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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태화산 마곡사
2004년 03월 11일 (목)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오마이뉴스: 임윤수 기자

   
▲ 발빠르게 피어났던 목련이 꽃샘추위와 동반한 춘설이 녹으며 만들어진 얼음에 온전히 쌓였다. ⓒ2004 임윤수

해마다 거르지 않고 찾아오기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언제고 낯설고 내키지 않는 게 꽃샘추위다. 매년 봄의 문턱에서 깔딱 고개처럼 넘어야 할 한기의 마지막 까탈이려니 해도 올해는 좀 지나친 듯 싶다. 엄청난 폭설과 한파로 시샘의 단계를 넘어 많은 피해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있듯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길고 가혹할 수록 찾아오는 봄은 그만큼 따뜻하리라 기대한다. 길었던 고통을 보상해 주고도 남을 만큼 화사하며 좋은 일이 있을 거라 위안하면서도 당장에 피해가 고통스럽다.

꽃샘추위는 대개 2월 말∼ 3월 중순까지 나타나는데 갑작스런 시베리아 고기압의 확장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기상이변이라고 한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한겨울 혹한의 권세를 누리던 시베리아 고기압도 2월 하순이 되면 서서히 세력이 쇠하게 되어 밀려나게 된다. 이렇게 쇠퇴해 가는 시베리아 고기압 자리엔 남서쪽의 따뜻한 고기압이 찾아든다.

절기가 바뀌어 햇살이 길어지고 봄비마저 촉촉이 내려 주니 이들을 원동력으로 여기저기서 개화가 시작되니 드디어 봄이다. 이럴 즈음 약화되었던 시베리아 기단이 다시 한번 세력을 회복해 권토중래하여 불현듯 찾아오면 이것이 꽃샘추위다.

인간들이야 넣었던 옷 다시 꺼내 입고, 몸 한번 더 웅크리면 되지만 눈치 없이 발 빠르게 피어났던 꽃들은 동사되기도 하니 꽃들에게 있어 꽃샘추위는 저승사자와 같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 계곡을 걷고 다리를 건너면 해탈문이 나온다. 이 해탈문까지 들어가는 계곡에서 봄 맛을 챙겨야 한다. ⓒ2004 임윤수

그러나 꽃샘추위 뒤에는 자연의 심오한 생존 전략이 있다. 일상 꽃샘추위라 하면 움트던 새싹이나 웅크리게 하고, 피어나던 꽃망울이나 동사시키는 것으로만 생각되지만 그 뒤에는 자연에 순응하며 적응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자연의 감각이 활동으로 시작되는 기점이기도하다.

꽃망울 틔우고 새싹이 돋는 봄부터 시작된 수목들의 일년 나기는 한여름 녹음기를 거쳐 화려한 단풍과 탐스런 열매를 맺는 것으로 일년을 갈무리한다. 그렇게 자라고, 그렇게 무성하며, 그렇게 곱고 탐스런 잎새와 열매도 일말의 미련 없이 다 떨구고 겨울로 들어서는, 버려야 할 때 버릴 줄 아는 지혜를 수목들은 가지고 있다.

그렇게 모든 것 다 버리고 겨우내 죽은 듯 몸 낮추며 겨울 고비를 넘기며 봄을 맞이한 나무들은 일년을 시작하며 새싹과 꽃망울을 틔울 때도 아무 때나 틔우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기회 선택의 끈기와 본능적 혜안을 가지고있다.

수목들은 바로 꽃샘추위 때, 가장 열악한 조건일 때 새싹과 꽃망울을 제일 많이 틔운다고 한다. 틔웠던 싹도 거둬들이고 펼치던 꽃망울로 다시 접을 판에 새싹을 틔운다니 도저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거기엔 자연이 존재하기 위한 처절한 자기 의지가 숨겨져 있다. 아무런 내력도 갖추지 않은 야들야들한 싹이나 몽우리가 따뜻한 때 세상 밖으로 틔우면 그것들은 말 그대로 연약한 새싹일 뿐이다. 혹한이나 여타의 열악한 조건에서 버틸 수 있는 생존력도 저항력도 갖추지 못한 채 밖으로 내던져지는 결과가 된다.

