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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에 비가 내리면......
향적봉에서의 하산 7.29
2004년 03월 03일 (수) 00:00:00 차은량 cel305@dreamwiz.com

   
좁고 밀폐된 공간 안에서
더딘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 일찌감치 짐을 꾸려 산장 밖으로 나왔다.
나그네의 절박한 심사에 아랑곳없이 덕유산은 여전히 두터운 안개 속에 울고 있었다.
원래 예정된 구간은 이대로 남덕유에 이르는 장장 17. 5km 능선을 타고 동엽령으로 무룡산으로 해서 삿갓봉 산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몇몇 대원들은 우중산행을 주장했으나 회의를 거쳐 결정된 사항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 ⓒ2003 차은량

 덕유산은 아름다웠다.
비오는 산이 아름다웠고 비오는 산의 아침은 더욱 아름다웠다.
눈에 보이는 것의 아름다움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 사이엔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차이가 숨어있나 보다.

더 이상 깊어질래야 깊어질 수 없는 여름의 끝, 바다처럼 드넓고 수천 수만의 달리는 말 같은 기상을 가진 덕유산도 보내야 하는 계절이 서러웠을까.
산은 좀처럼 눈물을 거두지 않았다. 무주리조트로 걸어서 내려오는 길,
그 길에서 치유될 수 없는 덕유산의 깊은 슬픔을 만나고 말았다.

정상에서부터 산 아래까지 무참히 할퀴어 놓은 스키장의 슬로프를 따라 산을 내려오는 동안 내내 귓전을 울리던 계곡의 급한 물소리가 내 귀에 덕유산의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로 들렸다.
산을 파헤쳐 만든 슬로프 갓길에 피어있는 야생화의 빛깔은 빗속에 처연했고 그 위로 바다 같은 안개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떠다녔다.

삐죽삐죽한 돌이 박힌 채 단단히 다져진 굵은 모랫길을 걷는 등산화 속의 발은 심한 마찰로 인해 물집이 잡혔고 무릎에선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나라 백두대간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떼를 지어 산등성이를 걷는 일도 산은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급히 속삭였다. 내가 오지 않았으면 네가 이렇게 아픈 걸 어찌 알았겠니….

무주리조트는 눈부신 햇살이 따가운데 멀리 보이는 준봉들은 아직 검은 비안개 속에 갇혀있다.
하루 일정의 취소로 육십령에 야영지를 정한 보급대 수송차량이 올 때까지 땡볕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다.
여자대원들은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기도 하고 몇몇이 모여 앉아 공기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카메라를 들고 화상을 되돌려보고 있던 렘도 지루했는지 다시 옆에서 보챘다.
한 번만 약한 모습 좀 보여달라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앉아있던 자리에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주었다. 그랬으면 예쁘게나 좀 찍어주지.

한참을 그렇게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경노당(40대 이상) 대원들은 먼저 이동하라는 진행팀의 명령이 떨어져 어젯밤 임꺽정이 타고 온 승용차를 타고 육십령을 향해 먼저 출발하였다.
밥도 제대로 못해먹고 다니는 진행팀의 몸보신을 시켜주자는 이화백님의 제안으로 육십령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장계 장터에 들러 추어탕의 재료를 사고 장거리 옆 손짜장집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진짜 맛있는 손짜장을 먹었다.

아마 그 집이 우리나라에서 손짜장을 제일 맛있게 하는 집이었을 것이다.
경노당대원들 중 동승하지 못한 대원들 몫의 짜장을 사 들고 육십령으로 향했다.
전해오는 말에 이 일대 무주, 진안, 장수를 일컬어 '무진장'이라고 했듯이 너른 들의 논밭은 기름져 보였고 그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곳곳에 보였다.

육십령은 영남선비들의 본 고장인 함양과 전라도의 오지인 장수를 이어주는 덕유산 남쪽에 있는 고개이다.
이 고개를 육십령이라 전하는 말 중에 옛날에 이 고개에 산적들이 많아서 함부로 넘나들지 못했단다.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산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어가며 육십 명의 장정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떼를 지어 넘어야 했다고 한다.

그때의 주막이야 아니겠지만 육십령 야영지 옆에는 그럴듯한 주막이 한 채 있고 지나는 차량들이 많이 쉬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독한 재래식화장실 냄새를 맡아가며 오랜만에 수도가 있는 화장실에서 샤워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하였다.

그리고 모처럼 한가롭게 텐트 안에 누워 이틀 후 전체토의 시간에 분과별로 발표할 백두대간 노래로 혜은이의 '열정'을 개사하고 집체극 각본을 썼다.
옆에 있던 렘이 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개사를 할 때엔 가만있더니 집체극의 등장인물을 선정하는데 브레이크를 걸었다.

야생화를 찍는 사진작가 역을 해 달라고 하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자기는 숲의 정령을 하고 싶단다.
이런, 작년엔 뜬금 없이 상미가 하늘말나리 역을 하겠다고 해서 기껏 머리를 짜내 쓴 각본을 다시 썼는데 이번엔 나의 친구가 또 내 속을 썩이는 것이다.
좋아, 그럼 성님은 내 덕에 숲의 정령 하는 거다. 렘과 나는 개사한 노래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열정

안개 속에서 나는 걸었어
백-두 대간 힘차게 걸었어

사랑하고 싶어서 그를 알고 싶어서
폼 잡기 위해서 해보는게 아니야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는게 아니야
할 일이 없어서 이러는게 아니야(↗)
가슴 터질 듯 열망하는 환경
사랑 때문에 목숨거는 탐사
사랑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백두대간 향한 사랑 아∼
바람 속에서 나는 걸었어
백-두 대간 힘차게 걸었어
사랑하고 싶어서
지- 키고 싶어서

 이틀 밤 자고 나서 이 노래로 스타가 되면 어떡하나 걱정이다 .

대낮 같은 시간에 저녁을 해 먹고 전체토의시간을 가졌다.
각 분과별로, 산을 내려오며 관찰, 조사한 내용을 발표하고 '개발이냐 파괴냐'하는 문제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 ⓒ2003 차은량

당장에 눈앞의 이익을 위해 무분별 훼손한 자연으로 인해 우리는 다함께 생명을 단축해 나갈 것이다.
개발론자가 내세우는 이론과 생태론자가 내세우는 이론을 두고 옳다 그르다를 나눌 순 없다.
그 나름대로의 정당한 이유는 분명 있다. 무주리조트로 걸어 내려오며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한 관광용 케이블카나 스키장의 곤돌라가 그 예가 되었다.

한 대원은 '우리가 이렇게 대간 탐사를 하며 아름다운 산을 걷고 볼 수 있는 것도 모두 건강한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장애인에게도 이 나라의 아름다운 산하를 보고 느낄 권리가 있다.
그런 사람들에겐 케이블카나 곤돌라의 설치가 무엇보다 반가운 일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또 한 대원은 '개발론자들이 결코 장애인을 배려해서 그런 시설물을 만드는 것이 아닌 것에 문제가 있다'라는 말로 반박을 했다.

그때 누군가가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론을 예를 들며
이제까지의 자연환경 보전 방침은 대대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반론을 제시했다.
토론의 열기는 뜨거웠다.
사회자가 중간에 제지하지 않았으면 아마 밤을 지새워도 모자랐을 것이다.

토론의 시간이 끝나고 풀잎으로 여치를 만드는 시간 또한 진지했다.
세대와 성별의 차에 상관없이 하나같이 동심으로 돌아가 풀잎을 접으며 몰두하는 모습들이 덕유산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또 하루 산중의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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