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약간의 고통을 즐기는 피학성 즉, 매저키즘과 상대의 고통을 즐기는 가학성인 새디즘이 조금씩은 내재돼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학습되고 습관화되어 갑니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 중에서 학습능력이 가장 뛰어난 인간에게는 그것이 매저키즘이든 새디즘이든 그만큼 쉽게 익숙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말에 ‘매도 맞다보면 이력이 붙는다’ 라는 것도 이것에 연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서울신문 백무현

 그동안 한국의 역사 속에서 민중은 권력이 만든 매저키즘에 길들여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민중과 민초에서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면서 조금씩 권력의 매저키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우리도 권력을 향해 고통을 줄 수 있는 새디스트가 될 수도 있음을 민주의 시대가 돼서야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기억력은 그 강도가 강할수록 뇌리에 오래 남아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보다 고통과 고난의 기억을 더 많이 갖고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당시의 고통은 잊어버리고 아주 편리하게도 그 상황만을 기억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는 뒤돌아보기도 싫었던 군대시절이 그렇고, 가난해서 흰쌀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것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향수라고 부릅니다.

다시 그 시절이나 그런 상황에 닥치게되면 그 고통을 감내할 자신도 없으면서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그리워합니다. 세월이 치유해버린 당시의 고통은 다 잊고 말입니다.

박정희 시절의 향수 역시 그런 점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인권이 유린당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스스로 사육 당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순진한 모범생처럼 근대화라는 미명 하에 독재의 매저키즘에 학습돼 왔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과거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어머니의 옛날 식 반찬만을 그리워하듯 그 시절을 떠올리는 국민들 앞에 나타난 것이 ‘박근혜의 웃음’과 ‘눈물’입니다.

박근혜의 ‘웃음’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육영수 여사의 인자함을 떠 올리게 합니다.

박근혜의 ‘눈물’은, 젊은 날에 부모를 잃고 힘들게 정치역정을 거쳐온 불운했던 공주의 일생을 보여줌으로써, 타인의 불행에 가슴아파할 줄 아는 우리 국민의 남다른 동정심을 자극합니다.

국민들 가슴속에 남아있는 향수와, 한민족의 정적인 심성에 호소하는 모습 어디에도 독재자의 딸이라는 이미지는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저키즘의 향수에 젖어 있더라도, 고통이 잊혀질지언정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안다면,  그 향수 저편에 웅크리고 있는 독재권력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는 불행한 공주가 아니라 분명 정치인이고, 정치인의 웃음과 눈물은 악마의 미소와 악어의 눈물일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장승태 (순천대 교수. 시사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