▲ 극락교 건너 아름드리 느티나무 사이로 대광보전과 대웅전이 보인다. 아직은 날씨가 차가운 탓에 누비옷을 입은 스님이 털 모자를 머리에 올려놓았다.ⓒ2004 임윤수

아무런 대책 없이 따뜻한 봄날 싹을 틔웠다 예기치 않게 추위라도 다시 오거나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그 꽃 몽우리나 싹은 결국 죽어버린다. 그러나 가혹하도록 추운 꽃샘추위 때 새싹을 틔우게된다면 어떻게 될까? 새싹들이 그 추위를 이기고 살아나기만 하면 설사 다시 한 번 추위가 찾아오고 바람이 분다 해도 그 새싹은 꿋꿋하게 살아나 무성한 잎이 되고 아름다운 꽃이 되어 다시 열매를 맺게 된다.

봄날 자연이 만들어 내는 대자연의 도도한 상징인 새싹들이 험한 세상으로 나가면서 겪게 되는 최초의 시련이자 단련의 기회가 바로 꽃샘추위다. 이게 바로 자연이다. 순응하며 생존할 수 있는 내력이 준비된 것만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곳이 자연이고 그 출발의 시기를 선택하는 것이 자연의 본능적 지혜다.

새끼를 낳으면 낭떠러지에서 떨어트려 살아남는 것만을 키우는 맹수들의 냉혹한 생존 경쟁력이 수목에도 엄연히 적용됨을 볼 수 있으니 여기에 자연의 가르침이 있다. 너나없이 넘치는 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엽고 귀한 것이 자식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하고 귀한 자식에 대한 인간들의 처세는 결국 새싹 하나를 틔워내는 나무 하나의 지혜와 의지를 넘어서지 못한 듯하다.

과잉 보호는 살아갈 수 있는 생활력을 준비할 기회를 박탈한다. 지나친 간섭은 화해할 수 있는 유연성을 경직되게 하고 절름발이 가치관을 형성시킨다. 자연에게 배울 일이다. 자식은 온실의 화분처럼 그렇게 키울 것이 아니라 혹한에 싹 틔우는 산야의 수목처럼 그렇게 키우는 것임을 말이다.

▲ 극락교 위쪽으로는 산 빛 가득 머금은 계곡이 깊숙하게 산 속으로 이어지고 있다ⓒ2004 임윤수

그러니 꽃샘추위 때 자연계에 귀를 기울여볼 일이다. 여기저기서 새싹을 틔우고 꽃망울 움트는 소리가 아가의 옹알이처럼 들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적응해 가는 지혜가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론 너무 일찍 싹을 틔워 꽃망울을 맺다 졸지에 동사하는 꽃들도 볼 수 있다. '모난 돌 정 맞듯' 튀지 말고 서두르지 말며 주변의 흐름에 속도를 맞추는 완급 조절도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보여준다.

대전에는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있다. 봄 풍경은 마곡사가 으뜸이며 가을 풍경은 갑사가 볼만하다는 말이다. 마곡사라고 해서 오는 봄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아나는 건 아니지만 흐르는 계곡으로 아침 저녁 다르게 다가오는 신록이 빛깔은 실로 아름답다.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는 봄을 알리는 자연의 합창이다. 급한 물줄기는 급한 물줄기대로, 바위에 부딪혀 돌아가는 물줄기는 그 물줄기대로 독특한 톤으로 합창에 하모니를 이룬다. 거친 땅, 두툼한 껍질을 헤집고 고개를 내민 새싹들이 쏟아내는 상큼한 냄새는 봄을 느끼게 하는 자연의 향이며 독백처럼 들려주는 봄처녀의 속삭임이다.

