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소몰리에 이지민(롯데호텔?35)씨가 와인 테스트에 첫 단계인 와인의 빛깔을 보고 있다. 와인은 시각 후각 미각 순으로 테스트한다.

강한 첫향 깊은 여운…입안서 한바퀴 굴리면
깊고 부드러운 그맛, 감미롭게 온몸 감싸네

최근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와인 소비량이 대폭 늘었다고 한다. 반면 소주나 양주 소비량은 눈에 띌 만큼 줄어 음주문화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2만원대의 저렴한 와인도 얼마든지 있고 일단 폭음하는 경우가 드물어 요즘 유행하는 '아침형 인간' 이나 '웰빙족' 에게 가장 적합한 술이다.

그러나 아직 와인은 맛에서도, 문화에서도 우리에게 낯설다. 깍두기 한 접시만 놓고도 기분 내키는 대로 사발에다 가득 부어 마시는 우리 전통주인 막걸리나, 혼자서든 혹은 여럿이든 언제나 가볍게 한잔 할 수 있는 소주를 앞에 놓았을 때보다는 왠지 긴장되는 느낌이다. 몇 번 마셔봤지만 그 맛을 정확하게 모르겠다거나 와인과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혹은 와인의 진짜 매력에 빠져보지 못하고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또는 분위기에만 휩쓸려 멋으로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와인은 결코 어려운 술이 아니다. 와인에 대해 조금만 알면 그 매력에 빠질 수 있다. 만일 잘 모르겠으면 두려워하지 말고 전문가인 소믈리에나 와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물어보자. 언제나 친절히 가르쳐줄 것이다. 와인 산지와 토양, 역사적 배경, 그 지방의 문화까지 배울 수 있는 재미도 있다.

▒ 프렌치 패러독스의 비밀, 와인과 건강

 히포크라테스는 와인(Wine)이 해열작용과 이뇨, 배설을 용이하게 한다는 의학적 효능을 밝혔다. 와인은 우유 다음으로 완벽한 식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발효시킨 100% 포도즙으로 300가지 영양소와 비타민, 미네랄 등을 함유하고 있어 유럽에서는 '노인의 우유' 라는 별칭이 붙기도 한다. 와인 한 병에 약 1000~1200g이 들어가니 '마시는 과일' 인 셈이다.

와인과 관련된 건강에 대한 논의는 1982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시작된 '모니카 프로젝트' 에서, 와인을 늘 마시는 프랑스인이 미국이나 영국인에 비해 흡연과 지방, 단백질 섭취량이 많은 데도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낮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이 '프렌치 패러독스' 는 레드 와인에 든 레스베라트롤ㆍ쿼세틴 등 심장을 보호하는 항산화물질이 키워드였다.

와인이 콜레스테롤을 억제해 순환계통 질환자나 당뇨병에 좋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의사들은 다이어트를 시작했거나 산성체질을 중성화해 체질을 개선하려는 사람은 하루 한두 잔씩 와인을 꾸준히 마실 것을 권한다. 그러나 와인은 절대 '약' 이 아니다. 와인이 아무리 좋더라도 알코올 음료며, 과음이 몸에 건강할 리 없다.

▒ 초 급, 중급, 고급 수준에 맞는 와인이지민 씨는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화이트 와인부터 시작하라고 말하고 있다. 레드 와인은 입안에서 떫은 맛(탄닌 성분)이 많이 나기 때문에 혀에서 아스트린젠트(혀가 떫은 맛으로 인해 오그라드는 현상)가 일어나 초보자, 특히 여성들에게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미디엄 보디(와인이 혀에 닿는 느낌, 무게) 정도의 화이트 와인, 예를 들면 독일의 리슬링 품종으로 루에데샤이머 베르크 로틀란트 리즐링 스파틀레세(Ruedesheimer Berg Rottland Riesling Spatlese) ,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게부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퍼펜하임(Phaffenheim) 정도면 드라이(알코올 도수가 높고 단맛이 없음)하지 않아 와인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한다.

