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민주당 상임중앙위원회에 참석한 추미애 의원이 쇄신파 의원들이 작성한 '당 지도부 사퇴 촉구' 성명서를 유심히 읽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마이뉴스: 이한기 기자

우리의 기대가 실현되지 않아도 / 아직 우리의 기도와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 한 번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추미애 의원이 지난 16일 자신의 홈페이지(www.chumiae.or.kr) '희망 메시지' 코너에 올린 50번째 글인 잡보장경(雜寶藏經)의 한 구절이다.

추 의원은 대선 직전인 지난 2002년 11월 27일부터 홈페이지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왔다. 그는 '희망 메시지'를 통해 때로는 감성적인 수필과 자작시를, 때로는 대북송금 특검에 관한 정치적인 문제를 거론해왔다.

그동안 희망 메시지는 '말수가 적은' 추 의원이 자신의 심경을 외부로 알리는 의사 소통의 창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거나 정치적인 곤경에 빠졌을 때마다 희망 메시지를 통해 선문답식 화두를 던져왔다. 마치 감옥에 갇힌 이가 서신을 통해 감옥 밖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듯.

가장 최근에 올린 희망 메시지의 글이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점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추 의원은 지금까지 희망 메시지에 자신의 목소리만을 담아왔으나, 이번 50번째만큼은 이례적으로 남의 글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나섰다. 더욱이 보는 이에 따라 제각각의 해석을 낳게 하는 불교 경전을 인용했다.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추 의원은 그동안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은유나 비유보다 직설적인 화법을 즐겨 써왔다. 그런 그가 '역사의 격랑 속에서…'라는 제목 아래 '잡보장경'의 구절을 꺼내 놓은 것은, 그만큼 복잡한 지금의 상황과 본인의 심경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잡보장경의 이 구절은 '지혜로운 이의 신중한 처신'을 뜻하는 것이어서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이기도 하다.

그는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4일만에 '잡보장경'을 통해 심중을 드러냈고, 그 글이 뜻하는 바대로 지금까지 대외적인 발언을 삼가며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일 상임중앙위원직을 사퇴한 추 의원은 22일 민주당 상임중앙위원회에서 단독 선대위원장으로 추대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타부타 말을 않고 있다.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라는 구절처럼 추 의원의 침묵 속 장고가 이어지고 있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라는 구절을 곱씹고 있을 추 의원이 과연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더욱이 23일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의 새 대표로 선출돼, 추 의원이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을 경우 이번 총선은 두 야당을 대표하는 두 여성 정치인의 대결이라는 흥미로운 구도가 펼쳐져 더욱 추 의원의 선택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다음은 추미애 의원이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잡보장경' 구절이다.

걸림 없이 살 줄 알라.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불자의 삶이니라.
우리의 기대가 실현되지 않아도
아직 우리의 기도와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잡보장경(雜寶藏經)>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