계곡을 밑그림으로 하여 흐르는 물을 그려 넣고 조금씩 조금씩 푸름을 덧칠하며 한폭 그림을 완성해 가는 것이 봄날 자연이 그려내는 걸작 풍경화며 그 미미한 움직임이 판토마임이다. 그런 걸작의 풍경화에 자신을 등장시키고 판토마임의 주인공을 대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마곡사 가는 계곡길이다.

▲ 극락교 아래로는 수많은 잉어들이 유유자적 유영한다. ⓒ2004 임윤수

봄 경치가 이렇듯 수려한 마곡사는 공주에서 예산으로 가는 32번 국도를 타고 가다 사곡에서 지방도로로 이어진다. 사곡을 벗어나 구비 구비 산자락 따라 만들어진 길은 혼잡할 것 없어 절로 느긋해 지니 마음조차 넉넉해진다.

그렇게 이정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면서부터 봄 경치가 으뜸이라는 마곡사 계곡은 시작된다. 그리고 한 걸음 두 걸음 계곡을 따라 걸으면 계곡에 흐드러진 봄 속에 내가 들어간다.

마곡사(麻谷寺)라는 명칭은 본래 이 지역에 마(麻)가 많이 재배되던 골짜기(谷)라 하여 마곡(麻谷)이라 부르던 곳에 있는 절(寺)이란 뜻이라고도 하고,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유학할 때 스승인 마곡 보철화상을 기려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또한 보조국사가 고려 명종 2년(1172)에 이 절을 재건하고 법문을 할 때 설법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로 골짜기가 꽉 찬 모습이 마치 삼밭에 삼(麻)이 들어선 듯 빼곡하다하여 마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대부분의 산사가 계곡 하나씩은 끼고 있지만 이곳 마곡사는 산중 절이라기보다는 계곡 속에 자리한 절이라고 표현하는 게 어울릴 만큼 계곡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개의 절들은 산문이나 매표소를 지나면 계곡이나 개울을 건너고 앞쪽으로 이런저런 문들과 전각들이 있다.

▲ 보물 802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광보전은 그 규모도 놀랍지만 기둥을 이루고 있는 아름드리 싸리나무가 눈길을 끈다.ⓒ2004 임윤수

그런데 마곡사는 다른 절과는 달리 매표소를 지나 한참을 걸어 들어가되 바로 오른쪽에 절을 두고도 줄곧 올라가야 한다. 펄쩍 건너뛰면 닿을 듯한 오른쪽 계곡 건너에 마곡사가 있으나 물길을 따라 한참을 걷고 다시 한번 다리를 건너야만 해탈문과 천왕문에 닿게 된다.

길을 걷다 보면 아름드리 느티나무 사이로 알록달록 단청으로 치장된 전각들이 보이고 목탁 소리에 실린 염불 소리가 들릴 수도 있다. 흐르는 물은 말할 것 없고 커다란 바위에조차 봄빛이 흠뻑 배어 있다.

마곡사를 찾아가는 길은 그래서 좋다. 아무런 준비 없이 털썩 해탈문을 지나고 천왕문을 지나는 게 아니고 돌아가고 건너가는 계곡길이 미리 마음 열어주고 몸가짐을 챙겨 주니 그냥 찾으면 된다.

마곡사 계곡은 그냥 위에서 아래로 하염없이 물만 흐르기만 하는 그런 계곡이 아니다. 맑고 깨끗한 물엔 반질반질한 바위들이 도반처럼 발 담가 어깨동무한 채 물소리로 합창한다. 울퉁불퉁 못생겼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온 느티나무도 강강수월래를 하는 춤꾼들처럼 울타리를 만들어 한몫 하고 있다.

▲ 대광보전 뒤로,ⓒ2004 임윤수

마곡사 계곡은 태극 모양으로 휘돌아 나가는 형상으로 물길 양쪽으로 전각들이 들어서 있다. 계곡을 돌아 처음으로 맞게 되는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게 되면 극락교를 건네게 된다. 극락교를 건너기 전 좌측으로 이런저런 전각들이 있고 다리 건너 멀리 대웅전이 보인다. 해탈문 앞으로 작은 부도밭과 주변에 키 큰 나무들이 서 있을 뿐 그 어떤 꾸밈도 없다.

