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올 때까지는 (안도현 詩)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 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 청년운동가들의 만남과 설램
 
"새벽 5시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선잠을 깬 후, 궂은 날씨에 혹시라도 여행을 포기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걱정했던 마음은 서울역 대합실에 한분씩 들어오시는 선후배님들의 모습에서 털어 버릴 수 있었습니다."

청년시민운동가가 생각하는 시민사회미래, '2030, 2004 봄을 기다리다'라는 프로그램 실무를 담당한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송성수 간사의 말이다. 

 지난 21일 아침 8시 40분.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움직이기에는 다소 이른감 있는 시간이다. 덜 마른 하품을 입에 물고도 하나둘씩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여든다. 대합실에서 20여명의 활동가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사람들도 함께 했다. 
 

# 그들만의 수다
 
고속철에 앉아 경실련 활동가들이 가방에서 간식거리를 쏟아낸다. 나눔과 연대정신이 투철한 시민단체활동가들답게 역시 과자하나라도 나눠먹는다.

"학창시절 봄 소풍 전날 같더라구요. 아침에 일어나서 비가 와서, 혹시 오늘 일정이 취소되는 것 아닌가하고 걱정도 했어요" 조정은 한국여성재단 간사의 말이다.

봄소풍과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는 이수현 한국여성재단 간사는 시민단체활동가들에게 봄이 왔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고속철 안에는 이 모든 것을 기록하려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구본회 시민방송 미디어팀장과 시민방송 수첩을 나눠주면서 시민운동가들과 인사를 나누는 민경서 시민방송 시민제작지원센터 팀장도 함께 했다.

고속철이 시범 운행 중이라 홍익회 아저씨의 주점부리를 파는 수레 소리는 없다. 간사들은 집에 두고 온 간식거리를 못내 아쉬워한다. 대전 역에서 대전경실련, 대전의제21 활동가들이 대거 합류한다. 대구에 도착한 활동가들은 142년이나 된 대구토종음식인 '따로국밥'으로 시장기를 달랬다.
 
# 대구지역운동에서 배우다

대구지하철 1주년을 즈음해 대구지하철 참사 현장에 도착했다. 지난 18일 헌화대가 설치되었다가 유족들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현장을 시민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구시 측은 시민단체활동가 몇 명에게만 잠깐 참사 현장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김원숙 대전 경실련 간사의 아들인 이범원 군(대전 산성초교 6학년)은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요.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바로 옆에는 천막농성장이 있다. 영남자연생태보존회의 정제영 총무이사(49세)는 지난 2월 2일부터 단식투쟁중이다. 대구시가 상인들의 임대료(190억원)만으로 충당되고도 남는 단순한 내장공사(109억)에 35년간 발생할 450억원 이상의 조세이익을 특정기업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상인들과 경실련을 비롯한 16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하상가 내장공사를 민간투자사업 방식으로 시행하는 것은 실정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소상인들의 과중한 임대료 부담을 통해 민간투자사업 시행기업에게 지나친 이익을 보장하는 등 정책 타당성이 결여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담장 허물기 운동과 '마을공동체운동'을 펼친 대구YMCA 김경민 관장이 일행을 안내했다. 대구 도심에서 담장을 허물면 도둑은 어떻게 하지? 오히려 답변은 그 반대였다. 담장을 허니까 도둑이 더 안 든다고 한다. 왜냐하면 도둑들의 움직임을 담장이 없으니까 주민들이 더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기막힌 발상의 전환이다.

97년 대구YMCA에서 가출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용했던 김경민 관장은 그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대구Y 형편상, 대구시 지원도 어려워 가출청소년을 위한 쉼터는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월급날 술 한잔 먹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적당한 장소에 보증금 2천만원 월 30만원 계약을 술김에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청소년 평화마을'의 시작이란다.

"처음에는 운영도 쉽지 않았어요. 배꼽티를 입고 담배를 피는 가출청소년들의 모양새는 마을 주민들을 불편하게 했지요.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아이들 교육적인 문제가 있다면서 나가라고 하더라구요"
'쉼터'운영이 쉽지 않아서, 결국은 마을전체를 위한 프로그램을 확대시키기로 방향전환을 했다. "도시공간은 원자화·개별화돼서 최소한 소통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담을 헐고 마을주민들에게 개방을 하기로 했죠" 대구사랑시민회와 대구YMCA가 공동으로 진행한 '담장허물기'운동은 민관이 함께 참여해 지금까지 11 km를 헐었다.

대구YMCA의 '녹색가게'를 운영했던 김 관장은 녹색가게를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으로 만들고 싶었다. '마고제'로 불리는 이곳에는 전통 한옥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바로 옆에는 '빗살 미술관'도 있다. 그는 마당에 항아리로 '울림터'(일명 스피커)를 만들기도 했다. 재미난 것은 항아리 울림터는 록이나 메탈은 제대로 울리지 않는데 클래식이나 국악만 제대로 울린다는 점이다. "생활 공간 안에서 생활 속의 예술을 느끼고 싶었어요. 흙을 통해서 소리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녹색가게는 하루 3천원에서 5천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엄청나게 많은 수입이 있을 때는 1만5천원정도가 있다. 하지만 그 돈을 모으면 한 달에 한번 마을잔치 비용으로 넉넉하다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보고 싶었어요. 도시화를 통해서 공동체적 문화가 없어지는데, 100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마을사람들간 소통을 하고 싶었어요"

현재 마을만들기 운동은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전주 교동, 서울 종로 북촌 한옥마을, 서울 홍대 클럽데이, 매향리 민속마을, 부산 금생마을...
전통적 가옥이나 건축이 바로 지구를 위한 예술이란다.

'마고제' 한옥에는 곳곳에 '잉어등'도 있다. '잉어등'은 입시생이 있거나 주의를 요한다는 의미를 '기호화'했다고.

김 관장은 시민운동의 미래는 바로 지역생활공동체운동이라고. 그것이 자신의 삶, 공간을 행복하게 구성한다고 설명한다.

송성수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간사는 "마고제는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내는 물리적 공간의 개념을 넘어 서로 어깨 걸고 기울이는 한잔 술에 보다 살기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건전한 생활 공동체만 복원할 수 있다면 잔치와도 같은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