식사 때 와인을 같이 즐길 줄 아는 마니아라면 음식종류와 모임의 성격에 따라 품종별, 국가별 또 가격에 맞춰 와인을 매치시켜 마실 것이다. 화이트 와인으로는 뉴질랜드의 빌라 마리아 리저브 쇼비뇽 블랑(Villa Maria Reserve Sauvignon Blanc)으로 입맛을 돋우고, 레드 와인으로는 이탈리아의 슈퍼 투스칸 티그나넬료(Tignanello), 안티노리(Antinori)를 즐긴다면 중급자에 속할 것이다. 와인에 대한 전반적인 상식도 풍부하고 와인을 식사 때마다 빼놓지 않는 와인의 달인들에겐 로마네 콘티 같은 프랑스의 최고급 와인을 마신다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실험적인 와인을 시도해보길 권한다.

요즘 유행하는 컬트 와인이라든지 부티크 와인으로 유명한 미국 나파벨리의 실버 오크 바인야드(Silver Oak Vineyard), 루더퍼드 힐(Rutherford Hill) 등을 구해 마셔보길. 오랫동안 얘깃거리가 될 것이다. 프랑스의 뫼솔트 프리미에르 쿠루(Meursault Premier Cru), 루이 라투르(Louis Latour)와 차가운 전채요리나 그린 샐러드로 봄 입맛을 돋우고 그릴에 구운 양고기와 오스트레일리아의 플래티넘 라벨 시라즈(Platinum Label Shiraz)로 나른해진 식욕을 보충한 뒤 셔벗과 어울리게 달콤하면서도 차가운 캐나다의 비달 아이스 와인(Vidal Ice Wine)으로 식사를 마무리 한다면 미식가에겐 최고의 만찬이 될 것이다.

▒ 미역국ㆍ파전과 찰떡궁합

우리가 주로 마시는 와인은 식사와 함께 마시므로 음식과의 궁합이 매우 중요하다. 와인문화를 우리보다 훨씬 먼저 받아들였고 보편화된 일본은 음식 궁합으로 인해 '고생' 을 많이 한 나라다. 사시미, 스시 같은 날 생선이나 일본 간장, 식초류 등이 와인과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요리연구가가 일본 요리와 와인과의 조화 있는 식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와인을 마시기 위해 매일 프랑스 요리나 이탈리아 음식을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음식은 와인문화와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일본 미식가는 참기름에 미역을 볶는 한국식 미역국 조리법이 프랑스 와인과 어울린다는 걸 밝혀내기도 했다. 와인의 포도품종과 토양에 대해 알면 좀더 훌륭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와인의 재료인 포도는 70%가 포도밭에서 품질이 결정된다. 와인병의 라벨에 품종과 농장이름이 새겨 있는 것은 품질을 보증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와인을 따를 때는 반드시 라벨이 보이도록 한다. 와인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향을 음미하고, 맛을 보는 와인 테스팅의 3단계가 얼마나 과학적인지 알 수 있다.

우리 음식과 맞는 와인은 어떤 게 있을까. 불고기는 원숙하고 탄닌 성분이 부드러운 메를로 품종의 레드 와인이나 프랑스의 코트 뒤 뉘의 피노누아 와인이 어울린다고 한다. 고기 산적이나 갈비의 경우에는 무거운 보디의 탄닌 성분이 많은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프랑스 보르도 레드 와인이나 이탈리아의 바롤로, 바르바 레스코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쉬라즈 등을 꼽았다. 생선전이나 파전 등의 부침 종류에는 샴페인, 새도네, 샤블리, 프랑스 브루고뉴 지역의 화이트 와인 어느 것이라도 무난하다고 한다.

봄 내음이 싱그러운 나물 등에는 풀냄새가 상큼한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 와인이, 약간 달게 조리된 고기 음식의 경우 아르헨티나 말벡이 입맛을 돋워 주는 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