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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르지 않는 압해도의 2월
[포토에세이] 대지에 순명하는 삶이 좋은 것 아닌가요
2004년 02월 19일 (목)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 봄술에 취한 듯한 바람은 바다를 잠자게 하고, 청둥오리에게도 낮잠의 여유를 줍니다.
ⓒ2004 오마이뉴스 안현주
형, 겨울새인 청둥오리는 아직 섬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따스운 바람은 청둥오리 몇 마리를 바다 위에 재우다 바지락을 캐러 갯벌에 나가는 여인들의 거친 볼을 애무하기도 하고요. 아마도 바람은 봄술에 기분 좋게 취했나 봅니다.

자연의 풍광도, 인간의 노동도 애마르지 않는 압해도의 2월. 일초가 아까워 사납게 버둥거렸던 도시의 사람살이는 압해도에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일원 한 푼 손해보기 싫어 벗의 시린 가슴을 내치는 도시의 경쟁은 압해도에서 무참할 뿐입니다.

   
▲ 안씨 아저씨는 김 한번도 거두지 못하고 양식김발을 뭍에 내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아저씬 사람좋게 웃기만 합니다.
ⓒ2004 오마이뉴스 안현주
형, 천성육(55)씨는 아내와 함께 양식김발을 거둬 뭍에 내리고 있더군요. 잘하면 1년에 1500만원 벌이도 할 수 있는 발에서 김을 한번도 뜯어보지 못했답니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천씨 아저씨는 사람 좋게 웃기만 해 가슴을 더 아리게 합디다.

"요번 겨울은 날씨도 안따뜻했는데 김에 병이 들어버렸어요. 다 배레부렀어요(망쳐버렸어요). 김 포자값만 해도 500~600만원은 손해봤지라. 어쩌것습니까, 내년을 기약해야제. 인자 낙지 파서 비료 사고 생활비하고 해야죠."

양식김발 여기저기에 사들하게 붙어있는 병든 김은 아저씨의 타는 속과 함께 햇볕에 썩어갈 테죠. 병든 김이 다 썩어 말라버린 후 아저씨는 김발을 툴툴 털어내고 다시 발을 갯벌에 세울 것이구요. 희망의 꽃은 폐허 속에서 핀다 했던가요. 그 말이 참혹하게 들려옵니다.

   
▲ 압해도 아주머니 네 분이 굴을 따기 위해 물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004 오마이뉴스 안현주
천씨 아저씨가 양식김발을 거둬내리는 옆자리에서 아주머니 네 분이 물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지락과 굴을 따러 가는 길이랍니다. 아주머니들은 조쇠(굴 등 조개를 따는 도구)와 바구니를 들고 "석화(굴) 두 관(1관에 3.75kg)만 따믄 좋것다"고 수줍게 소망합니다.

아주머니들은 "자식들도 모두 장성해 특별히 돈 들어갈 데 없다"고 하네요. 근데도 갯일을 나가는 까닭을 물었더니 "놀믄 뭐한다요?" 하십니다.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명쾌하고 현명한 답이죠.

맞아요, 일과 노동은 어떤 대가를 전제하기 전에 이미 우리 인간의 생존방식이니까요. 진리란 이렇듯 삶의 한가운데서 단순하고 명쾌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 장어 치어를 잡던 바지선이 폐선이 되어 누워 있습니다.
ⓒ2004 오마이뉴스 안현주
   
▲ 봄 배추를 출하도 못하고 밭에서 썩히고 있습니다. 시세가 안맞아서입니다. 멀리 보이는 건 청동기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선돌입니다.
ⓒ2004 오마이뉴스 안현주
형, 갯가를 벗어나 섬의 안으로 들어갑니다. 다 자란 봄 배추가 출하도 하지 못한 채 밭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세가 너무 없어서입니다. 저 배추가 다 자라는 동안 농부가 대지에 쏟았을 땀과 정성을 셈한다는 것은 모욕이겠죠.

사막한 기가 조금만 있었더라도 농부는 봄 배추를 심지 않았을 겝니다. 사분사분한 농부의 마음씨는 대지의 숨결을 외면할 수 없었을 테구요. 씨앗을 품어 싹을 틔우고 줄기를 세워야만 숨을 쉬는 어머니의 땅. 누렇게 타들어가는 봄 배추 마냥 새까맣게 속을 태우고도 농부는 하늘 향해 '허허' 하고 한번 웃고 말았을 것을 생각하니 내가 다 속이 뒤집어집니다.

형, 대지에 순명(順命)하고 사는 이들이 복 받는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 아니던가요. 그들의 사분사분한 마음에 꽃눈처럼 예쁜 축복이 내릴 날은 또 언제일까요. 덩그런 눈에 쓰린 눈물이 아닌 행복한 눈물이 고일 날은 정녕 오지 않는단 말인가요.

   
▲ 양식장 부표를 공삼아 축구놀이를 하고 있는 압해서초등학교 어린이들.
ⓒ2004 오마이뉴스 안현주
애들은 애들입니다. 오늘도 섬 아이들은 양식장 부표를 공 삼아 축구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학교 앞 공터에서 말입니다. 저러다가 선생님이 나와서 "너희들 집에 안가고 여태 놀고 있니?"하며 꾸중하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전교생이 모두 107명인 압해서초등학교. 봄방학을 앞둔 아이들의 표정엔 설렘이 가득하네요. 졸업을 앞둔 이슬기 어린이는 압해중학교에 진학할 예정이랍니다. 슬기 어린이는 "중학교 가서 공부 잘해보는 게 올해 소망"이라는데 꼭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김장호 어린이도 3월에 압해중학교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또래 다른 친구들보다는 공부를 잘 한다"고 주위 어린이들 칭찬이 대단합니다. 장호 어린이는 "비록 시골학교지만 열심히만 하면 도시 애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야무지게 말합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기계공학도의 꿈을 키우는 장호 어린이의 눈망울이 안경 너머로 반짝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린이로부터 꿈을 배우고 또 그들의 꿈을 얻어먹고 산다고 했던가요. 힘차게 볼을 차는 어린이들의 건강한 두 다리에서, 딱지를 불어 넘기는 어린이들의 힘찬 호흡에서 푸른 희망을 얻어먹습니다.

   
▲ 바다에 막대기처럼 꽂혀 있는 것은 양식김발대입니다. 지주식 양식이라고 합니다.
ⓒ2004 오마이뉴스 안현주
형, 머지 않은 날 압해도에도 봄이 찾아오겠죠. 특히 4월엔 섬 지천으로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다고 합니다. 그때도 육지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아귀들의 싸움터일까요. 두렵고 싫지만 돌아가 내가 발 딛고 살아갈 땅이니 미리 절망은 않겠습니다.

미리 절망하지 않기 위해 벗들에게 뜨거운 악수를 청합니다. 그리고 압해도 어린이들에게 얻어먹은 푸른 희망 한줌 건넵니다. 벗들 모두 몸과 마음 건강해지시길….

   
▲ 바다로 나아가는 트럭. 물이 빠져 앞섬까지 트럭이 지나가도 끄떡없습니다.
ⓒ2004 오마이뉴스 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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