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신부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유아성추행 혐의로 수사중이던 신부에게 불기소처분이 내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가톨릭 부산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A신부는 2003년 M성당 부설유치원에서 유아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부산 동부지청 담당검사는 지난 1월 31일 증거불충분에 따른 불기소처분 결정을 내렸다.

"괴물 저리 가"

김지영씨(가명)가 딸 수미(가명·당시 만4세)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 4월. 3월부터 유치원에 다닌 수미가 기침을 심하게 하고 악몽을 꾸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어머니 김씨는 유치원 주임교사와 원장수녀에게 상담을 해봤지만 "유치원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미의 악몽은 갈수록 심해졌고 자면서 "괴물 저리 가"라는 등의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김씨가 아이를 깨워 괴물이 누구냐고 묻으면 아이는 "괴물, 바보, 신부님"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설마 신부가 성추행을 저질렀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어머니 김씨는 딸 아이가 A신부를 보고 "(저 신부) 바보야"라고 지목했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김씨는 4월 14일 울산경찰청 여성청소년계에 A신부를 고소했고 사건을 이관한 부산 남부서는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던 중 5월 9일 다른 피해자들이 또 나타났다. 남자 아이 세 명의 부모가 A신부를 고소했고, 여자 아이의 부모가 진정서를 제출했다. 당시 부산 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단체들은 '신부에의한유아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피해 유아들은 현장 검증과 비디오 촬영에서 신부의 성추행을 비교적 자세히 증언했다. 아이들은 신부가 자신들을 사제관, 놀이공원, 아파트 등지로 데리고 다니며 '병원놀이' '요정놀이' '예수놀이' 등을 시켰다고 진술했다.

성폭력 피해 실제 있었나 전문의가 보는 이 사건

이 사건의 핵심은 피해 유아가 실제 성폭행을 당했는지 여부다. 피해유아의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병원 신의진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공격적이고 불안해하는 증상을 보인다"며 "특히 수미는 성적인 부분에 대한 검사결과, 항문의 외상 등을 종합해볼 때 성폭행 피해를 당한 것이 확실하다"는 소견을 밝혔다. 이와 관련 성당은 가해자로 수미의 친오빠 영수(가명)를 지목한 바 있다. "괴물이 남잔데 검은색 치마를 입었다"는 수미의 증언을 두고 당시 검도를 배우던 영수를 의심한 것이었다. 신의진 교수는 "피해유아들이 '누가' 그랬는지 혼동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면서 "오빠가 가해자일 경우 가해자에 대한 반발이나 갈등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가족화 그림검사에서는 전혀 그런 것들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수미의 어머니 김지영씨는 "경찰과 검찰은 처음에는 우리 애아빠가 가해자가 아니냐고 했다가 동네 성추행범이 그랬을 거라고 하고 이제는 열네살짜리 친오빠가 그랬다고 주장한다"며 "그렇다면 나머지 세 아이도 우리 영수가 성폭행했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신 교수는 "아이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거나 그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내용을 꾸미거나 과장하는 일이 있으나 전문상담가는 이를 구분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사건의 경우 초기부터 전문상담가가 상담을 맡았어야 상상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든다, 사건도 유아전문검사가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송민성

특히 김지영씨의 딸 수미는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사제관의 구조를 자세하게 설명했으며, "(신부가) 사제관의 방과 화장실에서 내 항문에 쇠막대기를 넣고 성기를 만졌다"고 말했다.

현재 피해유아들은 불안 등의 증세를 보이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특히 수미의 경우 '스트레스로 인한 퇴행' '항문의 열상과 외상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A신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5세 남아 역시 우울증과 자폐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A신부측은 성추행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며 피해자의 주장은 모두 조작된 거짓이라고 주장해왔다. 특히 A신부는 지난해 11월 1일 공대위에 경고문을 보내 "인권과 명예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공대위에 불법적 활동을 중지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M성당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역시 공대위에 보낸 통고문에서 "(공대위가) 증거물이나 증인 한 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기자회견, 경찰청 항의방문, 시위 등 온갖 불법적인 방법으로 신부가 유아성폭력범이라고 강변해왔다"고 주장했다.

피해아동 증언 법적증거로 인정된 사례 있다 '용인 구성 유아성폭력 사건'

