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타임즈: 한해주

며칠전 영화를 한편 봤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딸아이 둘을 둔 주부인 제가 영화를 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같이 일하는 선배의 배려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근무시간에 짬을 내서 봤지요. 그 영화를 안보고는 아줌마들 사이에서도 왕따가 될 정도입니다.

영화를 본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리얼하게 잘 만든 영화였지만 영화를 장악한 전투신이 무척 지루했고 눈이 아팠습니다. 제게 남아있는 폭력의 기억은 잘 만든 영화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한편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밥먹듯이 하는 후배의 바람을 이뤄준 선배에게 제 감상을 솔직하게 얘기를 했더니 "전쟁영화가 다 그런거지,,,"라고 하더군요.

오늘 퇴근을 하고 아이들과 뉴스를 봤습니다.
아이들은 맑은 눈망울을 굴리며 "엄마 아저씨들이 왜 싸워?" 묻더군요.  저의 대답은 ",,,,"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속으론 아주 쉽게 그리고 습관적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 저렇단다"라고 했습니다.

전 그저 평범한 아줌아입니다.
웬만한 사람은 다 봐서 천만 돌파를 앞둔 "태극기" 영화를 본 것을 자랑할만큼 먹고 사는데 힘겨운 서민입니다.  아이들 사교육이 가장 큰 관심거리인 주부이구요.  이런 제가 언제나 봐도 당당하고 아름다운 정치인 의원님께 공개편지를 드리는 것이 주제넘은 일인 것 같아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때 문학소녀였던 글발을 믿고 펜을 들었습니다.

의원님과 저는 종씨입니다.  단일본이라 우리 성씨는 아주 가깝다고 제 친정아버님께 들었지요.  제 일터에는 수취인 불명의 우편물이나 택배가 자주 오곤 합니다.  겉봉에 '추미애님께'라고 적힌 우편물이 오면 수취인 불명의 우편물이 용케도 제게 배달이 되지요.  물론 제가 받아봐야 할 우편물입니다.  귀한 성씨 탓일겝니다.  그런 우편물이 제게 배달사고 한번 나지않고 오는 것을 보면 저는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울 아버지 못다이룬 꿈이 이렇게 나마 위로를 받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제 아버지는 장녀인 제게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어느해 시제를 모시고 온 후 아버지는 별 볼일 없는 추씨가문에 빛나는 의원님의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지만 아버지는 의원님을 딸자식이 걸어야 할 인생의 모델로, 인물없는 가문의 영광으로 뿌듯하게 간직하셨습니다. "더도 말고 추미애만큼만 되었으면,,,"제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씀입니다.

정치인의 길을 걸으면서 그간 보여주신 웬만한 남성들보다 더 당당하고 통큰 의원님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고 행복했습니다.  가문의 영광이요 제 아버지의 행복한 모델이던 의원님은 정치인들의 추태를 싸잡아 비난하는 망태같은 그말 속에 결코 낄 수 없는 곧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노의 하루를 힘겹게 보냈습니다.
가장 견딜 수 없었던 사건은, 그 현장에 자릴 지키고 있었던 의원님의 모습을 제 눈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역사를 알고 정의를 알고 진실을 얘기하던 의원님이 왜 거기에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간 짧았던 의원님의 침묵과 광란의 현장에서 바쁘게 빠져 나오던 의원님의 얼굴이 교차했습니다.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들,,,바람빠진 풍선처럼 저는 떨며 가라앉았습니다.

아줌마의 짧은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살았던 것도 아니고 그저 마음이 흘러가는 곳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살았습니다. 제가 알았던 추미애 의원도 그렇구나, 여의도동 1번지가 주는 권력의 맛에 푹 절어 지역구 유권자 분석후 계산된 행동에 양심을 버리는구나.

이제 아픈 맘으로 당신에게 걸었던 희망을 접겠습니다.
가문의 영광이던 추미애라는 이름과 가난한 부녀의 행복한 기억은 여기까지 입니다. 그간 고마웠습니다.

부디, 수구꼴통들의 마지막 발악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오늘밤엔 악몽을 꿀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