해탈문 왼쪽으로 소박해 보이는 흙담 안으로 몇몇 한옥 건물이 보이는데 영산전과 홍성루, 매회당, 수선사 등의 요사채다. 이곳으로부터 대웅전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다시 한번 계곡에 놓여진 다리 하나를 지나야 하니 그 다리가 극락교다.

주변의 형세가 이승과 극락을 절묘하게 갈라놓은 듯 하여 누구라도 쉽사리 그 다리의 이름이 극락교쯤 될 거라는 걸 짐작하게 되며 그 다리가 극락교임을 알게 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극락교 위쪽으로는 산 빛 가득 머금은 계곡 상류가 산 속으로 헤집어 들어가고 아래로는 수많은 잉어들이 유유자적 유영한다. 여느 절 고인 물에서 보아왔던 연못 속 잉어들과는 천양지차의 모습이다. 하기야 식수로 사용하여도 될 듯한 맑은 계곡 물에 살고 있으니 잉어에게는 이곳이 극락임이 틀림없다.

▲ 극락교를 건너 들어선 마당 좌측으론 흐른 듯 옆으로 넓게 퍼진 멋진 소나무를 제단처럼 갖고있는 응진전이 있다.ⓒ2004 임윤수

극락교를 지나면 우측으로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범종루가 있고 정면에 5층 석탑과 대광보전이 보인다. 대광보전 뒤로 우뚝 솟은 또 하나의 전각이 보이니 그곳이 바로 대웅보전이다. 마당 왼쪽엔 흐른 듯 옆으로 넓게 퍼진 멋진 소나무를 제단처럼 갖고 있는 응진전이 있다.

보물 802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광보전은 그 규모도 놀랍지만 기둥을 이루고 있는 아름드리 싸리나무가 눈길을 끈다. 싸리나무 기둥에서 세월이 보인다. 반들반들한 법당 마루에서 마곡사를 다녀간 불자들의 흔적과 정성이 느껴진다. 대광보전에는 다른 절들과 마찬가지로 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져있다.

대광보전 뒤로, 멀리에서 보면 지붕 하나 불쑥 솟은 전각이 있으니 바로 보물 제80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이다. 대광보전 우측으로 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건물규모에 비해 비좁은 뜰을 가진 2층 건물의 대웅보전이 있다.

▲ 선방으로 들어가는 골목과 담벼락에도 봄빛이 돌고 있다. ⓒ2004 임윤수

이런 형태의 중층 건물은 화엄사 각황전이나 멀지 않은 부여의 무량사 극락전, 금산사 미륵전 등과 함께 우리 나라에 몇 안 되는 구조로 내부는 모두 통층으로 뚫려 있다.

대웅보전 안에도 손때 묻어 윤기가 자르르한 네 개의 싸리나무 기둥이 있다. 사람이 죽어 염라대왕 앞에 가면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많이 돌았을수록 극락길이 가깝고 아예 돌지 않았다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둥을 붙들고 돌았기 때문에 생긴 사람들의 마음이 남긴 흔적이다.

대웅보전에서 내려다 보이는 여러 전각들의 흙 기와에서도 봄기운이 올라온다. 화사한 산 벚꽃과 노란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필 날이 멀지 않았건만 아직은 날씨가 싸늘하다.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에 실려온 마음 속 봄은 이미 저 말치 흘러갔건만 육신엔 춘설 두터운 한겨울이다.

▲ 사물이 걸려 있는 범종루는 여느 사찰의 범종각과는 달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 양식을 하고 있다. ⓒ2004 임윤수

오는 봄의 화사함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처럼 얻고자 하는 지혜를 시샘하는 것은 버리지 못하는 자신이 아닌가 모르겠다. 오는 봄날 하루쯤은 주인공이든 소품이든 봄 풍경화에 자신을 등장시키기 위해 봄 맛이 제격인 마곡사 계곡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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