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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역 부천 초대형 청동기시대 주거지 발굴
역사문화재단]최현수소장의 부천역사를 보는 눈 ㅡ 3
2004년 03월 21일 (일) 00:00:00 최현수 기자 bicfun2000@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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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출토유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 건립이 필요하다.

경기도 서부지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우리 부천은 한강 유역에 자리하고 있는 지리적 요건으로 말미암아 일찍부터 역사무대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실질적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역사의 시작을 살피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부천시 계수동과 이웃하고 있는 시흥시 계수동에서 두 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 13호 주거지

그러다가 1995년 10월 오정구 고강본동 산 91-1번지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단군이 나라를 다스리던 청동기시대인 고조선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청동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학자간의 의견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기원전 10세기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청동기시대는 대개 기원전 4세기 경까지 계속된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발행된 우리 시의 통계연도에서는 부천의 역사를 항상 삼한시대부터라고 한다. 더구나 학자간에 그 위치에 관한 비정에 불씨가 남아 있는 우휴모탁국이라고 하니 가관이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농경문화의 발달과 정착생활을 들 수 있으며, 벼농사가 시작되었음은 고강동에서도 많이 출토된 반달돌칼이나 홈돌자귀를 사용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이 반달돌칼은 벼를 추수할 때에 손에 쥐고 이삭을 자르는데 사용했던 것이며, 홈돌자귀는 땅을 가는 쟁기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농기구이다. 이 시기에는 벼 외에도 조. 수수. 보리가 재배되었으며, 청동기로는 무기를 만들었고, 생활은 고강동에서도 13기가 발견된 네모진 장병형 모양의 움집에서 주로 살았다.

   
▲ 숯돌류

고강동 선사유적지에 대한 지금까지의 5차 조사결과 총 13기의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발굴조사되었고, 주변 시굴조사를 통하여 관련 유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사 성과로 보아 고강동 선사유적지는 한강하류에 입지한 청동기시대 대형 취락유적임을 확인하였다.

지난 3월 12일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소장 배기동)는 조유전 전 문화재연구소장,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숭실대 사학과 최병현 교수 등 지도위원과 향토사 관계자 및 시청 공무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강동유적지 현장에서 '2004년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지 6차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를 가졌다.

   
▲ 돌화살촉.돌검

그 간 5차례의 발굴에서 청동기시대의 집자리들과 함께 당시의 제사유적인 적석 환구 시설이 청룡산(일명 장갯말 뒷산) 정상에서 발견되어 크게 주목된 바 있다.
이러한 제사유적은 한반도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유적으로 평가되면서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이르는 제의를 추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6차 발굴조사에서 발굴된 13호 주거지는 장축의 길이가 19m에 달하는 초대형 청동기시대 주거지(길이 19m, 폭 4m, 깊이 90㎝)로 규모면에 있어서는 경기지역에서 최대형급에 속하며, 주거지 내부의 시설 역시 넓은 지역에서 구운 바닥 등이 확인되고 있어, 고강동 선사유적 내에서도 특별한 기능을 가진 주거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주거지에서 출토된 굽은 옥(玉).방추차

고강동 선사유적은 그간의 조사를 통하여 제1층-청동기시대 문화층(민무늬토기문화층), 제2층-초기철기시대 문화층(점토대토기문화층), 제3층-통일신라시대 문화층(돌덧널무덤) 등 청동기시대 전기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복합유적임이 확인되고 있어 이 유적을 사적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학자들의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부천시 관계자는 "고강동 선사유적이 유적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올 11월 중 '선사유적 적석환구 유구 국제학술대회'를 가질 예정이며, 이후에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될 것으로 계획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6차 발굴조사에서 13호 주거지에 대한 정밀발굴조사의 성과를 요약하면,
첫째, 금번 발굴조사된 13호 주거지는 장축의 길이가 19m에 달하는 대형 청동기시대 주거지로 규모면에 있어서는 경기지역에서 최대형급에 속하며, 주거지 내부의 시설 역시 넓은 지역에서 구운 바닥 등이 확인되고 있어,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내에서도 특별한 기능을 가진 주거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13호 주거지의 내부 조사작업 중 주거지 퇴적층 안에서 곡옥이 출토되어 주거지의 폐기 과정에서 매몰된 것으로 보여 향후 주거지의 매몰과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13호 주거지의 조사과정에서는 다량, 다종의 청동기시대 석기들이 출토되어 한강변 청동기시대  주거지내의 기능행위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

넷째, 고강동 선사유적 능선 사면 하부에서는 시굴조사 결과 관련 유구가 확인되지 않음으로서 당시의 주거토지 이용방식에 대하여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 돌도끼. 반달돌칼

금번 6차 발굴조사를 통하여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중 고강동지역(A지구)에 대한 조사가 완료되었다.

향후 유적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역사주제공원으로의 개발계획이 시급히 추진되어 유적이 항구적인 역사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교육자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조속히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된다면 서울 암사동 주거유적지에 못지않은 야외 선사박물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박물관 건립에는 전문가는 물론 지역을 사랑하는 인사 및 향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강동 선사유적을 전체적으로 역사주제공원으로의 개발을 위하여 적석환구 유구(제사유구)가 확인된 작동지역(B지구)에 대한 전체적인 조사를 실시하여야 할 것이며, 청동기시대 무덤형태인 고인돌의 존재여부도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1968년 경인고속도로 공사 당시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신고된 유물이 없나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  최현수 :
부천역사문화재단 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천교육청 초등3학년 사회교과서 <우리가 사는 부천시> 감수위원,  중등교과 심의위원, 중등교재 <우리 고장 부천>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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