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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예인의 누드가 예술이 될 수 없는 이유
에곤 실레와 이승연... 예술과 외설 사이
2004년 02월 27일 (금)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오마이뉴스: 홍성식 기자

   

기자가 '여성의 몸'에 대해 눈뜨던 시기인 1980년대 중반.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하며 세간을 들썩이게 만든 시리즈 영화 <애마부인>의 주연을 맡은 한 여배우는 "외설과 예술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한 잡지사의 질문에 "내가 벗으면 예술이고 다른 여배우가 벗으면 외설이다"라는 기막히고(?) 철없는 대답을 내놓음으로써 세상을 웃겼다.

감독의 단골 술집에서 영화의 여성주연을 발탁하는 게 이상한 일이 될 수 없었던 당시는 '돌고래'와 '가슴 큰 여배우'의 아이큐를 비교하는 우스개가 일상적으로 오가던 시기.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가 벗으면 예술, 네가 벗으면 외설?

   

남녀를 불문하고 연예인들의 학력과 지적수준은 8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향상됐다. 텔레비전 토크쇼 프로그램에 등장한 어떤 여배우는 짐짓 도통한 사상가나 일찍이 세상사 이치에 눈뜬 해박한 철학자의 흉내까지 내는 세상이 온 것이다

한창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그들이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고, 이미 당당한 직업의 하나로 자리한 '연예인'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나름의 공부에 게으르지 않으려는 그들의 태도는 백번 바람직하다.

하지만 몸을 밑천 삼아 그 밑천이 거덜나기 전에 '한몫' 잡으려는 태도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 달라진 게 있다면 속이 뻔히 보이는 이 장사의 방법을 고급스럽게 위장하는 상술이 괄목상대(刮目相對)했다는 정도가 아닐까.

지난해부터 시작된 한국 여배우들의 '누드열풍'은 변하지 않은 그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의 하나로 거론될 만하다. 이제 하나의 '문화트렌드'로까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여배우들의 누드.

'젊은 시절 예쁜 내 몸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그들의 자유의지를 책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또한 여체가 가진 예술성이 극대화된 시점에서 '예술로서의 누드'를 찍겠다는 그들의 가상한(?) 열정을 탓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이윤이 남는다면 아버지 무덤도 파헤치는 천민자본주의의 한국사회에서,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정치권에 수백억원의 돈을 트럭에 실어 갖다바치는 비윤리적인 기업가들이 지천인 세상에서, 여배우들이 누드촬영으로 돈을 번다고 그 행위만을 특정해 '상도의商道義)를 벗어난 비도적인 일'이라고 지탄할 수도 없는 일이다.

국제적 망신에 이어 남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기도

그러나 그러함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그 '문제'란 다름 아닌 누드를 찍는 여배우들이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인식 속에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누군가의 상처를 이용해도 된다'는 파렴치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 영화로 그 활동영역을 넓힌 한 여배우는 지난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 대낮에 알몸으로 사진을 찍다가 스태프과 함께 경찰에 연행당하는 창피를 겪었다. 이처럼 웃지 못할 국제적 망신뿐인가.

우리는 지난해와 올 초 내내 스포츠신문 등을 통해 "어느 연예인이 누드사기를 당했다"느니, "몇십 억의 수익을 예상했는데 제작사의 농간으로 누드를 찍고도 쪽박을 찼다"는 둥의 알맹이 없는 기사를 지겹도록 봐야만 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설왕설래와 잇단 논란으로 이어지던 여배우들의 누드촬영이 결정타를 맞은 건 이달 초 발생한 언필칭 '이승연 사태'다. 그는 남태평양 어느 섬에서 이른바 '위안부 컨셉트'로 누드를 찍었고, 그것이 문제가 돼 인생 최고의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일본군의 강제에 의해 열일곱 덜 여문 몸을 능욕당해야 했던 아픈 역사의 희생자들이 버젓이 눈을 뜨고 살아있는 마당에, 팔십 노인들의 가슴 속 생채기에 소금을 뿌려대면서도 어처구니없이 당당했던 이승연의 태도나, 자신의 벌거숭이 몸뚱이가 "한일관계를 재조명하는 길을 열 것"이라는 삼척동자도 콧방귀를 뀔 그녀의 턱없는 이야기 앞에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저 정도면 국가대표급이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혹자는 쓴웃음과 실소을 머금었다.

'이승연 누드 촬영사건'을 비롯한 여배우들의 누드열풍을 지켜보며 기자는 자연스레 요절한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Egon Schiele·1890~1918)의 '누드화(畵)'를 떠올렸다. 동시에 다가온 의문 하나. "한국 여배우의 누드와 실레의 누드는 뭐가 다를까?"

고민 끝에 기자가 내린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여배우와 실레의 누드를 변별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다름 아닌 '진실'과 '상업성'의 유무였던 것이다. 그 키워드는 또한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는 잣대로도 역할이 가능할 터.

실레의 누드는 자신이 살았던 도시 빈의 타락에 대응하는 자학의 몸부림이자, 환락에 대한 의도적 거부라는 '진실'을 담고 있다. 반면 여배우들의 누드 대부분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성적방종과 비틀린 관음증을 부추기는 저질 상업사진임이 자명함에도, 스스로는 그것들을 '외설이 아닌 예술'로 과대포장하고 있다는 것.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알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아픈 역사를 다독이는 수단이라고 미화하는 오만의 극치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엄연하다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책장에 놓인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다빈치), <에곤 실레>(시공사), <에곤 실레:에로티시즘과 선 그리고, 비틀림의 미학>(재원)을 다시 펼친다.

앙상하고 뒤틀린 여윈 몸들이 벌거벗은 채 멍한 눈을 치뜨고 있다.그것들이 마치 살아 생전 자신의 그림 한 점 제대로 팔아본 적 없는 불행하고 가난했던 예술가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기자까지 서글퍼진다. 그러나 그 서글픔은 벌거숭이 한국의 여배우들을 봐야하는 아픔과 절망감과는 전혀 다른 어떤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예술'이라는 불변의 가치가 버티고 있다.

그렇기에 외설을 예술이라 강짜 놓는, 혹은 이승연과 같이 남의 상처마저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여배우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연예인도"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으리라. 단언컨대 그 목적이 상업성에 있는 여배우의 벗은 몸은 예술이 될 수 없다. 그건 분명 외설이다.

왜냐, 그들의 누드에는 예술완성의 요건이라 할 철저한 자기반성과 고민의 시간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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