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박주형 기자    
 
한 사람의 생애 속에서, 대인 관계와 직업을 포함한 거의 모든 영역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삶을 지배하는 사건을 꼽을 수 있을 게다. 그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겪었던 어마어마한 사건일 수도 있지만, 예상 외로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주 작아 보이는 문제일 수도 있다.

내게도 비슷한 시기에 발생해, 지금까지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해 온 두가지 사건이 있다. 하나는 방황하던 청소년기에 성경을 펼쳐 읽은 후, 인생의 좌표가 되어준 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눈에 '염증'이 생겨 치료하기 위해 안과에 갔다가 '쌍꺼풀 수술'을 하게 된 사건이다.

의사 선생님께서 "속눈썹이 눈을 많이 찌르니,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셨다. 하지만 당시에 남성이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경우는 드물던 터라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눈이 찔려 일생을 불편하게 생활할 필요는 없지. 그리고 조그맣게 만들면, 눈에 잘 띄지도 않아. 비용도 얼마 안 되고…."
"그러면 수술한 티가 나지 않게, 눈이 찔리지만 않을 정도로 작게 만들어 주십시오."

하지만 수술 후 이만저만 실망한 게 아니다. 수술로 인해 눈은 퉁퉁 부어서 차마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의사 선생님은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선생님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설상가상으로 길에서 반 친구 현구를 만났다. 대뜸 "너 눈이 왜 그러냐?"고 물어왔다. "혹시 너 쌍꺼풀 수술했냐? 야, 주형 이젠 너까지…. " 뭐라고 대꾸도 못한 상태에서 수치심이 몰려왔다. 그때 현구의 그 실망스런 표정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다.

다행히 붓기가 가라앉으면서, 눈은 괜찮아졌지만, 이상하게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다. 눈도 크게 잘 떠지고, 더 이상 눈이 속눈썹에 찔리는 일은 없었지만, 이젠 마음이 자꾸 찔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람들 앞에서 "저 쌍꺼풀 수술했어요"하고 속시원하게 밝힐 수 없었다. "내가 쌍꺼풀 수술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할까!" 사람들의 비난, 비웃음, 조롱이 두려웠다. 심지어 내가 그토록 신뢰했던 하나님도 나를 비난하실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쌍꺼풀에 관련한 얘기만 나와도 얼굴이 화끈거려 화제를 돌렸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는 항상 '눈'을 의식했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자기 소개를 하거나 주목을 받는 자리에서는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내 눈만 쳐다보면서, 딴 생각을 하며 정작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눈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니, 말과 행동이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고, 심지어 맡겨진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발생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한번은 교회에서 팬플루트 특별 연주를 할 기회가 있었다. 책을 스승 삼아 열심히 팬플루트를 배워 어느 정도 숙달이 된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그 자리에서, 나는 '눈'에 신경을 쓰느라 악보와 악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야 할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고, 연주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교내 식당에서 식판을 나르고, 바닥 청소를 할 때다. 일하시는 아줌마 한 분이 "학생, 혹시 눈 수술한 거 아니야?"하셨다. 여자의 눈, 특히 아줌마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그 이후 아줌마들이 모여 수군거리면, 꼭 내 흉을 보는 것만 같았다. 무슨 남자가 쌍꺼풀 수술을 하냐고.

군대에서도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날은 고참 한 명이 내 눈을 올려다보면서 "야, 너 쌍꺼풀 수술했지? 무슨 남자 ○○가 수술을 하냐"고 했을 때, 수치심으로 쥐구멍으로라도 숨고 싶었다. 비웃음, 비난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도 없을 게다.

사람의 눈이 부담스러워 많은 시간 골방에서 홀로 있기를 선택했다. 스스로 꿈과 삶의 영역을 축소시켜 버린 것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생각하다가, 혼자서 '팬플루트'라는 악기를 배워보기도 하고, '초상화' 교본을 구입해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린 적도 있었다.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신혼부부 몇 쌍을 포함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기까지 했다.

점점 더 자기 세계에 갇히면서 언젠가는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았을 때, '너는 내가 아니다'라는 못된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도 큰 문제다. 아무래도 내 미래를 위해 더 이상 이렇게 지내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을 다시 찾아가 "쌍꺼풀을 없애 주십시오.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며 다시 수술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다시 수술하는 것은 위험하고, 수술이 잘 되어도 눈에 흉터가 남는다"는 말에 힘없이 돌아왔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이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똑같은 나인데, 왜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못살게 굴었을까. 다른 사람이 나를 비난하면, 좀 서툴지라도 뭐라고 변호를 해야 했는데, 왜 덩달아 스스로를 비난하며 학대한 것일까. 삶의 진전을 막아 곤두박질케 하는 무서운 '덫'에 걸린 듯하다.

쌍꺼풀이 없을 때나, 쌍꺼풀이 생겼을 때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변함 없이 동일한, '박주형'이라는 인격체다. 거대한 삶의 영역 속에서 아직 가난하고, 지위가 낮고, 자신 몫의 성취 영역도 미미하지만 다른 60억의 사람들처럼 나도 존재 자체로 존중받기에 충분한 소중한 한 사람이다. 분명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잘못이 있으면 돌이켜야겠지만,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비난해 삶을 그르칠 이유는 없는 게다.

감시 카메라가 돌아가는 군대 영창에서 보낸 20일, 그 어두운 기억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이 섞인 태도였다. 그래서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도 '20대 중반에 군대 감옥에 갇힌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만큼 힘이 들었던 게다.

오랜 시간 자신을 억압하고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불행으로 몰아간 근본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방치해 놓기만 했다. 하지만 이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행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련다.

"어떤 사람에게 하찮게 보이는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아킬레스건처럼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알게 되어 감사하다. 다른 사람을 좀 더 너그럽고 따듯한 시선으로 대할 수 있는 태도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말할 때,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판단하고 그릇된 평가를 내려 비난한 적은 없는지, 누군가를 궁지로 몰고 가 마음 아프게 하진 않았는지, 사려 깊지 못했던 내 삶을 되돌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