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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최대의 격전지 강화 초지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뒤 강화에 요새 구축
2003년 12월 17일 (수) 00:00:00 양주승 기자 dong0114@netian.com

초지진은 신미양요 때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였는데 덕진진과 광성보가 함락당하고 어재연 장군 이 하 전수비군이 전사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 뒤 일본은 1875년 고의로 운양호 사건을 일으켜 결국 1876년 굴욕적인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다. 초지진은 그러한 수난을 통해 모두 허물어졌다. 1976년 간신히 남아있던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 위에 초지진의 초지돈을 복원하고 대포 1문을 포각 속에 전시했다.

이 돈대에는 3개소의 포좌가 있고 100여 개의 총좌가 있다. 높이가 4미터 정도에 긴 축이 100미터쯤 되는 타원형 돈대이다. 성과 돈대 옆의 소나무에는 당시의 전투를 말해 주는 포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 초지진전경
   
▲ 유명한초지진 소나무
   
▲ 초지진
   
▲ 초지진
   
▲ 초지진
   
▲ 초지진 성안에서 바라본 강화대교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국방을 튼튼히 하는 차원에서 강화에 천험한 요새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강화도 해변에 8개의 진을 설치한 것도 이러한 정책의 일부분이었다.

초지진에는 초지돈, 장자평돈, 섬암돈이 소속되어 있는데 이 돈대들은 숙종 5년(1679) 함경도, 강원 도, 황해도의 승군 8천 명과 어영군 4천 3백 명을 동원하여 40일 동안에 걸쳐 49개의 돈대룰 축성할 때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 9개의 포대도 축조되었는데 초지진 남쪽 진남포대에는 대포 12문이 설치되었고, 초지진 앞의 대황산 황산포대에도 대포 6문이 설치되었다  
강화도 가는길  설명 사이트 :  http://ganghwado.com/Gyo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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