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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용머리 해안에서 다시보는 하멜상선
17세기 네덜란드 ‘바타비아호’로 재현된 하멜표류기
2004년 02월 27일 (금) 00:00:00 양주승 기자 dong0114@netian.com

   
▲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용머리 해안가에 전시된 하멜상선 전면.ⓒ부천타임즈 양주승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 꼬레아를 서양에 처음으로 알린 ‘하멜표류기’의 저자 헨드릭 하멜 일행이 타고왔던 ‘바타비아호’를 모델로 재현되어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용머리 해안가 자리잡고 있다.

길이 36m, 폭 8m, 높이 11m(돛대높이 32m)인 하멜 상선은 5층 구조이며, 2층에는 하멜 관련자료와 하멜표류 영상, 조선에서 13년간 생활 모습 등을 보여주는 하멜전시실이 꾸며졌다 

1653년 효종4년부터 1666년 현종 7년까지 14년간 조선에 억류된 하멜은 네달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 ‘스페르타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도중 1653년 8월 16일 새벽 1시 풍랑을 만나 제주 대정현 지역에 표착하였다,

   

▲ 하멜초상 ⓒ부천타임즈 양주승

   
▲ 제주도에 난파한 스페르웨르호 ⓒ 부천타임즈 양주승

1653년 8월 16일 하멜과 일행 64명을 태우고 타이완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범선 스페르웨르호가 풍랑을 만나 난파, 제주도에 표류하게 된다.
이때 일행 64명중 28명이 사망하고 36명만 살아남는다. 이들은 이때부터 낯선 조선 땅에서 무려 13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 하멜상선 후면 ⓒ부천타임즈 양주승

1653년 8월 21일 제주 관헌들은 하멜일행이 보는 앞에서 난파된 스페르웨르호의 물건을 훔친 조선사람에 대한 형벌을 집행한다. 관헌들은 하멜 일행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병사들을 배치시켜 이들을보호하였다. 다음날 하멜 일행을 제주 목관으로 이동, 제주 목사 이원진을 대면하게 되었으며 그는 광해군이 유배되었던 집에 하멜 일행의 거처를 마련해준다 

   
▲ 난파선 도둑에 대한 체벌 ⓒ 부천타임즈 양주승

1654년 5월 하멜 일행중 6명이 어선을 훔쳐 탈출을 시도 하지만 관헌들에 붙들려 실패하고 만다. 무모했던 첫탈출 시도는 수포로 돌아 가 버리고 이때부터 하멜 일행에 대한 제주 관헌들의 감시가 심해진다.
탈출을 시도했던 6명은 형벌로 곤장 25대씩을 맞았으며, 그중 한명은 후유증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1654년 6월 하멜 일행은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현종을 알현하기 위해 서울(한양)로 이송된다. 일행은 4척의 배에 태워졌고 두다리와 한쪽 팔은 배에 묶여 갔다고 한다.
이는 하멜 일행이 배를 탈취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는데, 훗날 하멜은 보고서에서 실제로 묶이지만 않았더라면 그러했을 것이라고 서술하였다.

   
▲ 효종 임금을 알현하는 하멜 일행 ⓒ 부천타임즈 양주승

1654년 6월26일 하멜일행은 한양(서울)로 압송되어와 조선의 국왕 효종을 알현한다,
이들은 일본으로 보내줄것을 간청했지만 효종은 당시 추진중이던 북벌계획에 대한 보안문제와 일본에서 불고있던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염려해 "외국인은 국외로 보내는 것은 이 나라의 관습이 아니므로 여기서 살아야 하며 대신 조선이 너희들을 부양해 주겠다고" 답했다,

1666년 9월 하멜은 야음을 타서 읍성(邑城)을 탈출, 해변에 있는 배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도망하여 1668년 7월, 꿈에 그리던 고국 네덜란드로 귀국하였다,

하멜이 표류해왔을 때 조선 관리들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을까. 통역자로 2년간 같이 지내며 그에게 조선의 말과 풍속을 가르쳐준 사람은 박연(朴淵.1595-?)이었다.
역시 네덜란드 출신인 그는 하멜보다 앞서 1628년에 일본으로 가던 중 제주에 표착했다가 귀화해 조선 여자와 결혼, 남매를 두면서 완전히 이 땅에 정착했다. 박연의 네덜란드 이름은 벨테브레였다. 박연이 조선 땅에서 수행한 공로는 매우 크다.

   
▲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상징하는 깃발 ⓒ 부천타임즈 양주승

훈련도감에서 근무한 박연은 병자호란 때 출전하는가 하면 명나라에서 밀수입한 홍이포의 제작법과 조작법을 가르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당시 효종은 북벌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장수 이완에게 실무책임을 맡겼고, 박연으로 하여금 그를 보조하게 했다

본인의 뜻과 관계없이 그의 제주 표착은 조선을 세계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억류생활 14년간의 기록인 '하멜 표류기'는 조선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교육, 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었다. 조선을 서양에 데뷔시킨 홍보대사역을 수행한 셈이다.

   
▲ 하멜상선.ⓒ부천타임즈 양주승

하멜의 조선 표착에서 탈출까지의 연도별 기록  
 ▒ 1653년 8월 16일 제주 표착
▒ 1653년 8월 21일 대정현 관아로 이송
▒ 1653년 8월 22일 제주목 관아로 이송
▒ 1653년 10월29일박연(벨테브레)와 면담
▒ 1654년 6월초 선박이용 제주항 출발
▒ 1654년 6월26일 한양도착
▒ 1656년 3월초 전라병영(강진)으로 이송
▒ 1663년 2월 생존자 22명을 여수.남원,순천으로 분산
▒ 1666년 9월3일 탈출.9월13일 일본 나카사키 도착
▒ 1667년 12월18일 나카사키 출발
▒ 1668년 7월 20일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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