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꼬박 5시간을 남쪽으로 가야 도착하는 전남 함평군. 서울 사람들에게는 그리 가깝지 않은 이곳에 매년 5월쯤 되면 군 전체가 '자운영'이라는 꽃과 나비로 뒤덮히고, 그 멋진 광경에 이끌려 전국에서 1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진풍경을 이룬다.

지난 1999년 첫회를 시작으로 매년 5월 열리는 '함평 나비축제'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역 축제가 거의 비슷하고 한두 해 치르고 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요즘 '함평 나비축제'는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끄는 상당히 성공한 축제로 손꼽히고 있다.

지금 함평에서는 5월1일부터 9일까지 개최될 '제6회 함평 나비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다. 9일간 펼쳐질 각종 축제 행사 준비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고, 함평천과 평야에 펼쳐진 유채꽃과 자운영은 상춘객들을 맞을 채비가 이미 끝난 상태이다.

군 관계자들은 올해 함평 나비축제를 보기 위해 160만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134만명보다 26만명이 많은 셈이다. 나비축제가 있기 전에는 20만명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함평은 축제와 관광과는 거리가 멀었던 곳이다.

"가난한 고장이나 함평군 모르는 이 없을 것"

함평군 관광계 최용실 계장은 축제 6년째를 맞으면서 도시민들의 함평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전했다. 함평군은 재정자립도로 따지면 최하위 그룹에 속하는 지자체이지만, 지역 인지도로 보면 함평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을 것이라는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자연과 환경을 모토로 내건 함평 나비축제가 단숨에 '웰빙'을 추구하는 현대 도시인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대부분의 지역 축제가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한 것과 달리 함평 나비축제는 군청과 군민의 아이디어와 노력을 바탕으로 '철저히 만들어지고 가꿔진' 축제라는 점에서 새로운 축제의 전형으로 꼽힌다. 

'나비'는 함평의 대표적 이미지가 아니지만 꽃을 대량으로 심고 나비 개체수를 늘려 나비축제를 여는 등 함평의 친환경적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부각시켰고, 또 이를 함평산 농산물에 대한 친환경적 이미지로 브랜드화했다.  

축제구역도 종합생태체험마당, 친환경농업관, 애완동물전시마당, 자연학습장 등으로 마음껏 자연을 보고 만지고 호흡할 수 있는 '개방형' 자연체험 마당으로 꾸며 놓았다. 생태체험마당의 나비관은 살아 있는 나비, 국내외 희귀나비, 곤충표본, 북한나비표본 등 나비에 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나비 박물관. 아울러 수련 등 수생식물전시장, 누에일대기 학습장, 미꾸라지잡기 체험장, 친환경농업관찰로, 재래농기구 체험행사 등 행사장 구석구석이 축제모토인 ‘친환경’의 색채를 띤다. 그런가하면 철쭉꽃으로 둘러싸인 대형 나비동산은 사진촬영 명소로 인기가 높다.

이석형 함평군수는 "함평이 대표적 지역 이미지가 없다는 자치시대의 가장 큰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친환경농업지역이며 생태환경보전지역임을 연상케 하도록 나비축제를 비롯한 친환경정책을 추진하게 됐다"며 "주곡위주의 단순한 농업 소득원과 규모의 영세성으로 인한 국제경쟁력 약화로 더욱 열악해 지고 있는 한국 농촌에 새로운 활로와 방향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함평 나비축제는 농산물 시장 개방이 확대되면서 가격지지 정책이 없는 한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우리 농업, 농촌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함평 나비축제가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바로 고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있는 농촌 어메니티 자원을 아주 효과적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비·곤충 소재 생태·환경축제는 세계 처음

나비축제가 열리는 함평읍 함평천 광장 일대를 10만 평의 유채꽃과 유휴농지 24만 평의 자운영으로 단장했고, 세계에서는 최초로 살아있는 나비·곤충과 자연을 소재로 생태학습·환경축제로 육성한 것이 성공 포인트라는 것이다.

어메니티는 사전적으로는 어떤 사물이나 환경에서 느끼는 ‘쾌적성’이란 뜻이지만, 농촌 어메니티는 단순히 쾌적하고 청정한 자연환경이란 의미를 넘어 농촌에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제공하는 야생지, 경작지 경관, 역사적 기념물, 문화적 전통 등을 포함한 유·무형의 자원을 뜻한다. 농촌지역마다 각 지역에 맞는 잠재적인 경영자원, 즉 문화·예술·경관·역사·이야깃거리·소리 등이 있는데 상상력과 비즈니스 감각을 동원해 이런 농촌 어메니티를 상품화해 지역발전은 물론 그 지역 농민들의 농외소득으로 활용하자는 것이 농촌 어메니티 운동의 시작이다.  

 함평군은 '나비'와 '꽃'을 이미지 산업화하는데도 성공했다. 99년부터 이를 브랜드화해 나비쌀과 자운영쌀 등 친환경쌀을 생산·판매함으로써 타 지역 쌀보다 비싼 값을 받고 있다. 또 '나르다'라는 나비상품 브랜드를 개발해 도자기, 액세서리 등에 활용하고 있고, 라이센싱사업을 통한 로열티 수입 등으로 지금까지 25억원을 벌어들였다.

결과적으로 함평군은 그동안 일상적으로 여겨왔던 '나비'와 '꽃', 청정환경 등 농촌 어메니티 자원을 제대로 발굴해 농외소득을 거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농민들도 친환경적인 공간에서 생활함으로써 삶의 질 또한 향상된 셈이다.  

산간 오지란 자연이 오히려 잠재력 돼

농촌 어메니티 관점에서 볼 때 요즘에는 함평군처럼 산간 오지가 오히려 자원이 풍부한 잠재력 있는 지역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강원도 평창군, 경남 사천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평창군은 문화자원과 농촌경관자원을 바탕으로 효석문화제 등 축제를 개최하고, 해발 700m 이상인 지형조건을 활용해 'Happy 700 평창'이라는 브랜드를 개발해 청정우유를 생산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 등에서는 이미 농촌 어메니티 자원을 상품화한 사례가 많다. 일본은 90년대부터 전통적인 농업경관인 계단식 논을 보전하고 상품화했다. 계단식 논은 일본인들에게는 고향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후쿠오카현에서는 계단식 논을 도시민에게 분양하는 사업을 통해 관광자원화하고,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계단식 논 천연미’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 위주의 농업정책과 농업소득에만 의존하는 농촌 소득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농외소득 창출 효과가 큰 농촌 어메니티 자원을 상품화하는데 집중하고, 정부는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 정부는 농촌 어메니티 활성화를 위한 정책 연구를 추진 중이며, 올 연말쯤에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정책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취재:선경철(kcsun@news.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