지난 2001년 일어난 용인 구성 유아성폭력 사건은 피해아동의 증언이 법적 증거로 인정된 최초의 판례다. 3세 여아가 용인의 한 놀이방 운영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이 사건은 가해자에게 미성년자 강제추행죄를 적용해 징역 1년을 선고한 바 있다. 당시 판결을 맡은 수원지법 형사7단독 김수일 판사는 피해자의 증언이 정확도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의 행위를 표현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판단해 이같은 처벌을 결정했다. 당시 피해여아의 증언을 증거능력으로 인정하게 된 근거는 범죄 직후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촬영한 비디오와 아주대병원에서 받은 심리상담과 치료 등이었다. 그러나 이 판례는 이후에 발생한 아동성폭력 사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 못하다. 엄격한 증거주의를 채택하는 우리나라 수사과정에서는 정액 채취나 목격자 존재, 가해자의 인정 등 결정적인 증거가 없으면 무혐의로 처리되는 일이 다반사다. 2002년 발의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폭력특별법)의 3차 개정안은 △피해자 진술의 녹화 의무화 및 녹화 영상물의 증거인정 △법원 심리때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 의견 참착 의무화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장애인 피해자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자의 동석 의무화 △영상물에 의한 신문 허용 등을 규정하고 있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한편 여성부(장관 지은희)는 성폭력 피해아동에 대한 상담과 치료, 사건 수사 전반을 일원화해 처리하는 아동성폭력전담센터(가칭)을 오는 5월 중에 개소할 예정이다. 여성부는 지난 3일 보도자료를 통해 "피해아동에 대한 응급치료 및 상담을 위한 치료실, 보호스크린 및 녹화장비 등이 구비된 조사실을 마련하고, 성폭력 피해아동의 진술을 아동친화적인 환경에서 전문가 등이 참여·녹화한 다음 이를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쪽의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찰은 7월 3일 사건을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7개월의 수사 끝에 증거불충분에 따른 불기소처분 결정을 내렸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자 공대위와 피해유아 가족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부산성폭력상담소 고혜경 실장은 "경찰과 검찰은 유아들의 특징은 무시한 채 아이들의 말이 부분적으로 사실과 다르거나 일관되지 않은 것만을 문제 삼고 있다"면서 "사제관에서 벌어진 일 등 피해자들이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아이들이 분명히 이야기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유아의 어머니 김지영씨는 "아이들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거짓말탐지기나 최면요법 등의 방법을 써볼 것을 제시했지만 검사측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검사측 수사에 불만을 표시했다.

김씨는 "사건을 부산 남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이관할 때 (경찰들이) 수미의 오빠(14)가 수미를 성폭행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그럼 (함께 고소한) 나머지 세 아이도 우리 아들이 성폭행했다는 것이냐"며 경찰 수사에 의문을 제기했다.

공대위와 피해유아측 대리인인 김광일 변호사는 검찰이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은 점, 증거가 충분했음에도 불충분하다고 한 점 등을 들어 불기소처분에 대해 항고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아이들이 똑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고, 비슷한 경험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면서,"아이들의 말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모들의 진술도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성당측은 불기소처분이 마땅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M성당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조점동 회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운전면허증도, 차도 없는 신부가 아이를 차에 태워 데리고 나갔다고 주장하는 등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또한 조 회장은 공대위가 왜 고소하기 전 성당측에 성폭행 사건에 대해 문의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피해유아들의 말 또한 부모에 의해 주입된 것일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사건과 관련, 기자는 A신부와 통화를 위해 성당에 전화를 했지만 "자리에 없다"고 말해 통화를 할 수 없었다.

"나머지 99%를 왜 해명 못하나" [인터뷰]피해유아의 어머니 김지영씨(가명)

- 검찰은 신부에게 불기소처분 결정을 내렸다. "받아들일 수 없다. 신부가 몰았다는 차와 신부와 관련된 교사들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으나 검사는 수사하지 않았다. 최면요법이나 거짓말탐지기 등도 제안했으나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라도 법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법적으로 지는 거라고 하는데 그럼 나머지 99%에 대해서는 왜 해명하지 않는가? 우리 아이의 항문외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 아이를 큰아들 영수(가명)가 성폭행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는데 다른 세 아이도 영수가 성폭행 했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라도 조사해야 하지 않나?" - 신부는 운전면허증도, 차도 없다고 밝혀졌다. "운전면허증 없이도 운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신부는 차가 없다고 하지만 성당에 차가 여러 대 있지 않은가." - 왜 고소하기 전 성당측에 성폭행 사건에 대해 문의하지 않았나. 신부측에서는 피해유아들의 말이 부모에 의해 주입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항상 그걸 거론한다. 피해자가 성폭행 가해자쪽에 반드시 문의를 하고 고소해야 한다는 건가? 그리고 부모가 주입시켰다고 하는데 어떤 부모가 아이들에게 그런 걸 주입시키는가? 그 부분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다." / 송민성

"불기소처분 당연, 유아진술은 조작" [인터뷰]평신도사도직협 조점동 회장

- 신부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처분 결정을 내렸다. "사필귀정이다. 공대위는 합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고 억지를 부렸다.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깡패'같다. 공대위가 한 일은 경찰서 항의방문과 기자회견이다. 또 저쪽에서 주장한 대로 우리 신부님, 수녀님, 교사들은 전부 경·검찰의 수사를 받았으나 불기소처분 됐다. 저 쪽이 다 조작한 거다." -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조작됐다는 건가. "우리 신부님은 운전면허증도, 차도 없다. 물론 운전면허증 없어도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우리 신부님은 못한다. 아이가 아파트를 지목해 자동차를 주차시켰다고 하는데, 그건 공대위가 가르쳐줬기 때문에 아는 거다. 그 아파트는 신부도 모르고, 아파트 관리소장도 누명을 썼다고 화를 냈다. 뿐만 아니다. 고소를 하면서 왜 성당측에 문의 한번 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 송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