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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휴먼스테인
[정용인의 시네프리뷰] 다시 문제는 개인이다
2004년 02월 24일 (화) 00:00:00 시민의신문 ngotimes@ngotimes.net

한 때의 헤프닝일까.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이승연 누드’ 파문은 애초 어설프게 반일감정에 기댔다가-기획사와 이씨 측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폭탄 맞은 기획사 측이, 필름과 동영상 원본을 태우면서 일단락되는 듯싶다. (하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당나귀 등 P2P프로그램엔 ‘이승연 어쩌구’로 위장된 파일들이 수백 조각으로 나뉘어 여러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왜 이 시점에 코드명J의 네트 속에 살고 있는 파머콤 창립자 아줌마나 ‘네트는 광대하다’는 공각기동대의 언명이 생각나는 걸까)

   
▲ 영화 휴먼스테인은 얼핏 미국의 소수민족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에
대한 역차별론을 주장하는 것 같지만 집단적 정체성에 의해 희생 되는
개인의 가치를 주장한다 <정용인 기자 사진제공=영화인>
사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과오를 범한다. 이씨나 기획사 측이 범한 과오란, 역사의 민감한 문제를 건들면서 최소한의 성의있는 조사 조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3년동안 열려온 정대협 집회 한번 참여하지 않고도,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일본군성노예 문제를 주제화하겠다는 안이한 발상이 애당초 문제였던 것이다.

영화 ‘휴먼스테인’은 좀더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고전철학 교수이자 대학 학장인 콜만(안소니 홉킨스 분)은 몇 달째 출석을 하지 않고 있는 남녀 학생들을 두고 “이 학생들은 스푸키(유령)인가”라고 농담을 한다. 그런데 출석을 안 한 두 남녀는 공교롭게도 흑인이었고, 스푸키라는 단어에는 ‘깜뚱이’라는 경멸적인 속어의 뜻이 있었다.(나도 이 영화에서 스푸키에 그런 뜻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대학에서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그는 해직당하고, 그 충격으로 아내는 색전증을 일으켜 죽는다. 콜만의 표현대로, ‘과잉된 정치적 올바름’에 희생된 것이다. 그의 친구이자, 그가 얽힌 사건의 관찰자인 소설가 네이던(게리 시니즈 분)은 그가 더욱 억울할 개인사적 이유를 알게 되고, 그가 결코 완성시키지 못할 그의 개인사에 대해 책을 출간한다.

얼핏, 미국의 소수민족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에 대한 역차별론을 영화는 주장하는 것같지만(생각해보니 앞에 인용할만한 이야기는 요새 참여연대ㆍ경실련과 여성계가 ‘역차별’ 논란을 벌이고 있는 ‘광역여성전용선거구제’가 적당했을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의 콜만(웬트 윈스밀러 분)이 언급하는 것과 같이, “흑인ㆍ백인을 떠나 ‘개인’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던지고 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테러시대 이전 누구나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오럴섹스 스캔들을 입에 올리던 시기’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부적절한 관계’는 다시 세인이 콜만과 정신병력이 있으며, 아이 둘을 화재로 잃은 연하의 연인 퍼니아(니콜 키드먼 분, 그는 백치미에다 복합적인 캐릭터의 소유자인 퍼니아 역을 훌륭히 해내었다)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유비된다.

퍼니아를 진실로 사랑하게 된 콜만은 그러한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지만, 그들 사이에는 오늘날 미국사회를 비판하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전직 학장인 그가 공통된 대화의 소재를 찾기 위해 꺼낸 ‘르윈스키 이야기’는 퍼니아를 폭발하게 한다. 언젠가의 평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사랑은 용기다. 콜만은 전 부인에게도 끝내 말하지 못했던 개인사적 비밀을 그녀에게 털어놓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그들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래도 영화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의 커플들에 비해선 건전하다) 그들의 죽음은 장례식장에서 그가 쫒겨날 때 아무것도 못했던 이들의 회개를 끌어내지만, 그의 억울함을 입증할 개인사적 비밀이란, 사건의 관찰자인 숲 속의 친구 네이던이 책을 발간할 시점까지 은폐되어 있을 것이다.

영화는 여러모로 낙태문제를 둘러싼 미국사회의 옹호론과 폐지론 논쟁을 다룬 사일런트 빅팀(1993)과 이전에 다룬 바 있는 사형제 폐지 논란을 다룬 데이빗게일(2002)와 같은 논쟁적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미국영화들이 다루는 소재의 풍부함이 일견 부럽기도 하지만 인종문제에 비견되는 우리사회의 문제가 없지 않다. ‘실미도 사건’도 영화화되었는데 8,90년대 많은 상처를 남겼고, 여전히 세인의 무의식 아래 잠복하고 있으며 미시적 개개인사에 깊은 앙금을 남기고 있을 ‘지역감정 문제’를 다루는 한국영화도 한 편 쯤은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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