그럴 수가…."
"광주 시민들의 계엄 반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최정예 전투부대를 투입시킨 사람들이 누구였겠니? 계획을 세우고 명령을 한 사람이 있지 않겠니?"
"그렇겠지요."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그 실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단다. 자기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람도 아직 없고…."
"우리나라가 정말 그래요? 나라가 왜 그렇대요?"

24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70인의 실종 광주시민들은 계속 돌아오지 않는 채로 KBS의 그 프로그램은 이윽고 끝이 났다.

그러자 아들녀석은 곧바로 화투 곽을 집어들고 고스톱을 재촉했다. 아직은 가슴에 심각한 중압감이 엉기지 않는 어린아이였다.

"그래, 우리 다 함께 고스톱하자. 우선 내가 새롬이에게도 고스톱을 가르쳐주고…."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시기로 하고, 네 식구만 둘러앉았다. 내가 딸아이에게 고스톱을 가르쳐준다고 말은 했지만 하도 오랜만에 잡아보는 화투장이라 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몇 장을 바닥에 까는지조차 냉큼 생각나지 않아서 마누라의 핀잔성 도움을 받아야 했다.

곧 기억력이 온전히 작동하게 되어 아이들에게 제대로 고스톱을 가르쳐주고, 우리 네 식구는 재미있게 고스톱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어느 정도 고스톱이 익숙해졌을 때 나는 색다른 제안을 했다.

"옛날 아빠가 고스톱을 많이 할 때는 '김재규 고스톱'이라는 것과 '전두환 고스톱'이라는 게 있었거든. 그걸 가르쳐줄 테니께 우리 한가지를 선택해서 허자."

그리고 나는 두 가지 고스톱을 가르쳤다. 김재규 고스톱은 내가 화투 한 장이나 두 장으로 바닥에 깔린 화투장들을 '싹쓸이' 했을 때 오히려 벌로 상대편 두 사람에게 벌어놓은 화투장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두 장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반대로 전두환 고스톱은 싹쓸이를 했을 때 내 쪽에서 상대편 두 사람이 벌어놓은 화투장 중에서 가장 중요한 두 장을 빼앗아오는 것이었다.

"전두환 고스톱이 더 재미있어. 상대편들을 죽이면서 내 상황을 완전히 유리하게 만들 수가 있거든. 어때, 전두환 고스톱을 할까?"
"싫어요. 그건 당하는 사람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
"그건 너무 탐욕적이에요."

아이들은 즉각 반대했다. 아내도 반대했다.

우리는 다시 일반적인 고스톱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들녀석이 갑자기 물었다.

"전두환 고스톱을 왜 한 거예요?"

"응, 그건 맘껏 욕을 할 수 있는 재미 때문이었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아빠와 아빠 친구들은 전두환 고스톱을 할 때마다 싹쓸이가 생기면 싹쓸이를 한 사람이 두 사람의 화투장을 골라서 빼앗아갈 때 그 사람에게 막 욕을 하기로 했거든. 말하자면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였지."
"무슨 욕을 어떻게 했는데요?"
"어떻게 했더라…."

그러자 아내가 참견을 했다.
"그건 상상에 맡겨요."
"그래요, 그럼.'
눈치 빠른 아들녀석이 아빠보다 먼저 엄마의 말뜻을 접수했다.

(3)

나는 아이들에게 화투가 일본에서 들어온 물건이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할 때 화투를 널리 퍼뜨려서 우리 민족성을 쇠락시키는 일에 요긴하게 써먹은 사실을 말해 주었다. 고스톱이 '망국병'이라고까지 불리게 된 저간의 사정도 설명해 주었다.

"화투의 원산지인 일본은 고스톱이 망국병으로 불릴 정도는 아니래. 우리나라처럼 온 국민이 화투를 즐기는 국민은 이 지구상에 없다는 거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셋만 모였다 하면 고스톱을 한대. 열차간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아빠는 그게 싫었어. 우리가 고스톱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일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하면 저절로 기분이 나빠지거든. 고스톱이 민족적 자존심하고도 관계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

"그럼, 화투를 경계하고 멸시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우리 선생님의 말은 아주 뜻이 있는 멋진 말씀이네요?"

"그렇구 말구. 선생님의 그 말씀을 꼭 명심허야 혀. 고스톱을 밖에서 친구들과 허지 말구 집에서 엄마 아빠랑 허라구 허신 말씀도…."

"그럼 집에서 고스톱 자주 해요. 참 재밌으니까요."
"자주는 안 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주일 저녁마다 한 시간씩만 허자."
"그럼, 약속해요."

아들녀석은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아내와 딸아이가 뭘 그런 것까지 약속을 하느냐고 했지만, 나는 기꺼이 아들녀석의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었다. 별 희한한 약속을 다한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한결 즐거운 기분이었다. 

▒지요하님은 1948년 충남 태안 출생했습니다. 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었습니다.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등이 있으며, 92년 충남문학대상, 99년 충청남도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 겸임교수 역임했으며, 현재 태안문학회장, 충남소설가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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