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1일, MBC 남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한 프로그램의 방청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따라온 다섯 살배기 꼬맹이부터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학생들, 도시락을 들고 중무장한 아주머니들까지. 연령과 성별로만 보면 도대체 어떤 프로그램의 방청객들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도올 김용옥의 '삼봉 정도전'. 지난달 5일부터 방영되는 '도올특강-우리는 누구인가?'를 방청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 도올특강이 시작하기 전, 사전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주의해야할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16일에 방송되는 7회분을 녹화한 이 날, 특강을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4~5백명에 달했다. 그 중 3~40%는 이미 도올특강을 1번 이상 들어본 사람들이며, 1회부터 현재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특강을 들은 이들도 무려 20명. 또한 도올 김용옥이 나온 신문기사를 복사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녹화장에서 파는 '삼봉 정도전'은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가는 등 도올에 대한 방청객들의 열의와 애정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도올특강-우리는 누구인가?'는 KBS '도올의 논어이야기' EBS '도올, 인도를 만나다'에 이어 세 번째 TV 강연. 6개월 26회로 기획된 이번 특강을 통해 그는 동양철학을 아우르던 이전 강연과 달리 "정도전, 최한기, 최제우, 이제마 등 조선의 변혁시기에 당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 사상가를 조망할 것"이라며 "우리 민족의 주체성 강조"를 기획의도로 밝힌 바 있다. 현재 강연은 조선건국의 전략가로 알려진 정도전의 건국·정치사상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 중이다.     
 
그는 이미 첫 방송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생각은 잘못됐다"는 발언으로 한때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주 6회 방송에서는 중앙대에 대한 돌출발언으로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도올특강의 담당 PD 김진 씨는 "강연내용이나 대본은 물론, 연출방향, 편집까지 도올선생이 직접 하는 것"이라며 "수위조절을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 도올 김용옥

녹화직전, 도올 김용옥은 객석을 빼곡하게 채운 방청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러분은 국회로 치면 국회의원과 같은 위치로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표정은 밝게, 자세는 단정하게, 경청해달라"고 말했다. 또 지난 강연을 요약하며 "끊임없이 새 사람이 오는 것은 지속적인 관심을 반증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변혁의 시기에 살고 있음을 기억하고 자부해야 한다"면서 "민족의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내 강연이 우리 민족에게 좋은 패러다임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도올은 자신이 겪은 공중목욕탕에서의 일화를 서두로 이야기했다.

"발가벗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여쭤볼 게 있습니다'며 아는 척을 해요. 자기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색시 부모님이 한 분도 안 계시는 거예요. 청첩장에 00의 질녀라고 써야 하는데 죽은 사람들 이름을 쓰자니 뭐하고, 안 쓰자니 또 뭐하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고(故)00의 질녀로 쓸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도올은 이에 "색시 부모 이름을 모두 쓰라고 했습니다. 한번 부모면 영원히 부모지, 죽었다고 부모가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바로 예(禮)의 복잡함입니다"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예란 무엇인가'를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일화를 통해 설명했다.

"공자라고 하면 예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공자가 태묘(역대의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에 들어가서 제례의 이것저것을 물어서 행했답니다. 그러니까 제관들이 '누가 예를 아는 사람이냐'고 빈정댔어요. 이 때 공자가 한 말이 '내가 묻는다고 하는 것이 바로 예다'라고 했습니다." 또 그는 "예는 끊임없이 변하고 정답이 없는 것"이라며 "때문에 젊은이들이 한문공부를 하는 등 우리 전통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리고 맹자의 '민본사상'에 대해 설명하며 "그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높고, 그 다음이 사직이며,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바로 군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맹자는 '신·제후·사직·임금은 갈아치울 수 있지만 백성은 갈아치울 수 없다'고 말했다"며 '사사로운 욕심을 위해 구차하게 백성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 말라'는 맹자의 말에 빗대어 현 정치권을 비난하기도 했다.
 
강연 도중 방청객들은 도올 김용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아~'라는 동의의 뜻을 표시했다. 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함성과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또한 도올을 따라 '삼봉 정도전'을 큰 소리로 함께 낭독하기도 하고 도올의 한복 고름이 풀어지면 조용히 일러주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경청했다. 

▲ 청중들이 도올의 강의를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날 모인 청중들은 도올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도올은 정도전의 건국정치사상에 대해 후반부에 잠깐 언급하는 정도로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조선왕조를 건국한 이성계는 순천응인(順天鷹人)한 것뿐"이라고 운을 뗀 후, "공민왕(고려의 마지막 왕)은 자신이 통치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왕위를 물려준 것"이며 "이성계는 세 번이나 거절했지만 도평의사사를 통해 왕으로 추대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세계 정치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무혈혁명이자 합리적인 과정을 통한 혁명"이라면서 "조선왕조가 5백년이나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내면의 자정능력과 매커니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덧붙여 "지금은 변혁의 시기로, 정도전이 고민했던 혁명의 기운이 느껴진다"며 "어떤 사상을 가지고 개혁을 해나가는가는 바로 우리의 몫"이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특강을 들은 후 시민들의 반응은 대부분 '괜찮은 강연이었다'는 분위기였다. 이 날도 '불알' '미친 놈' '꼰대' '지랄' 등 거친 표현을 쓴 도올 김용옥에 대해 "남의 눈치 안 보고 말해서 속이 풀린다""오히려 솔직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며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생각한다""동양철학을 대중화했다는 점에서 관심이 많다""청중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진심으로 나라걱정을 하는 사람"이라는 등 방청객들이 전체적으로 도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편 MBC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도올의 학문적 역량에 대한 비판론과 옹호론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옹호론은 녹화장에서의 방청객들과 비슷한 입장이다. 그러나 비판론을 살펴보면 "도올의 설명을 듣는 것보다 직접 노자책이나 팔만대장경을 봐야 한다(ID:Aldsmania)"는 원칙적인 입장부터 도올의 노자해석에 반박하는 이경숙 씨의 책 '노자를 웃긴 남자'를 근거로 "도올은 엉터리 사기꾼"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도 있다. 
 
다른 방청객들과 함께 특강을 듣고 아쉬웠던 점은 대부분의 방청객들이 김용옥의 호명인 도올의 뜻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방송시간을 모르는 이들도 태반이었다. 그저 도올에 대한 호기심으로 찾아왔을 뿐 그가 어떤 경력과 사상을 가졌는지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아무런 의심 없이 도올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 MBC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한 네티즌의 글이 떠올랐다.
"도올선생의 새로운 시각은 들어볼 만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 나름대로의 취사선택을 전제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정(기본시각)+반(도올선생의 시각)=합(나만의 시각)이 되어야 비로소 진짜 괜찮은 시각이 나오는 것 아닐까요?"