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가 되면 남성이 살판납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선정한 제 16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최재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의 말이다. 남성자연과학자가 여성운동상을 받게 된 것은 이례적이다.

그는 '공생설'이라고 부른 진화생물학 이론을 통해 인간 세계에만 존재하는 부계혈통주의인 호주제의 생물학적 모순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또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의 요청에 따라 '호주제의 근간이 되는 부계혈통주의에 대한 과학자의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사이버 테러를 비롯, 욕설과 협박 전화, 편지 등에 시달렸다. 그는 그 과정에서 욕설의 유형을 발견했다고.

"젊은 사람들은 사이버테러에서 갖은 욕설이나 무차별적으로 험한 말을 많이합니다. 하지만 유림들은 예의 있게 비판하시죠. 유림들은 남자가 세상의 중심인 것이 '진리'이며, 여성이 가정을 지키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고 얘기하시죠"

최 교수는 그런 유림들에 대해 과학자로서 '진리'라는 말은 사용하기 쉽지 않고, 또 '자연의 섭리'는 20 여 년 동안 자연과학을 연구한 자신이 더 전문가로 말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뭔가 부족한 듯해 자신이 쓴 책을 직접 저자 사인을 해서 우편으로 보내는 친절함까지 발휘한다. 
 

"여성시대가 되면 남성이 살 판 납니다. 하지만 남성들이 마음을 빨리 열지 않아 여성시대에 맞지 않게 생활하고 사고하면 우울증에 걸린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어쩌면 여성들도 은근히 남성위주의 세계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그런 여성들도 빨리 자신의 삶을 개척해 여성시대에 걸맞게 변화해야합니다"

기존 사회생물학분야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이 우월하기 때문에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옹호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학문분야로 이해돼 여성주의자들한테 공격의 화살이 쏟아졌다.

하지만 최 교수는 기존의 사회생물학자들과는 다른 연구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대표적인 사회생물학자의 저서로 국내에 번역돼 소개된 '일부일처체의신화'(데이비드 P. 버래쉬, 주디스 이브 립턴 지음) 역시 비판을 가한다.

얼핏 보면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가족해체'를 주장하는 것을 뒷받침하는 저서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동물세계에서 수컷이 바람피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을 펴 남성의 외도를 합리화시킨다는 것. 

하지만 최 교수 역시 그런 여성주의적 철학을 바탕으로 실천을 하게 된 계기는 결혼 이후다.
 울산대 음대 교수인 부인과 지난한 '논쟁의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이라고. "이웃 사람들은 우리 부부가 싸우는 것 아니냐고 걱정을 가끔합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에 대해 아내 역시 학자이다보니까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저 역시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합니다"

부부 관계, 자녀교육, 집안일 등 그들의 '논쟁의 역사'는 미국 유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는 자녀 4명을 낳고 싶었어요. 하지만 공부하는 아내는 자녀 하나를 낳는 것도 벅차다며 결국 한 명을 낳는 것으로 타협했죠"

최 교수는 설거지를 비롯한 가사 일을 결혼초기부터 지금까지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가 가사 일을 부인보다 더 잘하는데 그 속에는 사연이 있다.

"결혼 초에는 가사일이 아내 일인데, 내가 이렇게 많이 도와주고 있으니까, 그 반대급부로 아내한테 요구하는 것이 생기더라구요. 시간이 지날수록 가사일이 아내일이 아니라 우리일, 나의 일이라고 생각이 자연스럽게 하면서부터 오히려 아내가 설거지한 것을 제가 다시 꼼꼼하게 다시하게 되더라구요"
 

최 교수는 가족 내 성평등한 아버지로서, 학교에서는 양성평등한 교수로서, 실천적인 자연과학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여성친화적인 남성 역할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은 셈이다.
 
한편 시상식은 96주기 38세계여성의날 행사날인 오는 3월 7일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